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그것이 그의 모습이었다. 불가해하면서 변덕스러운 존재. 블랙박스면서 기폭장치이며, 거리를 두면서도 영역을 침범하는. - P37
《모터 트렌드》가 《마리끌레르》를 만난 현장. 나는 이 차이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이걸 보려고 5600마일이나 날아 온 것인가? 우리가 27년 만에, 역사적인 글라스노스트 이후 위험하기 - P50
짝이 없는 재회를 했는데, 그녀는 마치 나파 자동차용품점과 윌리엄스소노마를 들렸다 온 사람처럼 굴었다. - P50
부다 지구의 언덕을 오르면서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의 유년 시절이 주조된 대장간이었던 도시에 와 있구나. 그의 성격이 주조된 그 모루에. 이제 이곳은 그 - P57
녀가 선보이는 ‘탕아의 귀환‘ 의 무대가 되었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선 거리감 덕분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평생 동안 맥락을 알 수 없는 남자를 만나 왔다. 이제 맥락을 알게 되었지만, 난감했다. 그 남자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 P58
"통제력이 핵심이란다." 그는 이렇게 말하길 좋아했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은 드러나지 않아야 해." 낮 시간을 보내는 수족관의 어둠 속에서, 손은 화학약품 통에 넣고 작업을 위한 붉은 안전광 하나를 켜 놓은 채, 그는 어둡게도 하고 밝게도 만들면서 사진을 조작했으며, 신체의 일부와 건물과 전체 풍광을 없애 버렸다. 그는 자신이 영화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던 그것을 사진술에서 성취했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 P68
그는 내 교육이나 직업적인 측면에 거의 개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차례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라 - P70
고 조언했다. 초등학교 신문반에 처음으로 합류한 날부터 결점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드러내는 일로 들떠 있었던 딸에게는 좀 이상한 조언이었다. 우리가 이야기 나누지 않았던 몇 년 동안, 그리고 우리가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한 그 몇 년 동안에는 더욱, 우리 관계의 핵심에 놓여 있었던 것은 삭제와 폭로, 에어브러시와 기자 수첩, 그리고 감추기의 달인과 그것을 드러내려는 수습기자 사이에서 격화된 싸움이었다. - P71
"나는 이제 공격적인 마초 맨을 가장하는 게 진절머리가 난다. 나의 내면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지." 아버지는 이메일에 이렇게 적었다. 거의 40년이나 흘렀고, 아홉 개의 표준 시간대를 지나왔지만, 내가 그녀의 새로운 인격에서 그 폭력적인 남자의 이미지를 지워 버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혼 판결이 아버지를 위험에 빠진‘ 피해자로 만들어 줬던 것처럼 간단하게, 새로운 인격이 그 폭력적인 자를 지워 버릴 수 있었다고 믿어야 했을까? 새로운 정체성이 이전의 정체성을 구원해 줄 뿐만 아니라 그 정체성을 삭제해 버릴 수도 있을까? - P91
하지만 ‘당신이 필연적으로 되어야 했던‘ 그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당신이 누구인가는 당신이 이뤄 낸 누구인가, 아니면 당신이 물려받은 것과, 그것의 유전적, 가족적, 종족적, 종교적, 문화적, 역사적 요인의 운명적인 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가? 즉, 정체성이란 당신이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당신이 피할 수 없는 무엇인가?
*** 누군가 나에게 정체성을 밝히라고 한다면, 국적이나 직업과 같은 일반적인 것들과 함께 나는 여자이고 유대인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런 이름표 각각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그 바탕을 의심하게 된다. 나는 여성성에 따르는 전통적 통과의례 대부분을 용케 피하면서 살아온 여자다. 나는 아이가 없다. 나는 모성을 갈구해 본 적이 없다. 나의 ‘생체 시계‘ 때문에 불안해한 적도 없다. 나는 중년이 될 때까지 결혼하지 않았고, 함께한 지 20년이 넘은 남자 친구와의 결혼이란 시청에서 벌어진 충동적인 사건일 뿐이었다. 집안일과도 - P92
거리가 멀었다. 요리에 관심이 없고, 정원을 보살피지도 않으며, 바느질은 전혀 하지 않는다. 한동안 뜨개질을 하기는 했지만, 이건 사실 페미니스트 수공예 책인 『스티치 앤 비치 Stitch‘n Bitch』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유대 법률, 의식, 기도문 등에 무지한 유대인이다. 유월절에 키두시 초반 몇 구절을 입에 올릴 수는 있지만, 의미도 거의 모르는 채 하가다의 음성 표기를 슬쩍 훔쳐보면서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유대인 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 유대교 성인식을 치른 적도 없고, 우리 가족은 요크타운 하이츠에 있는 유일한 유대교회당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았는데, 사실 그곳도 어쨌거나 아주 느슨한 개혁파여서 차라리 유니테리언교라고하는 편이 나았다. 사실 나는 엄밀히 말해 유대인도 아니다. 어머니는 부계만 유대계였는데, 가장 자유주의적인 계파를 제외한 대개의 율법학자들에게 모계에 유대인의 피가 흐르지 않는 나는 비유대인으로 여겨질 터다. 이 정체성들에 대한 나의 충성이 의식과 의례에 결합되어 있지 않다면, 그 정체성의 기원은 무엇인가? 나는 반유대주의자들이 사는 마을에서 자란 유대인이다. 그 - P93
리고 60년대 초반 미국의 성차별주의적인 편견에 푹 빠져 있는 소녀 시대를 보낸 여자다. 내가 누구다라는 감각은, 내가 그 좌표를 파악할 수 있는 한, 반골 기질과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만약 그 정체성이 위협당한다면, 나는 그것을 주장했다. 나의 정체성’은 그것이 가장 위협당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더 활발해졌다. - P94
페미니즘이란, 계속되는 만트라에 따르면, ‘선택‘에 대한 것이다. 내가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선택했을까? 그것은 내가 물려받은 것, 내가 조절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역사로부터 이룩해낸 것이 아닌가? 아내와 아이들 위에 군림하는 남자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분노 때문에 나는 여성 평등을 위해 움직이는 운동가가 되었다. 페미니스트로서 나의 정체성은 아버지가 겪은 ‘정체성 위기‘의 잔해, 자신이 선택한 남성적인 페르소나를 주장하지 못했던 좌절에서 태어났다. 취미이자 피난처였던 페미니즘은 내가 선택한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내가 도망치지 못했던 것은 아버지였다. *** 1968년 에릭 에릭슨은 ‘정체성‘이란 말이 거울방의 거울처럼 "어디에나 존재하는 만큼이나 불가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체성 위기‘라는 말을 고안해 내기 바로 직전에) 이 말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이 주제에 대한 무거운 책 『정체성: 청년과 위기Identity: Youth and Crisis』의 첫 페이지에서 그는 정체성의 의미를 정의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말할 수 있는 최선은 정체성의 ‘감각‘이란 "활성화된 동일성과 연속성에 대한 주관적인 감각"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사람이나 사물이 그 자체이고, 다른 어떤 것이 아님"이라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처럼 뒤이은 정의들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개인적 정체성의 흐리멍덩한 의미를 보면, 위기는 필수 불가결한 것처럼 보였다. 수년간 ‘정체성 이론‘을 내놓으려는 시도 - P99
들은 실패했다. 1967년에 사회학자 네이선 라이츠는 (UCLA 동료이자 성전환 치료의 선구자인 로버트 스톨러가 말했듯이) "정체성이란 용어는 막연함, 모호함, 비슷한 말의 반복, 임상 자료의 부족, 그리고 설명의 빈곤을 감추기 위한 화려한 의상만큼이나 쓸모가 없다"고 한탄했다. 대중화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체성을 규정하기」라는 1983년 논문에서 역사학자 필립 글리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체성이 점점 더 클리셰가 되어감에 따라, 그것의 의미는 점차 산만해지고, 따라서 갈수록 더 느슨하고 무책임하게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우울하게도 정체성에 대한 토론으로 통하는 많은 논쟁들이 거들먹거리는 지리멸렬한 논의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 모든 애매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에릭슨의 시대와 우리 시대를 정의하고 꿰뚫는다. 개념으로서 정체성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심리학 이론에 들어가지 못했다. 에릭슨이 그의 전문 영역의 선배들에게서 선행 언급을 찾으려고 했을 때, 그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1926년 빈의 브나이브리스협회에서 한 연설에서 단 한 번, 그용어를 언급한 적이 있음을 발견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가 자신을 유대인으로 만든 것이 무엇인지 묘사하고 있었다. "믿음도 민족적 자부심도 아니었습니다." 프로이트가 고백했다. "내면의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의식만큼이나, 더 강력할수록 더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수많은 모호한 감정적 힘들"이 그를 유대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유대인이라고 느꼈을 뿐 왜인지 말할 수 없었다. 초기에, 에릭슨은 개인의 정체성을 당신이 획득하고 당신 혼자 스스로 전시하는 어떤 것으로 정의하려고 하지 말라고 충 - P100
고했다. 그는 "교체할 수 있는 단순한 ‘역할들‘, 혹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단순한 ‘외양‘, 혹은 단순히 강고한 ‘태도들‘은 비록 그것들이 ‘자아 탐구‘의 중요한 요소라고 하더라도 진짜는 아니"라고 썼다. 그리고 견고한 자아는 자기 계발과 집단적 유산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개인적인 성장과 상호적인 변화를 분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 경험하는 정체성의 위기와 역사적 발전에서 일어나는 당대의 위기를 구분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각각이 서로를 정의하고 진정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정체성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에릭슨은 당신의 과거를 당신의 현재와 통합하고, 심지어 (또는 특히) 당신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당신의 경험의 모든 부분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누군가 원치 않는 역사인 "삶의 다양하고 모순되는 단계와 양상"을 부정하려고 할 때, 그리고 대신 "완벽해야만-하는-범주"를 고집할 때, "그는 우리가 전체주의라고 부르는 의지를 취함으로써 그 자신과 세계를 개혁하려고" 하며, 그것은 새로운 정체성이 유기적인지 혹은 그 요소들이 일관적인지와 상관없이 그것을 고집하면서 폭군이 "완벽한 경계"를 순찰하는 내면의 독재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에릭슨 본인은 그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에릭슨의 학부 제자였던 철학자 마셜 버먼은 "에릭 에릭슨, 자기 자신을 발명한 남자"라는 1975년 글에서 스승이 쓴 자서전적인 글에 충격적일 정도로 중요한 사실이 누락되어있음을 발견했다. 에릭슨이 자신의 과거를 세탁해 버린 것이다. - P101
나는 유대인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모호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단호하게 스스로를 유대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인생의 모든 순간에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상기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체성이 다른 어딘가에 놓여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었던 셈이다. - P104
이 이미지 상영회에서 ‘비포‘와 ‘애프터’라는 주제는 반복되었다. 아버지는 수술 전과 수술 후 자아 사이에 두꺼운 선을 그리려는 듯했다. 마치 지금 성취한 기품 있는 노부인의 훌륭함과 이전의 성적 매력이 있는 젊은 여자의 모습들 사이에 선을 긋고, 그들을 더 이상 원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야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 같았다. - P112
현대 트랜스젠더리즘의 지배적인 입장은 성별 정체성과 섹슈얼리티는 혼동되어서는 안 되는 별개의 영역이라고 설명한다. "트랜스젠더는 성적 지향이나 섹스, 혹은 생식기와는 무관하다." 온라인의 정보 사이트들은 전형적으로 설명한다. "트랜스젠더는 오직 성별 정체성과 관계된 것이다." 하지만, 내 아버지의 서류철 안에는 분명하게 성적인 단어로 표현된 그녀의 젠더 단위 생식을 향한 움직임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픽션마니아와 시시 스테이션과 방대한 ‘강요된 여성화물‘에서 나타나는 트랜스젠더 정체성에서 여성이 된다는 것은 완전한 성애화를 의미했다. 여기서 여성성은 신체 결박과 모욕, 오르가즘과 관계된 것이었고, 하나의 젠더에서 다른 젠더로의 변신은 모든 단계에서 에로틱하게 묘사되었다. 그렇다면 이 두 부분은 어떻게 분리할 수 있는가? - P116
"과거에 살아 봤자 좋을 거 하나 없다." 아버지가 말했다. "헌 친구는 치우고, 새 친구를 사귀라고 하지 않디." "사는 게 그렇지가 않잖아요." 나는 말했다. 어쨌든 나는 여기에 일종의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해서 왔다. 그러니까, 그녀 말이다. 만약에 그녀가 해묵은 완고함을 철회하고 친구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기만 한다면. 하지만 우리의 상호작용은 고집스레 한 방향이었다. 상호 교환 대신, 온갖 고상한 체하는 패션과 하드디스크 판타지로의 강요된 여행만 있었다. 도대체 그녀는 언제가 되어야,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하는 이 딸을 안으로 받아들일까? - P118
그렇게도 숨어 있는 사람이 어떻게 지퍼를 여는 데 그리 열의가 넘칠까? 만약, 정말로, 그것이 그녀가 원하는 것이었다면 말이다. 이 모든 노출과 공개는 말 그대로 표피적으로 보였다. 이후로 며칠 동안 아버지는 옷장의 드레스와 서랍장의 란제리, 화장대의 화장품, 약 상자 속 에스트로겐 패치와 질 확장기, 그리고 ‘경이의 방‘에 들어 있는 온갖 진기한 물건들에 대한 덧없는 여행을 계속했다. 나는 그녀가 폭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진정한 비밀로부터 나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려고 하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나를 봐라, 하지만 나를 보지 말아라. 사진작가의 딸로서 나는 알고 있었다. 암실에 빛을 비추는 것이 증거를 드러내 줄지 그것을 망칠지는 타이밍에 달려 있음을. 아버지와 나는 시간, 그러니까 과거와 현재를 두고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스테피의 새로운 진열장에 있는 장식품들을 보고 감탄해 주기를 바랐다. 나는 잠긴 방에 숨겨진 것에 대해 알고 싶었다. 지하에 잠겨 있는 금고 속 내용물을. - P120
헝가리 방문을 준비하면서 어쩔 수 없는 인텔리인 나는 제2차 세계대전 말에 출간된 이슈트반 비보의 ‘헝가리다움‘에 대한 가차 없는 탐구가 담긴 에세이를 읽었다. 이 정치과학자는 자기 나라의 정체성을 포템킨, 즉 ‘희망사항’과 ‘허례허식‘에 불과한 것들로 만들어진 ‘자기기만’ 사회라고 보았다. "오늘날의 헝 - P130
가리인들은 유럽에서 가장 정의 내리기 힘든 집단 중 하나다"라고 비보는 쓰고 있다. 그리고 헝가리다움이란 ‘거대한 환영‘이라고 말이다. 이제 와서 비보를 떠올려 보니, 오후에 둘러본 전시가 환각을 일으킬 것만 같았다. 우리가 본 모든 것이 이상하고도 치명적이도록 사탕 과자 같았고, 이 나라의 얼굴은 하나의 환상에서 다른 환상으로 이어 붙여져 있었다. (...) 이 벽들에 걸려 있는 환영에 대해 생각했다. 발소리가 울리는 갤러리를 걸어 나가면서, 물방울무늬 옷을 입은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문득 내 머리를 스친 것은, 마치 이야기책 속의 세계로 나를 이끄는 팅커벨처럼, 가장 어두운 과거를 숨긴 잔뜩 꾸며진 역사로 나를 안내하는 테마파크 코스튬을 입은 여행 가이드의 이미지였다. 그곳에선 장소도 사람도 그들의 실제 모습이 아니었다. - P131
역사학자 야코브 카츠는 "그들의 조국 발전에 대한 기여는 다른 어떤 유럽 유대인 공동체보다 컸다"고 썼다. 그들은 누구보다 유대인들이 헝가리인이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발명했다. 그와 함께 ‘조국‘을 발명했는데, 그곳에서 그들의 날이 밝아 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새벽은 아즈텍의 일출처럼 희생과 절단을 요구했다. 황금기의 역사학자들이 ‘동화의 사회적 계약‘이라고 불렀던 조건에 따라,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바르게 교정’할 때에야 헝가리인으로 인정받았다. 즉, 그들이 호칭, 충성도, 태도, 버릇, 말투, 혹은 복장에서 유대인이라는 표시를 드러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들은 통과해야만 했다. 이것은 기만적인 계약이었다. "다 - P166
른 어떤 중유럽 국가 중에서도, 헝가리에서처럼 동화된 공동체의 내면이 부조화하고, 유대인 동화의 이유가 그토록 거짓과 모수을 짊어지고 있는 곳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 P167
세기말의 유대인들이 ‘우리의 조국‘으로 스스로를 마자르인화했던 열정은 종종 비유대인 동포의 열정보다 더 강렬했다. 당시 헝가리인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어느 누구도 헝가리 유대인을 능가하거나 압도하거나 더 많이 마시거나 더 세레나데를잘 부를 수 없다!" 유대인 작가였던 팔 이그노투스는 그의 ‘모세‘ 형제들은 "마자르인들 그 자신보다 더 열렬하게 마자르인"인 것 같다고 썼다. - P170
내가 보기에 아버지가 되돌아온 헝가리는 황금기의 유대인-마자르 합작의 헝가리가 아니라, 그 다음에 바로 따라왔던 시대로부터 정체성을 이어받은 것 같았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헝가리 유대인들은 유럽에서 가장 잘 동화된 유대인에서 가장 매도당하는 자들로 전락했다. 그들은 새로운 세기에 가장 반유대적인 법률에 복속되어, 30년대 후반에는 재산과 직업과 자유를 빼앗겼고, 홀로코스트라는 가장 체계적인 몰살 캠페인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었다. "드디어, 오 유대인이여, 당신들의 날이 밝았다." 1868년 키스는 상찬했다. 그리고 75년이 흐른뒤 50만 명에 달하는 헝가리 유대인이, 윈스턴 처칠이 "인류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가장 끔찍한 범죄"라고 묘사했던 사건의 끝에 아우슈비츠로 보내졌다. - P173
내가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그녀는 그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속을 알 수 없는, 벽을 잔뜩 쌓고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한, 여자가 된 것은 뒤에 숨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거짓된 전선의 바리케이드를 추가한 것일 뿐이었다. 내부로 들어가는 모든 길은, ‘주방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안달 난 행복한가정주부, 포토샵으로 붙여 넣은 던들 스커트를 입고 춤추는 시골 소녀처럼 화려한 여성성이라는 비현실적인 차단기에 막혀 있었다. 아버지가 〈오즈의 마법사〉를 사랑한 것은 당연하다. 그녀는 바로 마법사였다. "커튼 뒤에 숨어 있는 남자에게는 관심을주지 말아라." - P187
"나는 중성인 것 같아요, 하지만 중성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그는 말을 이어갔다. 그의 시선이 고통스러워 보였다. "사람들은 구분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어요. 경계에 있는 사람들조차 구분이 필요하죠. 그래야 경계에 있을 수 있잖아요. 정체성이 있어야 해요."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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