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아빠가 됐다 - 가난의 경로를 탐색하는 청년 보호자 9년의 기록 이매진의 시선 6
조기현 지음 / 이매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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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해보려던 스무 살에 아버지가 쓰러졌다. 2011년 일이다. 그 뒤 1인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 P8

나 혼자만 유별난 상황인 듯해서 점점 이 세상의 분류법에 들어가지 않는 내 고통을 외면하려 했다. 사회 문제로 호명되는 ‘청년‘을 보면서 한동안 내가 ‘일반 청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청년은 학자금 대출로 힘들고,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버지의 부모처럼 살고 있어서 내게 청년이라는 말은 좀 어색했다.
그렇지만 나는 분명 청년이다. 어떤 직업적 성숙기에 들지도 않았고, 심지어 진로를 찾고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가늠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을 벌기에는 아버지가 큰 짐처럼 느껴졌다. 내게 ‘청년‘은 나를 설명하는 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과제였다. 가족 돌봄과 가장 구실까지 맞물려서 청년이라는 과제는 충돌하거나 가중됐다. 지난 9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간신히 샛길을 찾아 뭔가 해보려고 노력한 시간이었다. 9년의 기록을 써 내려갈수록 여전히 대답은 쉽지 않지만, 꼭 해야 하는 질문은 뚜렷해졌다. 아버지를 버리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아버지의 삶을 관리하는 수준에만 머물지 않으면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희생이나 배제 없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까? - P9

돌봄 문제를 ‘사회가 해결‘하려고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도입됐다. 그렇지만 이 제도는 50대 여성 요양보호사들의 나쁜 노동 여건과 낮은 임금에 기대어 유지되고 있다. 저임금 여성 노동자의 희생이 돌봄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큰 자원인 셈이다. "과거 가부장제가 공고하던 시절 노인에 대한 돌봄은 가족 간 권력 위계에서 가장 취약한 며느리의 몫이었다. 2019년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선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 P18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돌봄을 받지 못하고, 돌봄을 수행하는 사람은 자기 삶이 위태로워지고, 돌봄 관련 공적 제도는 50대 여성 노동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유지된다. 악순환이 반복된다. 돌봄은 누군가를 보호하며 관계 맺는 방식이라고 보기 어렵다. 돌봄과 ‘위기‘는 동의어다. 이런 악순환을 ‘돌봄 위기 사회‘로 부를 수 있다. 돌봄이 필요한 자와 돌봄을 수행하는 자, 돌봄 노동자가 모두 누군가의 공백을 누군가의 희생으로 메운다. - P19

더 나은 삶을 위해 삶을 재정의해야 한다. 장수, 건강, 웰빙 같은 말에 가려 잘 안 보이던 아픔, 질병, 돌봄, 죽음을 문제로 받아들이고 응시해야 한다. - P26

사연을 말해달라는 말을 들으니 긴급 복지 지원과 기초 생활 수급자 신청 앞에서 간절하던 마음이 사라져버렸다. 몇몇 서류로 증명되지 않는 사실을 사연으로ㅍ풀어내는 방식이 어쩌면 합리적인데도 내키지 않았다. 나를 사연이라는 온정적인 틀 안에 끼워 맞춰야 하기 때문이었다.
불쌍한 존재가 돼야 하고, 불쌍한데 착해야 하고, 그래서 지원이 더 의미 있어야 한다. 내 삶 전체를 가난으로 설명하고, 그 삶을 심사받아야 한다. 탁자에 앉아서 내 사연을 심사하는 사람은 나 같은 상황을 겪어봤을까. 차라리 서류 뒤에 숨어서 가난을 증명하는 - P41

쪽이 더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가난하기 때문에, 이런 절차들속에서 길을 헤매는 모욕은 마땅히 감수해야 했다. - P42

공장에서 일하는 내 모습, 병원에서 간병하는 내 모습, 선거 운동을 하는 내 모습이 대조됐다. 아무것도 뜻대로 하지 못하는 노예였다가,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는 보호자였다가,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내비치는 시민이 되기도 했다. 선거는 1.4퍼센트 득표로 끝났지만 좀더 해보고 싶은 의지를 얻었다. 공장 문을 나서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활동을 하고 싶다. 내가 부당하다고 느끼는 일들을 바꾸는 시민으로 살고 싶다. 대조되는 세 모습 사이에서 가장 되고싶은 내 모습은 시민이다. - P83

공장은 나를 짓밟지 못해 안달이었고, 병원은 나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공장과 병원 사이에서 동아줄처럼 진보 정당을 잡고 있었는데, 그런 상황이 나를 더 하찮게 만들었다. 아주 미세하게 느끼고 있던 권리 감각이 내게 먼지 한 톨만큼의 존엄도 없는지 확인해주는 일들 앞에서 더 처참하게 뭉개졌다.
자유니 권리니 정치니 사회니 복지니, 세상이 너무 쉽게 씹어 먹어버릴 소리에 나는 심장이 뛰었다. 현실로 오면 나는 시민보다는 노예였다. 보호자는 환자 대신 제때 돈을 내야 하는 채무자였고, 치료 도중에 발생하는 법적 문제를 떠맡는 책임자였다.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으면서 뭔가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사는 듯했다. - P85

두 번이나 살려냈는데도 말을 듣지 않는다는 괘씸함과 두 번이나 살려줬는데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안 한다는 서운함이 내 마음 - P90

에 가득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데 협력할 수 없었고, 나는 혼자 모든 일을 해내야 했다. 하루에 열댓 번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평생 돈을 벌어 병원비로 다 바쳐야 하는 걸까. 도저히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이미 두 번이나 거대한 폭탄을 얻어맞았다. 나도 할 만큼 했다. 앞으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아빠 개인의 책임이다. 아빠의 삶을 책임지지 않는 선택이 내 유일한 출구다.
꼬리 자르기 같았다. 내 경제 능력이나 조건으로 아빠까지 책임지는 일은 생존에 맞먹는 부담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께름칙했다. ‘정말 아빠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마음 한구석에 고여 있었다. 아빠를 타박하면서도 아빠를 이렇게 만든 사회적 조건을 무시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도 못 다닌 사람, 어느 자리에 있는 조금만 어려운 이야기가 나오면 기가 죽는 사람, 자기표현을 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 노동 현장에서 일을 빠르고 잘하는 게 유일한 인정이었던 사람, 그런데 이제 일을 못 하는 사람, 다시 말해 무엇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아빠였다. - P91

큰마음 먹고 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근로 능력 ‘있음‘이었다. 건강하다는 결과에 암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빠가 정말 회복이 돼서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품게 됐다. 증명되지 않는 ‘고통‘과 고통을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 사이를 오가며 진단명을 붙잡고 싸움을 벌였다. - P118

면회실 옆을 지나치는 사람들이 우리를 빤히 쳐다봤다. 저 눈빛에 익숙해져야 하는 곳이었다. 저 사람들은 수급자가 됐을까? 1촌 직계 가족 두 명이 동의했을까? 어떤 박탈감을 느꼈을까? 술 마신다고 이곳에 오지는 않았겠지? 술 마시고, 돈 없고, 가족 사이 신뢰도 없는 사람들이겠지? 가족에게 짐짝이 될 때 들어오는 곳이겠지? 그 가족들은 의사를 만나 4개월짜리 신비로운 완치 과정을 듣겠지?
여기는 짐짝들을 모아두고서 완치라는 헛된 희망을 품는 곳이라고 서슴없이 생각하려다가 포기했다. 비관하기보다는 한번 믿어 - P121

보는 편이 나았다.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사람들하고 어울리면서 좀더 잘살자는 의지를 품게 될 수도 있었다. 환자복을 입은 아빠가 면회실로 들어왔다. - P122

아빠가 아무 일이라도 하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면회 날만 되면 그 일하고 싶은 마음을 묻고 또 물었다. 작은 불씨가 꺼지지 않게 호호 불 듯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쉬지 않고 물었다. 6개월 뒤 - P127

폐쇄 병동을 나가면 바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
아빠의 마음속에서 일하겠다는 불씨가 꺼지지 않게 호호 불면서, 그 불을 쓸모 있게 쓸 곳을 찾으려했다. 6개월은 금방 갔다. 아무런 대안을 찾지 못했다. 아빠는 사람들하고 기분 좋게 인사를 나누면서 폐쇄 병동을 나섰다. - P128

기억이 뒤죽박죽되는 사이에도 내 말을 듣기 싫다는 아빠의 의지는 뚜렷했다. 그럴 때 나는 ‘나라‘ 탓을 했다. 나라가 요청해서 해야 한다고 하면 곧잘 따랐다. ‘나라에서 시켜서‘, ‘나라에서 감시해 - P129

서‘, ‘나라에서 안 된다고 해서‘처럼 나라를 빌미로 삼아 아빠에게 작은 책무를 부과했다. ‘나라‘와 아빠가 서로 의지하게 하고, 그런 관계를 핑계로 조금씩 좀더 나은 삶의 방향을 잡아가려 했다. - P130

기어코 문제를 다 맞히려는 아빠를 어떻게 해볼 수 없었다. 의지를 갖고 뭔가 해보려는 태도야말로 내가 바라던 회복된 아빠의 모습이었다. 타들어가는 아들 속도 모르고 문제를 다 맞히는 아빠가 밉고, 다 맞히려는 아빠가 안쓰럽고, 다 맞히는 아빠가 기특했다. 한 문제라도 더 맞히려는 의지가 치매 검사지 위에서 리허설을 했다면, 이제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시연될 수도 있을 듯했다. 그런 아빠에게 문제를 틀리라고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 영 내키지 않았다. 한번쯤은 아빠라는 약자가 아니라 의사라는 강자에게 먼저 말하자 싶었다. 초조하게 의사가 할 진단을 기다렸다.
"제 말 잘 들으세요. 아버지는 지금 거짓말하는 게 아니에요. 중간중간 기억이 편집돼서 없어졌다고 보면 돼요. 거짓말처럼 들리는 말은 앞에 있는 아들이랑 얘기해야 하니까 중간중간 없어진 부분을 생각나는 기억으로 채우는 겁니다. 소통하려고요. 지금 아버지는 치매 진단 받고 요양 등급 받기에는 너무 일러요. 다음번에 약 타러 올 때는 아버지 혼자 오게 하세요. 전화로 잘 가고 있는지 체크하시고요. 생활 속에서 기억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쓰면 좋습니다." - P133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발상이었다. 그동안 나를 괴롭힌 기짓말과 허상이 잘려 나간 기억과 기억 사이를 이으려는 노력이었다니. 아빠는 지금, 바로, 여기에 가장 충실하게 살아온 셈이었다. 현재에서 살아가는 나하고 소통하느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분주하게 넘나들고 있었다. 내가 현재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아빠하고 통할 수 있는 길이 열릴지도 몰랐다.
"아야, 구두 공장에 면접을 보러 갔는데, 밖에서는 손님들 발 사이즈 재고, 바로 뒤에서 구두를 만들어."
"그래요? 그럼 결과는 언제 연락 준대요? 일은 할 만할 거 같아요? 구두 만드는 일이 재미있으면 좋겠네."
"재미는 무슨. 다 돈 벌라고 하는 거지."
언제 겪은 기억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제 아빠의 말 속에 흐르는 아빠라는 의지를 나도 느끼게 됐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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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룸 - 영원한 이방인, 내 아버지의 닫힌 문 앞에서 Philos Feminism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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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그것이 그의 모습이었다. 불가해하면서 변덕스러운 존재. 블랙박스면서 기폭장치이며, 거리를 두면서도 영역을 침범하는. - P37

《모터 트렌드》가 《마리끌레르》를 만난 현장. 나는 이 차이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이걸 보려고 5600마일이나 날아 온 것인가? 우리가 27년 만에, 역사적인 글라스노스트 이후 위험하기 - P50

짝이 없는 재회를 했는데, 그녀는 마치 나파 자동차용품점과 윌리엄스소노마를 들렸다 온 사람처럼 굴었다. - P50

부다 지구의 언덕을 오르면서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의 유년 시절이 주조된 대장간이었던 도시에 와 있구나. 그의 성격이 주조된 그 모루에. 이제 이곳은 그 - P57

녀가 선보이는 ‘탕아의 귀환‘ 의 무대가 되었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선 거리감 덕분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평생 동안 맥락을 알 수 없는 남자를 만나 왔다. 이제 맥락을 알게 되었지만, 난감했다. 그 남자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 P58

"통제력이 핵심이란다." 그는 이렇게 말하길 좋아했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은 드러나지 않아야 해." 낮 시간을 보내는 수족관의 어둠 속에서, 손은 화학약품 통에 넣고 작업을 위한 붉은 안전광 하나를 켜 놓은 채, 그는 어둡게도 하고 밝게도 만들면서 사진을 조작했으며, 신체의 일부와 건물과 전체 풍광을 없애 버렸다. 그는 자신이 영화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던 그것을 사진술에서 성취했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 P68

그는 내 교육이나 직업적인 측면에 거의 개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차례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라 - P70

고 조언했다. 초등학교 신문반에 처음으로 합류한 날부터 결점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드러내는 일로 들떠 있었던 딸에게는 좀 이상한 조언이었다. 우리가 이야기 나누지 않았던 몇 년 동안, 그리고 우리가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한 그 몇 년 동안에는 더욱, 우리 관계의 핵심에 놓여 있었던 것은 삭제와 폭로, 에어브러시와 기자 수첩, 그리고 감추기의 달인과 그것을 드러내려는 수습기자 사이에서 격화된 싸움이었다. - P71

"나는 이제 공격적인 마초 맨을 가장하는 게 진절머리가 난다. 나의 내면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지." 아버지는 이메일에 이렇게 적었다. 거의 40년이나 흘렀고, 아홉 개의 표준 시간대를 지나왔지만, 내가 그녀의 새로운 인격에서 그 폭력적인 남자의 이미지를 지워 버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혼 판결이 아버지를 위험에 빠진‘ 피해자로 만들어 줬던 것처럼 간단하게, 새로운 인격이 그 폭력적인 자를 지워 버릴 수 있었다고 믿어야 했을까? 새로운 정체성이 이전의 정체성을 구원해 줄 뿐만 아니라 그 정체성을 삭제해 버릴 수도 있을까? - P91

하지만 ‘당신이 필연적으로 되어야 했던‘ 그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당신이 누구인가는 당신이 이뤄 낸 누구인가, 아니면 당신이 물려받은 것과, 그것의 유전적, 가족적, 종족적, 종교적, 문화적, 역사적 요인의 운명적인 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가? 즉, 정체성이란 당신이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당신이 피할 수 없는 무엇인가?

***
누군가 나에게 정체성을 밝히라고 한다면, 국적이나 직업과 같은 일반적인 것들과 함께 나는 여자이고 유대인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런 이름표 각각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그 바탕을 의심하게 된다. 나는 여성성에 따르는 전통적 통과의례 대부분을 용케 피하면서 살아온 여자다. 나는 아이가 없다. 나는 모성을 갈구해 본 적이 없다. 나의 ‘생체 시계‘ 때문에 불안해한 적도 없다. 나는 중년이 될 때까지 결혼하지 않았고, 함께한 지 20년이 넘은 남자 친구와의 결혼이란 시청에서 벌어진 충동적인 사건일 뿐이었다. 집안일과도 - P92

거리가 멀었다. 요리에 관심이 없고, 정원을 보살피지도 않으며, 바느질은 전혀 하지 않는다. 한동안 뜨개질을 하기는 했지만, 이건 사실 페미니스트 수공예 책인 『스티치 앤 비치 Stitch‘n Bitch』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유대 법률, 의식, 기도문 등에 무지한 유대인이다. 유월절에 키두시 초반 몇 구절을 입에 올릴 수는 있지만, 의미도 거의 모르는 채 하가다의 음성 표기를 슬쩍 훔쳐보면서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유대인 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 유대교 성인식을 치른 적도 없고, 우리 가족은 요크타운 하이츠에 있는 유일한 유대교회당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았는데, 사실 그곳도 어쨌거나 아주 느슨한 개혁파여서 차라리 유니테리언교라고하는 편이 나았다. 사실 나는 엄밀히 말해 유대인도 아니다. 어머니는 부계만 유대계였는데, 가장 자유주의적인 계파를 제외한 대개의 율법학자들에게 모계에 유대인의 피가 흐르지 않는 나는 비유대인으로 여겨질 터다. 이 정체성들에 대한 나의 충성이 의식과 의례에 결합되어 있지 않다면, 그 정체성의 기원은 무엇인가?
나는 반유대주의자들이 사는 마을에서 자란 유대인이다. 그 - P93

리고 60년대 초반 미국의 성차별주의적인 편견에 푹 빠져 있는 소녀 시대를 보낸 여자다. 내가 누구다라는 감각은, 내가 그 좌표를 파악할 수 있는 한, 반골 기질과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만약 그 정체성이 위협당한다면, 나는 그것을 주장했다. 나의 정체성’은 그것이 가장 위협당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더 활발해졌다. - P94

페미니즘이란, 계속되는 만트라에 따르면, ‘선택‘에 대한 것이다. 내가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선택했을까? 그것은 내가 물려받은 것, 내가 조절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의 역사로부터 이룩해낸 것이 아닌가? 아내와 아이들 위에 군림하는 남자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분노 때문에 나는 여성 평등을 위해 움직이는 운동가가 되었다. 페미니스트로서 나의 정체성은 아버지가 겪은 ‘정체성 위기‘의 잔해, 자신이 선택한 남성적인 페르소나를 주장하지 못했던 좌절에서 태어났다. 취미이자 피난처였던 페미니즘은 내가 선택한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내가 도망치지 못했던 것은 아버지였다.
***
1968년 에릭 에릭슨은 ‘정체성‘이란 말이 거울방의 거울처럼 "어디에나 존재하는 만큼이나 불가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체성 위기‘라는 말을 고안해 내기 바로 직전에) 이 말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이 주제에 대한 무거운 책 『정체성: 청년과 위기Identity: Youth and Crisis』의 첫 페이지에서 그는 정체성의 의미를 정의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말할 수 있는 최선은 정체성의 ‘감각‘이란 "활성화된 동일성과 연속성에 대한 주관적인 감각"처럼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사람이나 사물이 그 자체이고, 다른 어떤 것이 아님"이라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처럼 뒤이은 정의들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개인적 정체성의 흐리멍덩한 의미를 보면, 위기는 필수 불가결한 것처럼 보였다. 수년간 ‘정체성 이론‘을 내놓으려는 시도 - P99

들은 실패했다. 1967년에 사회학자 네이선 라이츠는 (UCLA 동료이자 성전환 치료의 선구자인 로버트 스톨러가 말했듯이) "정체성이란 용어는 막연함, 모호함, 비슷한 말의 반복, 임상 자료의 부족, 그리고 설명의 빈곤을 감추기 위한 화려한 의상만큼이나 쓸모가 없다"고 한탄했다.
대중화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체성을 규정하기」라는 1983년 논문에서 역사학자 필립 글리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체성이 점점 더 클리셰가 되어감에 따라, 그것의 의미는 점차 산만해지고, 따라서 갈수록 더 느슨하고 무책임하게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우울하게도 정체성에 대한 토론으로 통하는 많은 논쟁들이 거들먹거리는 지리멸렬한 논의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 모든 애매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에릭슨의 시대와 우리 시대를 정의하고 꿰뚫는다.
개념으로서 정체성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심리학 이론에 들어가지 못했다. 에릭슨이 그의 전문 영역의 선배들에게서 선행 언급을 찾으려고 했을 때, 그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1926년 빈의 브나이브리스협회에서 한 연설에서 단 한 번, 그용어를 언급한 적이 있음을 발견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가 자신을 유대인으로 만든 것이 무엇인지 묘사하고 있었다. "믿음도 민족적 자부심도 아니었습니다." 프로이트가 고백했다. "내면의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의식만큼이나, 더 강력할수록 더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수많은 모호한 감정적 힘들"이 그를 유대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유대인이라고 느꼈을 뿐 왜인지 말할 수 없었다.
초기에, 에릭슨은 개인의 정체성을 당신이 획득하고 당신 혼자 스스로 전시하는 어떤 것으로 정의하려고 하지 말라고 충 - P100

고했다. 그는 "교체할 수 있는 단순한 ‘역할들‘, 혹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단순한 ‘외양‘, 혹은 단순히 강고한 ‘태도들‘은 비록 그것들이 ‘자아 탐구‘의 중요한 요소라고 하더라도 진짜는 아니"라고 썼다. 그리고 견고한 자아는 자기 계발과 집단적 유산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개인적인 성장과 상호적인 변화를 분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 경험하는 정체성의 위기와 역사적 발전에서 일어나는 당대의 위기를 구분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각각이 서로를 정의하고 진정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정체성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에릭슨은 당신의 과거를 당신의 현재와 통합하고, 심지어 (또는 특히) 당신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당신의 경험의 모든 부분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누군가 원치 않는 역사인 "삶의 다양하고 모순되는 단계와 양상"을 부정하려고 할 때, 그리고 대신 "완벽해야만-하는-범주"를 고집할 때, "그는 우리가 전체주의라고 부르는 의지를 취함으로써 그 자신과 세계를 개혁하려고" 하며, 그것은 새로운 정체성이 유기적인지 혹은 그 요소들이 일관적인지와 상관없이 그것을 고집하면서 폭군이 "완벽한 경계"를 순찰하는 내면의 독재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에릭슨 본인은 그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에릭슨의 학부 제자였던 철학자 마셜 버먼은 "에릭 에릭슨, 자기 자신을 발명한 남자"라는 1975년 글에서 스승이 쓴 자서전적인 글에 충격적일 정도로 중요한 사실이 누락되어있음을 발견했다. 에릭슨이 자신의 과거를 세탁해 버린 것이다. - P101

나는 유대인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모호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단호하게 스스로를 유대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인생의 모든 순간에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상기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체성이 다른 어딘가에 놓여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었던 셈이다. - P104

이 이미지 상영회에서 ‘비포‘와 ‘애프터’라는 주제는 반복되었다. 아버지는 수술 전과 수술 후 자아 사이에 두꺼운 선을 그리려는 듯했다. 마치 지금 성취한 기품 있는 노부인의 훌륭함과 이전의 성적 매력이 있는 젊은 여자의 모습들 사이에 선을 긋고, 그들을 더 이상 원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야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 같았다. - P112

현대 트랜스젠더리즘의 지배적인 입장은 성별 정체성과 섹슈얼리티는 혼동되어서는 안 되는 별개의 영역이라고 설명한다. "트랜스젠더는 성적 지향이나 섹스, 혹은 생식기와는 무관하다." 온라인의 정보 사이트들은 전형적으로 설명한다. "트랜스젠더는 오직 성별 정체성과 관계된 것이다." 하지만, 내 아버지의 서류철 안에는 분명하게 성적인 단어로 표현된 그녀의 젠더 단위 생식을 향한 움직임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픽션마니아와 시시 스테이션과 방대한 ‘강요된 여성화물‘에서 나타나는 트랜스젠더 정체성에서 여성이 된다는 것은 완전한 성애화를 의미했다. 여기서 여성성은 신체 결박과 모욕, 오르가즘과 관계된 것이었고, 하나의 젠더에서 다른 젠더로의 변신은 모든 단계에서 에로틱하게 묘사되었다. 그렇다면 이 두 부분은 어떻게 분리할 수 있는가? - P116

"과거에 살아 봤자 좋을 거 하나 없다." 아버지가 말했다.
"헌 친구는 치우고, 새 친구를 사귀라고 하지 않디."
"사는 게 그렇지가 않잖아요." 나는 말했다. 어쨌든 나는 여기에 일종의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해서 왔다. 그러니까, 그녀 말이다. 만약에 그녀가 해묵은 완고함을 철회하고 친구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기만 한다면. 하지만 우리의 상호작용은 고집스레 한 방향이었다. 상호 교환 대신, 온갖 고상한 체하는 패션과 하드디스크 판타지로의 강요된 여행만 있었다. 도대체 그녀는 언제가 되어야,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하는 이 딸을 안으로 받아들일까? - P118

그렇게도 숨어 있는 사람이 어떻게 지퍼를 여는 데 그리 열의가 넘칠까? 만약, 정말로, 그것이 그녀가 원하는 것이었다면 말이다. 이 모든 노출과 공개는 말 그대로 표피적으로 보였다.
이후로 며칠 동안 아버지는 옷장의 드레스와 서랍장의 란제리, 화장대의 화장품, 약 상자 속 에스트로겐 패치와 질 확장기, 그리고 ‘경이의 방‘에 들어 있는 온갖 진기한 물건들에 대한 덧없는 여행을 계속했다. 나는 그녀가 폭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진정한 비밀로부터 나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려고 하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나를 봐라, 하지만 나를 보지 말아라. 사진작가의 딸로서 나는 알고 있었다. 암실에 빛을 비추는 것이 증거를 드러내 줄지 그것을 망칠지는 타이밍에 달려 있음을. 아버지와 나는 시간, 그러니까 과거와 현재를 두고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스테피의 새로운 진열장에 있는 장식품들을 보고 감탄해 주기를 바랐다. 나는 잠긴 방에 숨겨진 것에 대해 알고 싶었다. 지하에 잠겨 있는 금고 속 내용물을. - P120

헝가리 방문을 준비하면서 어쩔 수 없는 인텔리인 나는 제2차 세계대전 말에 출간된 이슈트반 비보의 ‘헝가리다움‘에 대한 가차 없는 탐구가 담긴 에세이를 읽었다. 이 정치과학자는 자기 나라의 정체성을 포템킨, 즉 ‘희망사항’과 ‘허례허식‘에 불과한 것들로 만들어진 ‘자기기만’ 사회라고 보았다. "오늘날의 헝 - P130

가리인들은 유럽에서 가장 정의 내리기 힘든 집단 중 하나다"라고 비보는 쓰고 있다. 그리고 헝가리다움이란 ‘거대한 환영‘이라고 말이다. 이제 와서 비보를 떠올려 보니, 오후에 둘러본 전시가 환각을 일으킬 것만 같았다. 우리가 본 모든 것이 이상하고도 치명적이도록 사탕 과자 같았고, 이 나라의 얼굴은 하나의 환상에서 다른 환상으로 이어 붙여져 있었다. (...)
이 벽들에 걸려 있는 환영에 대해 생각했다. 발소리가 울리는 갤러리를 걸어 나가면서, 물방울무늬 옷을 입은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문득 내 머리를 스친 것은, 마치 이야기책 속의 세계로 나를 이끄는 팅커벨처럼, 가장 어두운 과거를 숨긴 잔뜩 꾸며진 역사로 나를 안내하는 테마파크 코스튬을 입은 여행 가이드의 이미지였다. 그곳에선 장소도 사람도 그들의 실제 모습이 아니었다. - P131

역사학자 야코브 카츠는 "그들의 조국 발전에 대한 기여는 다른 어떤 유럽 유대인 공동체보다 컸다"고 썼다. 그들은 누구보다 유대인들이 헝가리인이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발명했다. 그와 함께 ‘조국‘을 발명했는데, 그곳에서 그들의 날이 밝아 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새벽은 아즈텍의 일출처럼 희생과 절단을 요구했다. 황금기의 역사학자들이 ‘동화의 사회적 계약‘이라고 불렀던 조건에 따라,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바르게 교정’할 때에야 헝가리인으로 인정받았다. 즉, 그들이 호칭, 충성도, 태도, 버릇, 말투, 혹은 복장에서 유대인이라는 표시를 드러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들은 통과해야만 했다. 이것은 기만적인 계약이었다. "다 - P166

른 어떤 중유럽 국가 중에서도, 헝가리에서처럼 동화된 공동체의 내면이 부조화하고, 유대인 동화의 이유가 그토록 거짓과 모수을 짊어지고 있는 곳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 P167

세기말의 유대인들이 ‘우리의 조국‘으로 스스로를 마자르인화했던 열정은 종종 비유대인 동포의 열정보다 더 강렬했다. 당시 헝가리인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어느 누구도 헝가리 유대인을 능가하거나 압도하거나 더 많이 마시거나 더 세레나데를잘 부를 수 없다!" 유대인 작가였던 팔 이그노투스는 그의 ‘모세‘ 형제들은 "마자르인들 그 자신보다 더 열렬하게 마자르인"인 것 같다고 썼다. - P170

내가 보기에 아버지가 되돌아온 헝가리는 황금기의 유대인-마자르 합작의 헝가리가 아니라, 그 다음에 바로 따라왔던 시대로부터 정체성을 이어받은 것 같았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헝가리 유대인들은 유럽에서 가장 잘 동화된 유대인에서 가장 매도당하는 자들로 전락했다. 그들은 새로운 세기에 가장 반유대적인 법률에 복속되어, 30년대 후반에는 재산과 직업과 자유를 빼앗겼고, 홀로코스트라는 가장 체계적인 몰살 캠페인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었다. "드디어, 오 유대인이여, 당신들의 날이 밝았다." 1868년 키스는 상찬했다. 그리고 75년이 흐른뒤 50만 명에 달하는 헝가리 유대인이, 윈스턴 처칠이 "인류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가장 끔찍한 범죄"라고 묘사했던 사건의 끝에 아우슈비츠로 보내졌다. - P173

내가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그녀는 그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속을 알 수 없는, 벽을 잔뜩 쌓고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한, 여자가 된 것은 뒤에 숨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거짓된 전선의 바리케이드를 추가한 것일 뿐이었다. 내부로 들어가는 모든 길은, ‘주방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안달 난 행복한가정주부, 포토샵으로 붙여 넣은 던들 스커트를 입고 춤추는 시골 소녀처럼 화려한 여성성이라는 비현실적인 차단기에 막혀 있었다. 아버지가 〈오즈의 마법사〉를 사랑한 것은 당연하다. 그녀는 바로 마법사였다. "커튼 뒤에 숨어 있는 남자에게는 관심을주지 말아라." - P187

"나는 중성인 것 같아요, 하지만 중성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그는 말을 이어갔다. 그의 시선이 고통스러워 보였다. "사람들은 구분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어요. 경계에 있는 사람들조차 구분이 필요하죠. 그래야 경계에 있을 수 있잖아요. 정체성이 있어야 해요."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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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일기 - 삶의 끝에 선 엄마를 기록하다
최현숙 지음 / 후마니타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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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삶 -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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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좋아하는 강이였지만 막상 눈 위에서 강이는 우 - P11

뚝 서 있기만 했다. 목줄을 끌어당겨도 꿈쩍하지 않았다. 내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바들바들 떨면서 눈이 제 얼굴에 떨어지는 걸 골똘히 보고만 있었다. 강이는 눈을 이상해했다. 무서워했고,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좋아했다.
언젠가 강이에게 스노볼을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강이가 발로 건드릴 때마다 반짝이는 눈이 쏟아질 거였다. 더 먼 언젠가에는 강이와 함께 사계절 내내 눈이 쌓여 있는 나라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서운 것에 익숙해지면 무서움은 사라질 줄 알았다. 익숙해질수록 더 진저리쳐지는 무서움도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 P12

나도 집을 좋아했다. 우리집 강이가 자기 집을 좋아해 개집 안에 장난감 인형들을 모아놓듯이 나도 그랬다. 우리집 강이가 밖으로 나가고 싶어 창문에 코를 대고 있듯이 나도 밖으로 나가고 싶을 뿐이었다. 왜 집을 나갔느냐는 질문을 사람들에게 받을 때마다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아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그러면 집이 싫으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그렇다고도 그렇지 않다고도 대답할 수 없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밥이 먹고 싶어질 때가 있는 것처럼, 멀리 나가다보면 원하지 않던 곳에 다다르더라도 더 멀리 나아가야만 하는, 그런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먼 곳에서 더 먼 곳으로 갈수록,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 더 비참한 느낌이라는 걸, 따뜻한 이불이 포근하고 좋아서 무서워지는 순간이 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 P14

"집에 가만히 있으면 나무처럼 쑥쑥 자라나." - P14

길에서 아람은 내게 말해주었다.
"뭐가?"
"상처가."
아람은 집이 싫어서, 나는 밖이 좋아서 우리는 함께 집을 나갔다. 집에서 받은 상처를 길에 조금씩 버리듯 아람은 매일매일 자신의 상처를 내게 말해주었다. 하지만 아람은 집보다도 길에서 더 큰 상처를 받았다. 집에서 받은 상처 따위는 어린아이의 것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집에서 받는 상처를 시시하게 여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집이 아니라 길을 선택한 걸 다행으로 여겼다. 집도 시시하게 여길 수 있었다. - P15

꺼진 텔레비전 앞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있었다. 나의 미래처럼 캄캄했다. 나는 미래를 예측해본 적이 없었다. 미래를 다짐해볼 때는 많았다. 언젠가 먼 곳까지 가볼 것이다. 먼 곳에서 더 먼 곳을 향해 가며 살 것이다. 이불 속에서 얌전하게 죽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종류의 다짐이었다. 다짐으로 점철된 미래를 펼쳐놓았다. 미래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예언이 내게는 다짐뿐이었다. - P21

달라지는 상황 앞에서도 예측이 정확한 사람은 대단한 사람처럼 보였다. 얼마나 많은 냄비를 써봐야 어느 냄비를 쓰든 라면 물을 정확히 맞출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이 문제를 풀어봐야 어떤 선생이든 무슨 문제를 낼지 알아맞힐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이 꽃을 키워봐야. 얼마나 많이 꽃을 죽여봐야. 다짐을 더 자주 다지는 것밖에는 내가 나의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다짐에 골몰했다. - P22

소영은 가끔씩만 옷을 벗었다. 옷을 벗지 않는 날에는 입을 굳게 다문 채 나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 P77

"왜 그래?"
소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소영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보았다. 소영은 내 손을 낚아챘다. 손톱을 내 손등에 꽂았다. 그리고 잔뜩 힘을 주었다. 나는 소영의 손에 힘이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슬그머니 손을 뺐다.
소영은 몇 시간씩 벽을 쳐다보았다. 하악거리는 고양이처럼 굴었다.
‘고양이가 사나워지는 건, 화가 났을 때가 아니야. 겁을 먹었을 때야.‘
나도 소영 때문에 겁을 먹고 있었다. 소영에겐 학교와 집과 멀어지고 있다는 두려움이, 나에겐 소영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두려움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소영은 날카로워져갔고 나는 소영에게 최대한 무심한 척했다. - P78

"아람이하고 소영이하고 싸우면 누구를 선택할 거야?"
나는 대답을 회피했다.
"엄마가 좋아, 노는 게 좋아?"
엄마가 던지는 질문에 대답을 해본 적이 없었다. 선택을 요구하는 질문은 대부분 유치했고, 지혜로운 대답은 대부분 비겁했다. 아이들은 아람의 편에 서겠다고 했다. 소영을 따돌리고 싶다기보다는 아람을 보호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아이들은 곧잘 뭉쳤다. 어떤 정의를 위해서라면 어떤 불의도 - P87

불사했다.
"아람이는 언제나 우리 편이잖아."
아람은 좋다는 말을 쏟아내왔다. 아이들이 유행처럼 한 아이를 싫어하고 따돌릴 때에도 아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난 걔 좋은데."
소영은 달랐다. 결정을 내리면 결정을 내린 대로 분명히 행동했다.
"내가 안 보기로 한 애랑 노는 건, 나도 안 보겠단 뜻인 거지."
친구와 사이가 나빠질 때마다 소영은 이 말을 강조했다.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소영을 선택해왔다. 각자 소영을 선택했다기보다는, 다수의 아이가 소영을 선택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에 다수가 되는 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학교에서 소영을 모르는 아이는 없었다. 소영은 예뻤고, 키도 컸고, 성적도 최상위권이었다. 선생들은 우리라는 덩어리를 싫어했지만, 그중 몇몇 선생은 소영이라는 개인을 아꼈다. 몇몇 친구는 소영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했고, 몇몇 친구는 소영을 무서워했다. 어쨌거나 모두 소영의 편이 되어 소영과 함께 몰려다녔다. 소영은 꼭 필요한 아이였다. 싸움이 났을 때 미지근하게 끝내는 법이 없었다. 아이들과의 싸움은 물론이고 어른들이나 선생과의 문제에도, 소영이 개입하면 최선의 결과를 낳았다. 주먹질은 정당방위가 되었고 이 주일의 징계는 일주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최선의 결과만을 원하는 아이는 우리 중 소영뿐이었다. 우리는 다만 최악의 결과가 두려울 뿐이었다. - P88

싸움을 좋아하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싸울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을 뿐이었다. 소영도 마찬가지였다. 자기 보호는 치열한 공격이 될 때가 많았다. 치열한 보호가 비열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 P92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나는 마음속 방 한 칸을 들여다.
보았다. 스노볼이 있는 집에서 팔베개를 하고 있는 소영, 경찰에게 당당하게 다가가는 소영, 손톱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소영, 안갯속을 성큼성큼 걸어가는 소영, 빨간 캐리어를 끌고 유유히 전쟁터를 빠져나가는 소영, 내가 상상해낼 수 있는 온갖 소영이 그 방안에 있었다. 그 방을 나는 ‘소영‘이라 불렀다. 소영의 모든 모습을 그 방에 들여놓을 생각은 없었다. 그 방에 들어올 수 있는 소영은 진짜 소영이 아니라 내 상상에 걸맞은 소영이어야 했다. 우리집 초인종이나 누르고 있는, 한껏 휘어져 있는 소영 따위는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병신.‘
소영은 ‘소영의 방‘에 들어올 자격이 없는 아이가 됐다. 계단을내려가던 소영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소영의 비굴함과 보잘것없음을 떠올리며 비웃는 일은 그리 즐겁지 않았으나 나의 비겁함을 직시할 때보다는 훨씬 편했다. - P96

"좋니."
밥을 입안에 넣으며 아빠가 물었다. 아빠는 더이상 무서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나의 눈을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나의 어깨 정도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아빠는 피곤해 보였다. 사 년 전만 해도 철심처럼 뻣뻣했던 머리카락이 숱도 없이 가늘어진 채 힘없이 이마 위에 늘어져 있었다. 나는 애써 대답하기 위해 고개를 끄덕이지도 가로젓지도 않았다. 식탁에는 여전히 불고기가 올라와 있었지만, 엄마도 아빠도 내 밥그릇에 불고기를 올려놓지는 않았다. 그게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아빠는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묵묵히 밥을 먹었다. - P156

엄마는 두 사람으로 지냈다. 낮에는 예전처럼 상냥했고, 뉴스를 보며 혀를 찼고, 조곤조곤 기도를 했다. 밤에는 불 꺼진 거실에 앉아 이상한 목소리로 이상한 소리를 냈다. 밤의 목소리는 엄마의 목소리라기보다는 내 목소리처럼 느껴졌다. 나를 대신해서 밤 - P160

마다 엄마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소영에게 침을 뱉을 때 입안에서 느껴졌던 피맛과 소영의 몸을 핥을 때 입안에서 느껴졌던 짠맛이 동시에 내 입안에서 서걱거렸다. 소파에 누워 벽을 타고 기어가는 불개미들을 하릴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에도, 아무 말 없이 빨래를 개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에도, 자꾸 어디선가 엄마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눈을 뜬 채로 꾸는 이 악몽을 나는 ‘센서등‘이라고 이름 붙였다. 센서등은 제멋대로 켜졌다.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어떤 것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보고 있을수록 어떤 장면은 더 자세해졌고, 어떤 장면은 물감이 번지듯 뭉개져버렸다. 소영 앞에 무릎을 꿇는 내 모습이 센서등의 불빛 아래서 가장 선명했다. 소영의 얼굴에 점점이 맺혀 있던 핏방울들은 가장 아름다웠다. 소영과 싸웠던 날에 들려왔던 명령의 목소리는 가장 웅장했다. 야릇한 증오가 담겨 있던 소영의 입술은 나를 가장 무력하게 했다. 낮잠 속에 묻어나온 성욕처럼 나를 옭아맸다.

우리집은 네 마리의 짐승이 각각 다른 광경에게 말을 걸며 사는 공간이었다. 강이는 아무도 없는 베란다 창문에 대고 귀를 쫑긋거렸고, 나는 방에서 옷장 깊숙이 넣어둔 식칼을 꺼내 보았고, 엄마는 거실에서 무릎 위에 천수경을 펼치고 있었고, 아빠는 안방에서 코를 골며 잠을 잤다. 우리는 각자의 어항에서 홀로 싸움을 했다. 소영의 목소리가 떠오를 때쯤에 나는 손가락을 팬티 속에 집어넣었다. 엄마의 중얼거림이 빨라지고 격해져서, 발음이 - P161

더욱 뭉개질 즈음에는 흥분 상태가 되었다. 아이들의 시선 속에서 주먹질을 해댔던 나의 모습을 떠올리다가, 숲속에서 발가벗겨졌던 나의 몸을 떠올릴 즈음이면 오르가슴이 찾아왔다. 식칼이 나의 살을 뚫고 튀어나온 가시처럼 느껴질 때, 나는 소영을 향해 달려들 것이다. 나를 찌르는 심정으로 소영을 찌를 것이다. 소영의 옷이 피로 물든다. 소영은 쉽게 쓰러진다. 나는 멈추지 않는다. 소영의 이목구비는 모두 빨간 구멍이 된다. 내 운동화에 붉은 물이 든다.
‘읍내동 사는 주제에.‘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빨갛게 펼쳐지던 강이의 지느러미처럼 몸이 두 배는 부풀어올랐다. 나는 지느러미로 방안을 가득 채웠다. 방안을 떠다니다 잠이 들었다. - P162

나는 최선을 다했다. 소영도 그랬다. 아람도 그랬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떠나거나 버려지거나 망가뜨리거나 망가지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이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나는 이제 읍내동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읍내동을 벗어나고 싶었던 나의 소원도 이상한 방식으로 도래해 있었다. 언제 그칠지는 알 수 없지만, 쉽게 녹아 사라지진 않을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상하고, 무섭고,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좋은, 함박눈이었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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