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카페라는 세계 - 엄마들이 모인 공간은 정녕 '마녀들의 소굴'인가
정지섭 지음 / 사이드웨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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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맘카페가 제공하는 소속감의 성격이 밝고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맘카페에서 활동하고 친목을 다지는 동기는 정서적인 안정감보다는 소외되지 않기 위한 불안감에 더욱 가까운 것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이것이 맘카페에 가입하고 활동하는 더 주된 동기라고 본다.
실제로 내가 운영하는 맘카페에서 신규 회원의 가입 목적에 관해 물었을 때 십중팔구는 ‘정보 공유‘라고 적는다. 이는 정보 시장에서 내가 도태될 것이라는 불안감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 정보의 범주는 육아 관련 지식이 될 수 있고, 학교 관련이나 사교육 관련 내용일 수도 있고, 어느 반찬가게가 괜찮은지 같은 생활 정보까지 포함된다. - P99

그 정보에 대한 열띤 탐색엔 기본적으로 ‘혼자서 육아를 책임져야 하는‘ 핵가족 시대의 짙은 불안감이 반영되어 있다. - P100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호튼 쿨리 (C. H. Cooley)의 ‘거울 속의 자기이론(Looking Glass Self)‘은 맘카페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설명하는 데 아주 유용하다. 쿨리는 ‘우리는 주위 사람들을 거울로 삼고 그거울에 자신을 비춤으로써 나를 파악한다‘는 자신의 이론을 부연하며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본성은 개인, 교우관계, 이웃 같은 집단 속에서 발현한다. 타인과의 교류 없는 개인의 본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고립은 이를 부식시킨다."
맘카페는 1차적으로 엄마를 고립시키지 않기 위한 공간으로서의 강력한 의의를 가진다. - P111

현대사회에서 여성이 엄마가 된다는 것은, 그전까지 성 중립적으로 겪어온 세계와 전혀 다른 것이 펼쳐진다는, 어떻게 본다면 전근대 시절보다 여성에게 자신이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더욱 강하게 확인하게끔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혼란 속에서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기준이 되는 집단‘이 필요하다. 인터넷 속의 ‘맘카페‘라는 공간은 그렇게 엄마라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준거집단이 되었다. 이 맘카페의 집단 정체성이야말로 맘카페가 작동하는 가장 중요한 기제일 것이다. - P112

남성의 공격적인 태도는 사회적으로 용인되어 왔고, 남자다움이라며 권장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성의 공격적인 태도는 부정적인 수식어에 가까우며 최대한 숨겨야 한다. 특히 엄마의 공격성은 평소에 여러 이유로 억눌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물리적인 특성이 차단되고 익명성으로 자신을 숨길 수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는 여성도, 엄마도 과거와 달리 공격성을 쉽게 드러낼 수 있다.
결국 이렇게 맘카페라는 공간은 엄마들의 공격성을 발현하기 좋은 곳이 되었다. 엄마들의 둥글둥글함이 모여 공감을 얻고, 이는 종종 이성적인 판단력을 흐리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엄마들의 뛰어난 공감 능력을 ‘선한 존재‘의 필수적인 덕목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이제는 공감의 복합성, 공감의 역설에 관해서도 성찰할 때가 되었다. 과연 맘카페와 같은 ‘힘을 가진 집단‘에서 공감이 언제나 ‘선함‘을 위해 존재했던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 P144

우리는 언젠가부터 개인의 공감 능력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의 감정에 쉽게 이입할 줄 아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타인에게 잘 몰입하는 특성이 반드시 선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 착각이 집단이기주의적인 행동을 합리화하는 기제가 된다. 그런 ‘역지사지의 명암‘이 잘 드러나는 곳이 맘카페다.
맘카페는 더 이상 "저 속상해요.", "여기 털어놓고 끝내요."로 정도로 끝나는 집단이 아니며, 그러한 응집력을 바탕으로 자기 집단의 힘을 추구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 힘이 맘카페를 사회의 파워게임에서 우위를 점하게 했지만, 바로 그 힘이 때때로 집단 린치와 다를 바 없는 폭력으로 이어졌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공감이 넘치는 맘카페의 분위기는 분명 폭력적인 상황과 잘못을 인지하게끔 하는 감수성을 무뎌지게 하고 있다.
이제 3부의 내용을 요약해 보자. 맘카페가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와 분명히 구분되는 특징은 모성과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다. 엄 - P162

마들은 이 모성적 특징에 기반을 둔 둥글둥글한 세계에서 동질감을 느끼며 서로 공감하고 응집한다. 그런데 이 둥글둥글함은 객관적인 사리 판단을 흐리게 하고, 둥글둥글함을 가장한 공격성으로 발현되기도 쉽다. - P163

"불편하지만 패스해 주세요"라는 문장이 문제적인 건 바로 이 지점이다. 그 말은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결국 - P194

사람들이 점점 자신의 생각과 이질적인 의견을 타당한지 따져보지도 않고, 곧장 불편해하고, 아예 듣지도 않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맘카페에는 배려라는 명목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벽을 쌓고, 입맛에 맞는 의견만 보면서 생각을 확증 편향하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이런 지점은 모든 인터넷 커뮤니티의 공통적인 한계라고할 수 있겠지만, 맘카페에 좀 더 두드러지는 측면이 있다는 건 부정하기 힘들다. - P195

우리는 공감이라는 프레임을 조심해야 하듯 약자라는 프레임도 조심해야 한다. 앞에서도 적었지만 공감 능력이 곧 착하다는 뜻은 아니다. 약자는 언제나 착하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 ‘약자는 선하다는 프레임‘ 안에서 ‘착한 사람들의 정의로운 행동‘이라 합리화하며 생겨난 사건들이 있었고, 이는 결국 남을 굴복시키고 자신의 우위를 점하려는 이기심을 만족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처럼 공격성을 수반하며 종국엔 갑질로 귀결된 사건들을 맘카페란 공간도 그간 다분히 보여주었다. 이렇게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맘카페로 인해 가게가 폐업하고, 사람의 죽음까지 목격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 P206

인간의 본성은 힘이라는 것이 주어질 때 드러난다. 힘이 없던 약자가 선량한 존재라고 착각하기 쉬운 이유는 그들의 공격성이 억눌려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든든한 힘을 가지는 세상이다. ‘나는 힘이 없는 존재‘라는 전제는 오히려 무분별한 공격성을 합리화하게끔 하는 매우 위험한 가정이 되어버렸다.
현실 세계에서 온갖 갑질 사건이 난무하게 된 것 역시 이와 연관이 있다고 본다. 이제 우리에게는 "맘카페에 올리겠다", "▵▵ 커뮤니티에 올리겠다", "별점 테러를 하겠다"라는 말들이 너무나 익숙해졌다. 맘카페와 같은 공간에선 이런 공격성이 강력하게 발현되고, 이용자들의 이성적인 판단력을 더욱 흐리게 만들기도 쉽다. ‘약자는 선량하다‘는 함정이 ‘내 편‘을 찾으면서, 나의 이기심을 강화하고 집단의 힘을 좇는 일로 이어졌던 것은 아닌지 냉정한 성찰이 필요하다. - P208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저출산의 기조가 이어질수록, 육아를 경험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점점 줄어들수록, 엄마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쉽게 비난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를 아는 사람 자체가 줄어들게 되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 사회에서 엄마라는 존재는 그저 무의미한 일을 하는 사람, 아이 하나 단속 못 해 민폐를 끼치는 사람에 불과해졌을 뿐이다. 이런 혐오가 넘쳐나니 누가 쉽사리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겠다고 하겠는가? - P250

혐오는 거기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결정하는 일을 망설였는데, 사회적으로 지탄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엄마를 나의 미래로 굳이 선택할 이유가 없다. 남성 역시 결혼을 꺼리는 분위기가 가속화되어 가고 있다. 일부 사례를 확장하며 남녀가 서로를 계속 불신하고 있고, 결혼의 전 단계인 연애마저도 꺼린다. - P251

지금 이 시대에,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세상에서 제일 ‘귀한‘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그 ‘희귀한‘ 아이들이 받는 대우는 희한하게도 천덕꾸러기를 넘어 ‘그 존재 자체가 불편해진‘ 아이러니를 우린 바라보고 있다. 이 같은 모순점은 결국 저출산이 가져온 아동과 육아에 대한 몰이해가 아동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는 악순환임을 시사한다. - P262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무엇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을 그토록 가로막고 있는지, 엄마들의 ‘작은 선의‘가 어떻게 발현되고 있거나 때때로 어긋나고 있는지,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과연 우리 사회에서 - P321

어떤 의미인지를 묻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맘카페라는 공간을 통해 바로 그 질문에 답하고자 했다. -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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