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라는 이상한 존재 - 탈코르셋, 섹스, 이혼에 대하여
배윤민정 지음 / 왼쪽주머니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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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말할 것 같으면 기혼 여성 같은 기혼 여성이 될까 봐 늘 무서움에 떨었던 사람이다. 맨날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나. 기혼 남성들이 모여서 결혼 생활의 부자유에 대해 토로하는 모습이.
"우리 마누라는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
"요새는 집에서 여자가 왕이지."
그들이 야유하는 이 ‘아내‘라는 존재를 한국 사람들은 익히 안다. 지겹고 억척스럽고 통제하고 간섭하고 지루하고 진부한 그 존재. 남자의 자유를 앗아가는 괴물. 나는 그런 존재가 될까 봐 늘 조심하면서 살았다. - P11

‘나 못생겼나?‘
사실 이건 그다지 타격 없는 질문이다. 외모를 의식하지 않고 산 지 꽤 되어서인지. 그것보다 더 두려운 질문은,
‘나 사람 숨 막히게 하나? 우리 엄마처럼?‘
이혼 서류를 접수한 다음 준호는 같은 말을 계속했다. 정말 나뿐이라고. 자기 마음속엔 나뿐이었으며, 수민에겐 그저 인간적 연민과 안쓰러움만 들었다고. 관계를 잘 마무리 지어서 나에게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고.
그는 또 말했다. 내 앞에서는 항상 자격지심을 느꼈다고. 자기가 볼 때 나라는 사람은 항상 바르고 강하고 당당해서 자신이 초라했다고. 그런데 수민에게는 의지할 사람이 필요해 보였다고.
이런 얘길 들으면 당장은 화가 나다가도 희미하게 불안한 예감이 든다. 앞으로 언젠가 나는 분명히 이 말에 휘둘리겠지. ‘바르다‘라는 말은 옳고 그름이 지나치게 확실하며 그 기준을 남에게 강요했다는 뜻이 아닌지. ‘강하다‘라는 말은 인간미가 없었다는 의미는 아닌지. 차갑고 냉정했단 의미는 아닌지. ‘당당하다‘라는 말 - P17

은 오만하다는 뜻의 다른 표현이 아닌지.
나,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이었나. - P18

여기서 나는 어떤 인물인가? 나는 나라는 사람을 가장 모르겠다. 구속하는 아내가 될까 봐 겁먹다가 기만당한 아내. 다른 아내들처럼 남편한테 집착하지 않는다고 자만했던 아내. 이혼한 사람들 앞에서 그들은 실패자이고 나는 행운의 별의 수호를 받는 사람이라고, 삶의 어떤 시점에서는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던 여자.
페미니즘에 눈뜬 이후 한국 사회에서 남자를 사랑하기 너무나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준호라는 한 인간과는 다른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던 여자. 비혼 비출산을 외치는 목소리에 공감하고, 기혼 여성은 가부장제 부역자라는 소리에 위축이 되면서도, 아무리 내가 지지하는 이데올로기라도 내 삶을 검열하도록 놔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여자.
‘저렇게 드세게 할 말 다 하면서 살더니 남편이 바람피울 줄 알았다?
‘아직도 남자에게 희망을 품는 사람이 있다면 저 - P34

사람을 보고 깨달아라‘
두 가지의 이야기 다 그 사례가 되고 싶지 않았던 여자. 내 삶을 파편적으로 해석하지 말라고, 나라는 사람의 삶은 어떤 주장의 사례도 아니라고 지금도 소리치고 싶은 여자. 이 생각 뒤에 밀려오는 초라한 기분을 감당하는 여자.
‘상간녀‘를 욕하고 남편을 감싸는 그 숱한 아내들을 비웃으면서 나는 그렇게 안 산다고 우월감을 느꼈던 여자. 배우자의 외도를 덮고 산다면 남들도 나를 그렇게 보겠지, 겁내는 여자.
이 여자가 나인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실감 나지 않는 상태로 평생을 살다 가는 건가 싶다. - P35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았는가? 그들은 결코 대화가 부족하지 않은 커플이었다. 두 사람은 주말에 함께 있을 때면 온종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당신 너무 귀여워. 당신 너무 근사해. 그들은 오늘의 뉴스와 페미니즘 이슈와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두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때로는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 민정은 그 시기를 돌아보면서 대화란 얼마나 무익한 것인가 생각한다. 우리의 말은 시공간을 채우기 위한 소음이었을 뿐이야. 무심히 틀어놓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소리와 비슷하지. 그렇게 생각하면 울컥하는 감정이 - P37

올라왔다. 말을 통해 나의 생각과 마음을 전하는 것이 가능한가? 소통과 교감이 이뤄지는 것이 가능한가? 웅웅거리는 에어컨 실외기 옆에서 멍게를 우물거리는 그는 이에 대한 믿음을 상당 부분 상실한 상태였다. - P38

"너와 나의 이야기 중에 무엇이 오래 살아남는지 두고 봐"
그렇지만 이것이 지금 민정이 글을 쓰는 가장 솔직한 이유였다. 세상에 보탬이 되고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깨달음을 전해주려고 글을 쓴다면 근사했겠지만, 항상 민정을 노트북 앞에 앉히는 힘은 자 - P41

신의 분노였다. 복수심이 아니라면 무엇이 나를 개성있는 존재로 만들겠는가? 얻어맞았을 때 다시 후려치고 싶은 이 욕망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글을 쓰겠는가? 민정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면서 휴지로 눈가를 꼭꼭 훔쳤다. - P42

우리는 서로에게 단 하나뿐인 배우자였지만, 한편으로는 결혼이라는 공연에서 남편과 아내라는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인지 몰랐다. 준호가 준호가 아닐수록, 내가 내가 아닐수록이 역할극은 더욱 원만하게 굴러갔으리라. - P58

분노할 때는 많았는데. 사회적 현상이나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못 견디게 화가 날 때는 많았는데. 그런 감정은 대부분 글이 되어서 세상으로 나갔다. 그러나 슬픔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구나. 그가 생각하기로 슬픔은 누군가와 공유하기에는 너무나 개인적인 감정이었다. 그 - P71

•뿐만 아니라 이 슬픔의 전후 과정을 분석해서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자신과 타인에게 설명해도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았다. 분노와 언어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짝이었다면, 슬픔 앞에서는 자꾸 말이 흩어지고 사라졌다. 말의 속도가 시간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 P72

그는 내 말을 듣고 또 울었다. 이 모든 슬픔과 갈등을 일시에 해소하고 싶다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은 유혹이 불쑥 찾아왔다. 내가 ‘용서할게‘라고 말하면 그가 얼마나 감동할까. 얼마나 행복해할까. 잘못하고 반성하고 용서하고, 다시 함께 삶을 만들어 가는 서사를 따라갈 수 있다면 얼마나 편안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 - P93

서 한편으로는 그와의 삶이 나에게 주는 가치란 익숙함뿐이라는 것도 의식한다. 그저 빨랫감 같을 뿐이잖아. 네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은, 빨고 말리고 다시 빨아야 하는 옷가지 같을 뿐이잖아. 아무것도 새로울 것이 없는, 오래전부터 세상이 만들어 놓은 이야기잖아.
다시 그를 파트너로 받아들이며 사는 삶을 상상해본다. 나는 너를 용서하려고 노력하면서 내가 나인 것을 후회하고 자책하겠지. 온갖 심리학 서적, 명상 서적, 종교 서적을 찾아보면서 너는 결코 해줄 수 없고 해주지도 않을 위로의 말을 구하겠지. 먼 훗날 갑자기 폭발해서 눈물을 흘리며 소리치는 나를 보면서 너는 말하겠지.
"아직도 그 얘기야? 그만 좀 해." - P94

나는 나쁜 아내였을까? 내가 집안일을 적게 해서, 편해지는 쪽을 택해서 대가를 치르게 된 걸까? 집안일도 섹스도 하지 않는 아내는 배신당하기 마련일까? 그러나 어디까지가 동거인이자 배우자의 의무이고, 어디까지가 아내에 대한 착취인지 그 선을 구분하기가 쉽지 - P121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의 관계에서 그 선을 고민하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사실이 괴로웠다. 아내이자 며느리 역할을 거부하면서 배우자로서의 사랑을 요구해서는 안 되는 건가? 페미니스트라고 하면서 사랑하는 남자에게 아기처럼 귀여움 받기를 원해서는 안 되는 건가? 이런 욕망은 내가 지향하는 삶과 배치되는 건가? 나는 온갖 고민에 휩싸여 있었던 반면 그는 나에게 해주는 모든 일에 자부심을 느꼈다. 목마를 때 물을 가져다 주는 것,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 발을 주물러 주는 것, 한마디로 둘의 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헌신적인남편이라는 것. - P122

그가 나와 함께 여성단체 시위에 참석하면 기자들이 멘트를 따려 하고, 페미니즘 강연을 들으면 강연자가 ‘청일점‘인 그에게 한마디를 청했다. 남자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다니! 아내와 함께 페미니즘 공부를 하다니! 나와 함께 있는 그에게는 애정을 담뿍 담은 눈길이 쏟아졌다. 무엇을 해도 기준에 맞지 않는 나와 사정이 달랐다.
내가 남편보다 집안일을 많이 한다고 ‘세상에 둘도없는 아내‘라고 칭송 들을 일은 없을 것이다. 페미니즘에 관심도 가지면서 남편에게 물도 떠다주고 발도 주물러줬다면 자기모순에 질식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다. 그는 보편적/가부장적 남편의 역할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세상에 둘도 없는 남편‘으로 칭찬받았고, 그 역할에 충실하면 이해받았다. 아내인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내다운 아내가 되든, 아내답지 못한 아내가 되든 자신을 혐오하지 않기 어려웠다. 부당해. 불공평해. 화가 나. 이런 생각이 들 때면 한편으로는 사회적인 분노를 준호라는 개인에게 모조리 투사하는 걸까 봐 또다시 죄책감이 뒤따랐다. 내가 줄 위에서 균형을 잡느라 비틀거리며 발을 뗄 때 그는 무엇을 했던가? - P123

무엇보다 기혼에게 쏟아지는 ‘조용히 하라‘는 메시지에 숨이 막혔다.
"기혼이 가만히 있으면 누가 뭐라 하냐? 자기도 페미라고 바락바락 우기니까 문제지."
"자꾸 기혼이 스피커로 나서니 문제다. 기혼한테서 마이크를 빼앗아라." - P151

"또 기혼 플로우냐? 기혼들은 눈치껏 좀 닥쳐라. 너네만 입 닫으면 된다"
너만 조용히 하면 돼. 너만 가만히 있으면 돼. 나는 이런 말을 평생 들으며 살아왔다.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어린 시절부터, 시가 사람들과 호칭 문제로 갈등을 겪었던 결혼 이후까지. 너만 조용히 하면 모두가 평화롭다는 메시지는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녔다. 그런 말을 접할 때마다 천천히 익사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어떤 상황을 두고 아무리 ‘싫다, 불편하다, 불쾌하다, 부당하다‘라고 말해도 이것은 물속에서ㅠ외치는 소리일 뿐, 물 밖에 있는 이들에게는 결코 도달할 리 없다는 자포자기. 그 무력감이 계속해서 삶을 지배해 왔기에, 내가 여성단체에 가입해서 회원들을 만났을 때 수줍게 고백했던 말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저한테도 입이 생긴 것 같아요." - P152

이렇게 간신히 찾은 입을 다시 또 다물라고? - P153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자신의 시선이었다. 나는 ‘기혼 여성‘이라는 집단에 속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붙은 ‘기혼‘이라는 이름표가 싫었다. 사회에서 기혼 여성 페미니스트는 4B로 정체화한 페미니스트보다 온건한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급진적인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4B운동으로 가부장제에 맞선다면, 기혼 페미니스트에겐 남편을 변화시키고 아이를 교육해서 성평등한 가정을 만드는 역할이 있다고, 그 두 가지 변화가 함께 가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기혼 페미니스트 당사자들도 이야기했다. 나는 배우자와 옥신각신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가정이라는 작은 집단의 변화를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말들이 답답했다. 페미니즘을 알게 된 이상 내 삶에서 가부장제 - P156

와의 연관 고리를 하나라도 더 끊어버리고 싶었다. 남자의 욕망, 남자가 여자에게 요구하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내 삶에는 준호가 있었다. 그가 아무리 내 앞에서 설설 기는 시늉을 하는 남편이라도, 존재만으로도 나를 떳떳하지 못하다는 기분에 빠뜨린다는 점에서 내 삶에 묻은 얼룩과 다름없었다. 기혼이든 비혼이든 ‘각자의 자리‘에서 싸우면 된다고 하지만, 나의 자리가 어디인지 혼란스러웠다. 페미니즘을 더 일찍 접했어야 했어. 결혼은 어리석은 선택이었어. 어울리지 않는 껍데기를 썼어.
나는 기혼 여성을 향한 혐오의 말에는 반대해도, 한편으로는 기혼 페미니스트라는 단일한 집단을 가정해놓고 그 이미지에 내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여성 집단에 특정한 이미지를 부여하는 것 역시 여성 혐오임을 알면서도 내 안의 거부감을 쉽게 지울 수 없었다. 나는 내가 기혼 페미니스트들을 ‘온건하다‘라고 멸시하는 딱 그만큼 자신을 경멸했다. 나는 더 급진적인 존재가 되고 싶었다. 정치적으로 순수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티끌 한 점 없는 페미니스트로 살고 싶었다. - P157

남편이라는 존재가 부끄럽다는 것은 생각 이전에 감각이었다. 가끔 길에서 남자가 여자를 팔로 감싸며 걷는 모습을 보곤 했다.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는 남자, 남자의 팔 안에서 혀 짧은 소리로 말하는 여자. 이런 모습을 보면 이성애 자체가 징그러웠다. 이토록 젠더 권력이 불평등한 두 사람이 어떻게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여자들은 자신보다 힘이 세고, 임금을 더 받고, 범죄의 위협에서 훨씬 자유로운 존재 앞에서 격심한 분노를 느껴야 하지 않은가? 여자들이 불평등한 구도에 어느 정도는 눈을 감아야만 연애 관계가 성립할 수 있을 - P160

텐데 나를 억압하는 대상에게 애정을 느끼는 건 스톡홀름증후군 같은 이상심리, 문화적 세뇌, 자기기만이 아닌가? 커플이 포옹하고 있을 때 남자는 운동화를 신고 여자는 하이힐을 신었다면 가슴이 더 답답했다. 사회에서 ‘여성적인 것‘으로 분류된 모든 기호가 굴욕적으로 느껴졌다. - P161

사실 청첩장을 찍을 당시에 준호는 내 이름을 앞에 넣자고 제안했는데, 나는 "남들처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대답하면서 내 이름을 뒤에 넣기로 정했다. 지나고 보니 그가 무엇을 제안했든 내 삶에 이것이 ‘문제‘로 주어졌다는 사실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청첩장 이름의 순서라는 문제는 준호가 없었다면 내 삶에 제시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나는 이런 문제를 계속 풀어가면서 살아야 한다는 게 억울했다. 아마 준호는 자신이 평등한 제안을 했는데 거부한 것은 나라고 생각하면서 이 문제를 다시 떠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는 끝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무엇 때문에 내 입에서 ‘남들처럼 하는 게 좋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는지, 이 결정에 어떤 사회적 통념이 작용했으며 그것이 지금의 내 삶을 - P162

어떻게 만들었는지 자꾸 돌아보면서 쓸개를 핥듯이 패배감을 곱씹었다.

돌이켜 보면 의문이 든다. 정말로 배우자인 준호가 없었다면 나는 아무 거리낄 것 없이 당당한 기분으로 길을 걸을 수 있었을까? 내 패딩 점퍼에 새겨진 ‘페미니스트‘라는 글자가 십자가처럼 느껴지지 않고, 페미니즘과 내 삶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감각으로 살 수 있었을까? - P163

무엇이 나의 모습인지 알 수 없었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삶에 비전을 제시하는 가장 급진적인 사상이라고 믿는 나. 이성애의 모든 애정 표현이 어색하고 거북하게 다가오는 나. 화장한 페미니스트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나. 자신은 다른 기혼 여성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나. ‘페미니스트‘라는 글자가 새겨진 옷을 입고 탈코르셋을 한 모습으로 남편과 걷는 나. 자꾸만 나에게 팔을 감는 남편과 애써 거리를 벌리는 나. 영화관으로 걸어가는 짧은 길에서 나는 내 안에서 부딪치는 목소리들 때문에 심신이 마모되는 것 같았다. 분명히 처음에 페미니즘은 내 삶을 해석하게 해주는 새로운 눈이었는데, 이 눈은 순식간에 거울로 변했다. 그 거울 앞에서 나는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 P164

탈코르셋을 해서 그의 관심을 잃게 되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상대방의 스타일이 바뀌었다고 감정이 사라지는 관계라면 하루빨리 끝내는 게 나았다. 나를 못내 찜찜하게 했던 것은 내 안에서 떠오르는 질문이었다. 지금의 내 모습이 정말 내가 원했던 것인가? 화장을 하든 하지 않든, 여성의 화 - P175

장을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하든 긍정적인 것으로 생각하든, 이 모든 생각이 다시 자신을 검열하는 시선으로 돌아왔다. 내가 페미니즘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준호는 언제나 내 말에 백 번 동의하지만 자신은 남자이므로 페미니스트 자격이 없다고 몸을 낮췄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진보적 가치를 지지하기만 하면 되는데, 나는 왜 내 삶이 모순 때문에 파열될 것 같은 느낌을 안고 살아야 했을까? - P176

그때 나는 탈코르셋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만, 여성이 탈코르셋 운동과 자기 욕망이 부딪치는 상황에서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반드시 후자를 택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저는 여성 개인의 욕망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만약 우리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조금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외부의 목소리와 티끌만큼도 타협하지 않는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궁금하거든요." - P177

이제 나는 이 몸에 어떤 메시지도 더 쓰고 싶지 않았다. 남성들의 관 - P177

음적, 폭력적 시선만이 아니라 내 몸을 사회운동의 장으로 보는 자신의 시선에서도 놓여나고 싶었다. 나를 나에게서 자유롭게 풀어주고 싶었다. - P178

나는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제시하는 정답을 거부할 자유만이 아니라, 동조와 거부라는 기준에 얽매이지 않는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싶었다. 좋은 것부터 나쁜 것, 옳은 것부터 그른 것, 편안한 것에서 불편한 것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선택지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 싶었다. 이 선택하는 자유야말로 남성에 비해 여성이 가장 적게 누리는 행복이었다. - P180

그의 말을 들을수록 ‘임신‘이 그의 삶에 한 번도 무게를 가진 적이 없는 문제라는 것이 실감 났다. 그는 단지 진보적인 가치로서 낙태죄 폐지를 주장했을 뿐이었고, 실제 그의 삶에 임신이라는 가능성이 끼어들었을 때는 아무런 공포도 불안도 느끼지 않았다. 그는 고작해야 성감을 북돋우려고 콘돔을 쓰지 않을 만큼 태평한 세상에 살고 있었다. 내가 오래전의 임신 중단 경험을 되짚으며 아내로서 떳떳한가 고민하는 동안, 그는 콘돔 없이 혼외 성관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는 겨울날 피켓을 들고 법원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만족스러웠으리라.
<파도 위의 여성들>에서 한 여성은 미프진을 삼키고 활동가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이렇게 외로웠던 적은 처음이에요."
이 문장이 모니터에 뜨는 순간 목이 메었다. 배를 감싸며 병원에 누워 있던 열일곱 살의 내가 얼마나 외 - P207

로웠는지 준호는 꿈에도 알 수 없을 것이다. - P208

어떤 자리에서든 누군가의 여자친구나 아내로 소개되는 순간 나에게 베일 하나가 씌워지는 느낌이었다. 안팎이 보이긴 하지만 분명히 무언가가 얼굴을 가리고 있는 느낌. 준호도 이 느낌을 알까? 내 주변 사람들 앞에서 남자친구나 남편, 사위라는 역할로 존재할 때 그도 나처럼 복잡한 기분을 느낄까? 아니면 사회적 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맡는 것은 똑같아도 익명의 존재가 되는 사람은 여자뿐일까? 준호도 나의 지인 사이에서 자신의 개인성이 지워지는 인상을 받은 적이 있는지 궁금했다.
문살롱 사람들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내 안에 충돌하던 감정은 이런 것이었다. 익명의 존재가 되는 쾌감과 불쾌감. 역할로만 관계 맺는 안온함과 거북함. ‘정상적인 삶‘을 사는 ‘정상적인 여자‘가 되는 기쁨과 슬픔. 문 살롱 사람들뿐만 아니라 준호로 연결된 사람들과 만날 때는 늘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오랫동안 손 놓고 있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 것은 이 기분 때문이기도 했다. 내 안에서 부딪치는 감정을 들여다보며 나의 관점으로 하나의 서사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 - P229

으면 나중엔 나도 자신을 알아볼 수 없을 것 같았다. - P230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내가 준호에게 이해받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었다. 결혼한 이후부터 나를 둘러싸는 숨 막히는 공기를 너도 느낄 수 있다면. 이 바람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자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 해야 내가 느끼는 부당함을 오롯이 전달할 수 있을까? 차분하게 이야기하면 내 말은 그의 귀를 스쳐갈 뿐이었고, 마구 화를 내면서 이야기하면 싸움이 시작됐다. 말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많은 뱀, 지네, 개구리를 토해내는 마법에 걸린 것 같았다. - P238

어쩌면 준호의 주변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남편을 억누르는 아내‘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그의 처신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느 자리에 가나 귀염 받는 막내처럼 거침없이 애교를 부리는 너. 누군가가 쓰다듬어 주고 토닥여주는 상황을 사랑하는 너. 준호는 이 상황을 즐기고, 나아가서는 유도했던 - P239

걸까? 아내에게 붙잡혀 사는 남편은 동정받기 마련이다. 남편한테 붙잡혀 사는 아내는 경멸받아도. 그렇다면 우리가 한국 사회에서 남편과 아내로 살아왔던 시간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까? 그는 사랑받기 쉬운 조건에서 사랑받으려 노력했고, 나는 사랑받기 힘든 조건에서 사랑받기를 거부했다. - P240

"그래, 알아. 너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갈등이 생기니까 힘들었겠지. 하지만 너는 내가 얼마나 다쳤는지 몰라."
"알아. 난 알아." - P241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나도 마찬가지야."
뱀이 서로의 꼬리를 물듯이 뱅뱅 도는 대화였다. 이런 대화가 이어질수록 내 마음의 아주 작은 조각도 전달되지 않는다는 절망감이 깊어졌다. ‘안다‘라는 단어가 이토록 절망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말이었다니. 준호의 아버지가 "책 안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다 안다"라고 말했을 때, 그리고 준호가 내 옆에서 ‘안다‘라고 말할 때만큼 상대와 내가 멀리 있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우리가 한때는 서로의 삶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제 우리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은 서로의 말이 가닿지 않는 막막함뿐일까? - P242

어떻게 하면 내가 네 앞에서 평등한 개인이면서도 애정 - P244

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 P245

내가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코르셋‘을 수행하는 여자들을 비웃기 위함이 아니다. 나는 내가, 그리고 다른 여자들이 다이어트를 하고 결점 없는 흰 얼굴을 만들고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서 트리트먼트에 힘쓸 때 무엇을 꿈꾸었는지 안다. 우리는 행복을 꿈꿨다. 사랑받고 사랑하는 삶.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일요일에 성당에 다니는 일상. 대단히 특별할 건 없어도 남부럽지 않게 사는 보통의 삶. 그 천진한 기대를 생각하면 나는 도무지 우리를 비웃을 수 없다. 이런 작은 바람조차 철저하게 모욕하는 세상에 화가 날 뿐.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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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카페라는 세계 - 엄마들이 모인 공간은 정녕 '마녀들의 소굴'인가
정지섭 지음 / 사이드웨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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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맘카페가 제공하는 소속감의 성격이 밝고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맘카페에서 활동하고 친목을 다지는 동기는 정서적인 안정감보다는 소외되지 않기 위한 불안감에 더욱 가까운 것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이것이 맘카페에 가입하고 활동하는 더 주된 동기라고 본다.
실제로 내가 운영하는 맘카페에서 신규 회원의 가입 목적에 관해 물었을 때 십중팔구는 ‘정보 공유‘라고 적는다. 이는 정보 시장에서 내가 도태될 것이라는 불안감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 정보의 범주는 육아 관련 지식이 될 수 있고, 학교 관련이나 사교육 관련 내용일 수도 있고, 어느 반찬가게가 괜찮은지 같은 생활 정보까지 포함된다. - P99

그 정보에 대한 열띤 탐색엔 기본적으로 ‘혼자서 육아를 책임져야 하는‘ 핵가족 시대의 짙은 불안감이 반영되어 있다. - P100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호튼 쿨리 (C. H. Cooley)의 ‘거울 속의 자기이론(Looking Glass Self)‘은 맘카페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설명하는 데 아주 유용하다. 쿨리는 ‘우리는 주위 사람들을 거울로 삼고 그거울에 자신을 비춤으로써 나를 파악한다‘는 자신의 이론을 부연하며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본성은 개인, 교우관계, 이웃 같은 집단 속에서 발현한다. 타인과의 교류 없는 개인의 본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고립은 이를 부식시킨다."
맘카페는 1차적으로 엄마를 고립시키지 않기 위한 공간으로서의 강력한 의의를 가진다. - P111

현대사회에서 여성이 엄마가 된다는 것은, 그전까지 성 중립적으로 겪어온 세계와 전혀 다른 것이 펼쳐진다는, 어떻게 본다면 전근대 시절보다 여성에게 자신이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더욱 강하게 확인하게끔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혼란 속에서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기준이 되는 집단‘이 필요하다. 인터넷 속의 ‘맘카페‘라는 공간은 그렇게 엄마라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준거집단이 되었다. 이 맘카페의 집단 정체성이야말로 맘카페가 작동하는 가장 중요한 기제일 것이다. - P112

남성의 공격적인 태도는 사회적으로 용인되어 왔고, 남자다움이라며 권장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성의 공격적인 태도는 부정적인 수식어에 가까우며 최대한 숨겨야 한다. 특히 엄마의 공격성은 평소에 여러 이유로 억눌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물리적인 특성이 차단되고 익명성으로 자신을 숨길 수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는 여성도, 엄마도 과거와 달리 공격성을 쉽게 드러낼 수 있다.
결국 이렇게 맘카페라는 공간은 엄마들의 공격성을 발현하기 좋은 곳이 되었다. 엄마들의 둥글둥글함이 모여 공감을 얻고, 이는 종종 이성적인 판단력을 흐리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엄마들의 뛰어난 공감 능력을 ‘선한 존재‘의 필수적인 덕목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이제는 공감의 복합성, 공감의 역설에 관해서도 성찰할 때가 되었다. 과연 맘카페와 같은 ‘힘을 가진 집단‘에서 공감이 언제나 ‘선함‘을 위해 존재했던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 P144

우리는 언젠가부터 개인의 공감 능력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의 감정에 쉽게 이입할 줄 아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타인에게 잘 몰입하는 특성이 반드시 선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 착각이 집단이기주의적인 행동을 합리화하는 기제가 된다. 그런 ‘역지사지의 명암‘이 잘 드러나는 곳이 맘카페다.
맘카페는 더 이상 "저 속상해요.", "여기 털어놓고 끝내요."로 정도로 끝나는 집단이 아니며, 그러한 응집력을 바탕으로 자기 집단의 힘을 추구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 힘이 맘카페를 사회의 파워게임에서 우위를 점하게 했지만, 바로 그 힘이 때때로 집단 린치와 다를 바 없는 폭력으로 이어졌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공감이 넘치는 맘카페의 분위기는 분명 폭력적인 상황과 잘못을 인지하게끔 하는 감수성을 무뎌지게 하고 있다.
이제 3부의 내용을 요약해 보자. 맘카페가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와 분명히 구분되는 특징은 모성과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다. 엄 - P162

마들은 이 모성적 특징에 기반을 둔 둥글둥글한 세계에서 동질감을 느끼며 서로 공감하고 응집한다. 그런데 이 둥글둥글함은 객관적인 사리 판단을 흐리게 하고, 둥글둥글함을 가장한 공격성으로 발현되기도 쉽다. - P163

"불편하지만 패스해 주세요"라는 문장이 문제적인 건 바로 이 지점이다. 그 말은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결국 - P194

사람들이 점점 자신의 생각과 이질적인 의견을 타당한지 따져보지도 않고, 곧장 불편해하고, 아예 듣지도 않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맘카페에는 배려라는 명목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벽을 쌓고, 입맛에 맞는 의견만 보면서 생각을 확증 편향하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이런 지점은 모든 인터넷 커뮤니티의 공통적인 한계라고할 수 있겠지만, 맘카페에 좀 더 두드러지는 측면이 있다는 건 부정하기 힘들다. - P195

우리는 공감이라는 프레임을 조심해야 하듯 약자라는 프레임도 조심해야 한다. 앞에서도 적었지만 공감 능력이 곧 착하다는 뜻은 아니다. 약자는 언제나 착하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 ‘약자는 선하다는 프레임‘ 안에서 ‘착한 사람들의 정의로운 행동‘이라 합리화하며 생겨난 사건들이 있었고, 이는 결국 남을 굴복시키고 자신의 우위를 점하려는 이기심을 만족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처럼 공격성을 수반하며 종국엔 갑질로 귀결된 사건들을 맘카페란 공간도 그간 다분히 보여주었다. 이렇게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맘카페로 인해 가게가 폐업하고, 사람의 죽음까지 목격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 P206

인간의 본성은 힘이라는 것이 주어질 때 드러난다. 힘이 없던 약자가 선량한 존재라고 착각하기 쉬운 이유는 그들의 공격성이 억눌려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든든한 힘을 가지는 세상이다. ‘나는 힘이 없는 존재‘라는 전제는 오히려 무분별한 공격성을 합리화하게끔 하는 매우 위험한 가정이 되어버렸다.
현실 세계에서 온갖 갑질 사건이 난무하게 된 것 역시 이와 연관이 있다고 본다. 이제 우리에게는 "맘카페에 올리겠다", "▵▵ 커뮤니티에 올리겠다", "별점 테러를 하겠다"라는 말들이 너무나 익숙해졌다. 맘카페와 같은 공간에선 이런 공격성이 강력하게 발현되고, 이용자들의 이성적인 판단력을 더욱 흐리게 만들기도 쉽다. ‘약자는 선량하다‘는 함정이 ‘내 편‘을 찾으면서, 나의 이기심을 강화하고 집단의 힘을 좇는 일로 이어졌던 것은 아닌지 냉정한 성찰이 필요하다. - P208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저출산의 기조가 이어질수록, 육아를 경험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점점 줄어들수록, 엄마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쉽게 비난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를 아는 사람 자체가 줄어들게 되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 사회에서 엄마라는 존재는 그저 무의미한 일을 하는 사람, 아이 하나 단속 못 해 민폐를 끼치는 사람에 불과해졌을 뿐이다. 이런 혐오가 넘쳐나니 누가 쉽사리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겠다고 하겠는가? - P250

혐오는 거기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결정하는 일을 망설였는데, 사회적으로 지탄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엄마를 나의 미래로 굳이 선택할 이유가 없다. 남성 역시 결혼을 꺼리는 분위기가 가속화되어 가고 있다. 일부 사례를 확장하며 남녀가 서로를 계속 불신하고 있고, 결혼의 전 단계인 연애마저도 꺼린다. - P251

지금 이 시대에,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세상에서 제일 ‘귀한‘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그 ‘희귀한‘ 아이들이 받는 대우는 희한하게도 천덕꾸러기를 넘어 ‘그 존재 자체가 불편해진‘ 아이러니를 우린 바라보고 있다. 이 같은 모순점은 결국 저출산이 가져온 아동과 육아에 대한 몰이해가 아동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는 악순환임을 시사한다. - P262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무엇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을 그토록 가로막고 있는지, 엄마들의 ‘작은 선의‘가 어떻게 발현되고 있거나 때때로 어긋나고 있는지,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과연 우리 사회에서 - P321

어떤 의미인지를 묻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맘카페라는 공간을 통해 바로 그 질문에 답하고자 했다. -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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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 -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살아낸, 끝날 수 없는 생존의 기록
김잔디 지음 / 천년의상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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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모든 일을 시작할 때 기대했던 것은 단 하나다. 잘못된 일을 잘못이라고 말했을 때 잘못한 사람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진정한 사과를 해서 결국 나의 상처가 회복되고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피해자인 나에게도 가해자인 상대방에게도 최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잘못이 없는 세상이라면 좋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누군가의 어떤 잘못의 끝이 피해자의 좌절과 가해자의 포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그것을 회복하려고 노력한 후 우리가 힘겹고 아픈 길을 걸어왔기에 결국 어제보다 조금 나은 오늘이 되었다고 위안하며 더욱 건강한 내일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그것이 이루어질 사회라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생각한 자연스러운 이야기이다.
그러나 나에게 성폭행을 행했던 직원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 P6

뻔뻔하게 직장 내부에 사건에 대해 왜곡된 사실을 알려, 시청에서는 내가 당한 범죄 사실이 화간이라고 소문이 나는 지경이 되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더했고, 오랜 시간 성적 괴롭힘을 주었던 박원순 시장은 내가 고소하자마자 피소 사실을 알게 된 후 결국 생을 마감했으며 그를 지지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공격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몹시 자연스럽지 않아서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이다. - P7

시청 젠더특보는 나에게 정신건강의학과를 소개시켜주었고, 그곳에서 내 정신상태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오랜 시간 지속된 - P8

박원순 시장의 성적 괴롭힘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성폭행 사건으로 곪아 터진 것이었다. 골다공증 환자에게 교통사고가 일어난이다. 당연히 온몸은 으스러졌고, 여느 교통사고보다 크게 다쳤다. 나는 죽고 싶었지만, 죽기를 결심했기에 그 죽을 각오로, 죽을 때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내가 입었던 피해에 대해 바로 잡아야 죽는 순간에라도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그와 나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했을 때 법 앞의 평등이라는 원칙 아래 나의 안전이 보호받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사법 절차뿐이라고 생각했고 고소를 결심했다. - P9

나를 지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내게 모멸감을 안겨준 일이 적시된 증거의 확보였다. 박원순 시장이 내게 보낸 문자와 사진들 말이다. - P31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던 나의 모습이 그에게는 그의 어떤 모습이든 이해해줄 자신의 사람으로 착각하게 하고 나 - P56

를 함부로 대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나의 노동에 의미를 부여할 수록, 나의 인간다움이 존중받지 못하게 된 것 같아서 서글프다. - P57

"죽었대."

비로소 현실감이 들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머리가 빙글 돌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나는 결국 바닥에 쓰러졌다.

‘뭐라고? 왜? 도대체 왜? 나 때문에? 내가 고소해서? 나한테 미안해서? 아니잖아. 다른 이유 때문이잖아?‘

다른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나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 내가 사람을 죽였다. 나는 강해져야만 했다. 다윗과 골리앗처럼 불 보듯 너무도 뻔한 강자와 약자의 싸움이지만 진실의 힘으로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고소를 준비하며 나를 걱정하는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물맷돌을 던지는 시늉까지 했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이, 시장님의 자살이 너무 끔찍했 - P71

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나 장례식에 가봐야겠어. 나 때문이야. 내가 사람을 죽였어.
난 어떻게 살아. 나도 죽을 거야."

나는 절규했다. 하늘이 무너지도록 소리쳤고, 바닥이 꺼지도록 발버둥치며 오열했다. - P72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고 부르는 그들의 마음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어떤 악의가 있어야 그럴 수 있을까. 그것은 부주의한 게 아니었고 의도적인 것이었다. 사람들의 야만적인 이기심에 가슴이 쓰라렸다. 나를 부정하고자 하는 것인가, 나의 피해를 부정하고자 하는 것인가. 나는 그냥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다. 손등에 꽂은 주삿바늘이 눈에 들어온다. 수액 호스가 보인다. 거울을 깨고 싶다. 혼란스럽다. 내가 죽으면 모든 게 해결될까. - P79

나는 죽고 싶었지만, 죽임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상황을 피하고 싶었지만, 피할 수 없다면 나를 지키는 것이 필요했다. 나는 강해져야만 했다. 그렇게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 P80

나는 울면서 말했다.

"제가 죽으면, 저의 피해를 인정해주지 않을까요. 그러면 저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고 여성운동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님께서 힘주어 말씀하셨다.

"잔디, 잔디가 다른 무엇보다 제일 소중해요. 여성운동이 10년 후퇴한다고 해도 잔디가 제일 중요해요. 마음 강하게 먹어요."

눈물과 콧물이 수돗물처럼 흘렀다. 모두가 내가 죽기를 바란다고 생각했다. 내가 죽으면 오히려 여성운동에 큰 전환점이 되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된 - P114

생각을 안아주시며 내게 말씀하실 때, 그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셨을지 상상할 수도 없다. 너무 죄송하다.
나는 감사하게도 이 말을 자주 되된다. 여성운동 10년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존엄성.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성운동 10년을 다 바쳐서라도 구하고 싶은 나의 존엄성. 세상의 수많은 피해자분들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동일한 위로를 느꼈으면 한다. 우리는 반드시 더 잘 살아야 한다. 우리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이다. - P115

"네 삶이 끝없는 싸움의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유불리를 따라 너를 이용할 뿐이다."

기자회견 직전 전 비서실장님으로부터 받았던, 기자회견을 미뤄달라는 내용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어쩌면 그분은 이미 계획하고, 나를 협박한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나의 인생을 끝없는 소용돌이로 휘말리게 할 사람들은 다른 누구도 아바로 자신들이라는 것을 그 악마 같은 사람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 P118

오랜 고민 끝에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내 인생은 누가 뭐래도 내가 직접 선택한다. 당신들이 아무리 뭐라고 나를 비난해도 나는 떳떳하다. 나는 무서워서 숨는 것이 아니다. 당신들이 나를 더 괴롭힐 수 있는 여지를 없애기 위해 나는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나를 지킬 것이다. - P134

앞에서도 잠깐 페미니즘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는 얘기를 했지만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었다. 그러나 힘든 일을 겪었을 때 나를 지켜주는 것은 오직 연대라는 것을 이번 일을 겪고 깊이 체감했다. 많은 분들이 이 사건을 위해 힘써주신다는 것에 벅찬 마음으로 감사하며, 사회에 커다란 빚을 지고 있는 기분이다. 그분들께서 이 사건을 챙기느라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들을 돌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 순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누군가가 외면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거운 마음으로 감사를 느낀다.
지금 지고 있는 이 빚을 갚을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나의 작은 연대가 누군가에게 숨통 트이는 희망이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 P148

꽃뱀이라는 공격은 무섭지 않았다. 사실이 아니니까. 나는 당당하니까. 그렇지만 나의 사진과 영상들이 계속해서 유포, 확산, 재생산되는 것은 무서웠다. 평생 숨어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저 잔인한 짐승들끼리 원본을 주고받았을 가능성도 있겠지. 길 가다가 나를 알아보고 해코지하면 어떡하지. 두려웠다. 나는 성형 - P166

을 알아봤다. - P167

강인한 마음으로 성형을 알아봤지만, 알아볼수록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대책위에서도 반대하셨다. 특히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부소장님(현 소장님)께서 이러한 현실에 너무 마음 아파하셨다. 그러나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내 인생을 스스로 지킬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나를 공격하려 해도 나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성형수술 의료사고들에 대해 찾아봤다. 수술 중에 마취 사고로 죽는 것이 용기없는 나에게 가장 편한 죽음의 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족들 몰래 의료사고가 있었던 것으로 유명해 모두가 피한다는 병원을 예약했다. 엄마에게 모든 계정과 계좌의 비밀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혹시 몰라서 동생에게도 알려주었다. 그야말로 신변을 정리했다. 두렵기도 했지만, 나도 모르게 마음이 후련해졌다. - P167

국가인권위원회는 2021년 1월 25일 저녁 박원순 시장의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발표했다. 사건에 대한 국가기관의 명확한 판단을 기대했는데, ‘성희롱‘이라는 단어로 내가 겪은 피해를 축소하려는 것처럼 느껴져 다시금 절망스러웠다. 그러나 당사자가 고인이 되어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을 고려해 최대한 - P180

보수적으로 판단한 결과임에도 나의 피해 사실들이 대부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위법상 ‘성희롱은 성추행을 포함하는개념‘이라고 설명했지만, 일반인이 받아들이기에 ‘성희롱‘과 ‘성추행‘의 의미는 명확히 다르기 때문에 나는 ‘성희롱 피해자‘라는 새로운 옷을 입고 심각한 2차 가해에 시달리고 있다. 인권위는 공교롭게도 2020년 7월 이후 ‘성추행‘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 P181

나는 잘 몰랐지만 국회의원 남인순은 여성운동을 주도한 여성계 대모로 불리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극비의 보안 속에서 진행된 박원순 시장 고소 사실을 미리 알고 임순영젠더특보에게 통보를 했을까. - P182

남인순 의원은 그렇게 중간에서 피소 사실 유출의 다리를 놓고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는 시장님 자살 이후 성폭력 사건이 알려진 이후 나를 ‘피해호소인‘이라고 지칭하면서 2차 가해를 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뻔뻔하게 서울시장 후보 박영선 캠프에서 다시 여성 인권을 부르짖는 모습을 언론을 통해 보면서, 감정을 제어하기 어려웠다. - P183

제가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해 긴 시간 고민해온 결과, 저는 깨달았습니다.
저의 회복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용서라는 것입니다.
용서란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준다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지은 죄‘와 ‘잘못한 일‘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게 먼저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가 겪은 사실을 사실로 인정받는 것, 그 기본적인 일을 이루는 과정 - P196

은 굉장히 험난했습니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인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리가 바뀌었고, 고인을 추모하는 거대한 움직임 속에서 우리 사회에 저라는 인간이 설 자리가 없다고 느껴졌습니다. 그 속에서 제 피해 사실을 왜곡하여 저를 비난하는 2차 가해로부터 저는 쉽게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 사건의 피해자는 시작부터 끝까지 저라는 사실입니다.
아직까지 피해 사실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께서 이제는 소모적 논쟁을 중단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방어권을 포기한 것은 상대방입니다. 고인이 살아서 사법 절차를 밟고, 스스로 방어권을 행사했다면 조금 더 사건의 진실에 가까워졌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고인의 방어권 포기로 인한 피해는 온전히 제 몫이 되었습니다. 피해 사실을 인정받기까지 험난했던 과정과 피해 사실 전부를 인정받지 못하는 한계, 그리고 이 상황을 악용하여 저를 비난하는 공격들. 상실과 고통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그 화살을 저에게 돌리는 행위는 이제 멈춰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P197

저는 그동안 제가 고소하기로 한 결정이 너무도 끔찍한 오늘을 만든 건아 닐까 하는 견딜 수 없는 자책감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의 시작도 제가 아닌 누군가의 ‘짧은 생각‘ 때문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이 일로 인해 우리 사회는 한 명의 존엄한 생명을 잃었고, 제가 용서할 수 있는 ‘사실의 인정‘ 절차를 잃었습니다.
‘사실의 인정‘과 멀어지도록 만들었던 피해호소인 명칭과 사건 왜곡, 당헌 개정, 극심한 2차 가해를 묵인하는 상황들.
처음부터 모두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모든 일이 상식과 정의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상식과 멀어지는 일들로 인해 너무도 괴롭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고 싶습니다. 잘못한 일들에 대하여 진심으로 인정하신다면 용서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도 존재하는 그분과 남은 사람들의 위력 때문에 겁이 나서 하는 용서가 아닙니다.
저의 회복을 위하여 용서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 과연 제가 누구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 - P198

이 들고, 오히려 직면한 현실이 두렵기까지 합니다.
저는 불쌍하고 가여운 성폭력 피해자가 아닙니다.
저는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는 존엄한 인간입니다.
사실에 관한 소모적인 논쟁이 아닌 진정성 있는 반성과 용서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사회를 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이번 사건의 이유가 무엇인지 잊혀 가는 이 현실에 답답함을 느낍니다. 저라는 존재와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듯 전임 시장의 업적에 대해 박수치는 사람들의 행동에 무력감을 느낍니다. 이 사건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시며 사건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발언에 상처를 받습니다.
거대한 권력 앞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그 즉시 문제 제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주십시오.
권력의 불균형 속에서 누군가 고통을 받는 일이 생긴다면, 모두가 약자의 고통을 공감하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사회를 만들어주십시오.
여성과 약자의 권익을 위한 운동이 진영과 상관없이 사회적인 흐름임을 인정하고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피해자가 조심하는 것이 아닌, 피해자가 좋게 에둘러서 불편함을 호소해야 바뀌는 것이 아닌,
가해자가 스스로 조심할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의 많은 말 못 할 상처를 가진 외로운 피해자분들에게 전합 - P199

니다.
잠들기 전, 자꾸 떠오르는 불쾌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생각하다가 베개를 적시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일입니다.
애써 웃으며 넘어가려고 하지 마세요. 참다 보면, 돌이키기 어려운 순간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 P200

그 뒤 하루 만에 검찰에서 발표가 났다. 고소 관련 정보가 피의자 박원순에게 전달된 경로는 김영순(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남인순(국회의원)-임순영(서울시 젠더특보)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조사를 받는 동안 열린 대책회의에서 박 시장은 "4월 이전에 (고소인과) 주고받은 문자가 문제될 소지가 있다."라고 했으며, 사망 당일 오전 "이번 파고는 넘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고 말했다. 마음이 복잡했다. 모두가 원망스러웠다. 다행인가 싶기도 했다. 슬프고 절망스러웠다.
병원에서 6개월 동안 받은 심리치료는 박원순 시장의 죽음이 ‘나 때문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수사 결과를 듣고 결국 사실은 ‘나 때문이었다.‘라는 마음이 들어 너무도 절망스러웠다. 아직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너무나 원망스럽다. 나는 내가 받은 피해에 대한 법적인 절차를 밟고, 용서하고 싶었을 뿐이다. 고 - P206

소 사실이 시작부터 유출되어 결국 나는 법이 정해준 절차 속에서 나의 피해에 대해 말하고, 그 속에서 피해를 인정받고, 가해자를 용서하고 마음의 응어리를 내려놓을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이번 파고는 넘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마음으로 생을 마감하게된 이 끔찍한 비극을 누가 만들었는가. ‘누군가‘의 자기 진영을 지켜야 한다는 욕심과 ‘누군가의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보호하려 했던 잘못된 판단, ‘누군가‘의 이 모든 일을 죽음으로 끝낼 수 있다.
는 잘못된 결심이 없었다면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행복할 수 있었우리는 지금보다 괴롭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는 조금 더 살 만한 사회를 볼 수 있었다. - P207

나도 내가 위태로운 상태라는 것은 알았다. 최근 공군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 때문에 심리적으로 상당히 무너져 있는 상태였다. 결국 나의 사건도 내가 생을 마감해야만 끝이 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모든 성폭력 피해의 괴로움은 필연적으로 죽음과 맞닿아 있고, 피해자가 죽음으로써만 끝낼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 - P264

이 나의 모든 생각을 잠식시켰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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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털갈이엔 브레이크가 없지 - 본격 애묘 개그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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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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