1993년. 출간된 지 20년만에 개정판이 나올 때까지 변한 게 별로 없다는 저자들의 말. 변화에 대한 기득권자들의 저항은 참으로 거세기에 변화나 개혁의 속도감 또한 참으로 느리게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긍정‘을 노래하는 이들의 서문은 그래서 더 힘차고 아름답다. 500여 페이지의 분량 속에서 두 저자의 주고받는 메시지는 친절하고 성실하다.
˝만약 그가 여기에 온다면 제게 약간의 힘이라도 있는 한, 이제 그가 살아서 이곳에서 나가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_1546년 2월 13일. 칼뱅이 파렐에게 보낸 편지 중.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교리의 준엄함이라는 명분 아래 살인을 서슴치 않던 야만의 시대. 동일성의 환상 아래 관용을 허락하지 않는 미개함이라는 악취는 지금도 여전하다.
원시 문명과 현대문명 사이에는 과연 깊은 구렁이 있는 걸까? 라스코 동굴 속 황소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의 정교하고 매끈한 문명들을 보면서 누가 그것을 현대의 그것보다 덜하거나 미개하다 말할 수 있을까. 오래전 고대 문명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에 따스한 빛을 비춰주듯 따뜻한 저자의 안내를 따라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금새 마지막 페이지까지 당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