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말할 것 같으면 기혼 여성 같은 기혼 여성이 될까 봐 늘 무서움에 떨었던 사람이다. 맨날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나. 기혼 남성들이 모여서 결혼 생활의 부자유에 대해 토로하는 모습이. "우리 마누라는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 "요새는 집에서 여자가 왕이지." 그들이 야유하는 이 ‘아내‘라는 존재를 한국 사람들은 익히 안다. 지겹고 억척스럽고 통제하고 간섭하고 지루하고 진부한 그 존재. 남자의 자유를 앗아가는 괴물. 나는 그런 존재가 될까 봐 늘 조심하면서 살았다. - P11
‘나 못생겼나?‘ 사실 이건 그다지 타격 없는 질문이다. 외모를 의식하지 않고 산 지 꽤 되어서인지. 그것보다 더 두려운 질문은, ‘나 사람 숨 막히게 하나? 우리 엄마처럼?‘ 이혼 서류를 접수한 다음 준호는 같은 말을 계속했다. 정말 나뿐이라고. 자기 마음속엔 나뿐이었으며, 수민에겐 그저 인간적 연민과 안쓰러움만 들었다고. 관계를 잘 마무리 지어서 나에게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고. 그는 또 말했다. 내 앞에서는 항상 자격지심을 느꼈다고. 자기가 볼 때 나라는 사람은 항상 바르고 강하고 당당해서 자신이 초라했다고. 그런데 수민에게는 의지할 사람이 필요해 보였다고. 이런 얘길 들으면 당장은 화가 나다가도 희미하게 불안한 예감이 든다. 앞으로 언젠가 나는 분명히 이 말에 휘둘리겠지. ‘바르다‘라는 말은 옳고 그름이 지나치게 확실하며 그 기준을 남에게 강요했다는 뜻이 아닌지. ‘강하다‘라는 말은 인간미가 없었다는 의미는 아닌지. 차갑고 냉정했단 의미는 아닌지. ‘당당하다‘라는 말 - P17
은 오만하다는 뜻의 다른 표현이 아닌지. 나,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이었나. - P18
여기서 나는 어떤 인물인가? 나는 나라는 사람을 가장 모르겠다. 구속하는 아내가 될까 봐 겁먹다가 기만당한 아내. 다른 아내들처럼 남편한테 집착하지 않는다고 자만했던 아내. 이혼한 사람들 앞에서 그들은 실패자이고 나는 행운의 별의 수호를 받는 사람이라고, 삶의 어떤 시점에서는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던 여자. 페미니즘에 눈뜬 이후 한국 사회에서 남자를 사랑하기 너무나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준호라는 한 인간과는 다른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던 여자. 비혼 비출산을 외치는 목소리에 공감하고, 기혼 여성은 가부장제 부역자라는 소리에 위축이 되면서도, 아무리 내가 지지하는 이데올로기라도 내 삶을 검열하도록 놔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여자. ‘저렇게 드세게 할 말 다 하면서 살더니 남편이 바람피울 줄 알았다? ‘아직도 남자에게 희망을 품는 사람이 있다면 저 - P34
사람을 보고 깨달아라‘ 두 가지의 이야기 다 그 사례가 되고 싶지 않았던 여자. 내 삶을 파편적으로 해석하지 말라고, 나라는 사람의 삶은 어떤 주장의 사례도 아니라고 지금도 소리치고 싶은 여자. 이 생각 뒤에 밀려오는 초라한 기분을 감당하는 여자. ‘상간녀‘를 욕하고 남편을 감싸는 그 숱한 아내들을 비웃으면서 나는 그렇게 안 산다고 우월감을 느꼈던 여자. 배우자의 외도를 덮고 산다면 남들도 나를 그렇게 보겠지, 겁내는 여자. 이 여자가 나인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실감 나지 않는 상태로 평생을 살다 가는 건가 싶다. - P35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았는가? 그들은 결코 대화가 부족하지 않은 커플이었다. 두 사람은 주말에 함께 있을 때면 온종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당신 너무 귀여워. 당신 너무 근사해. 그들은 오늘의 뉴스와 페미니즘 이슈와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두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때로는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 민정은 그 시기를 돌아보면서 대화란 얼마나 무익한 것인가 생각한다. 우리의 말은 시공간을 채우기 위한 소음이었을 뿐이야. 무심히 틀어놓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소리와 비슷하지. 그렇게 생각하면 울컥하는 감정이 - P37
올라왔다. 말을 통해 나의 생각과 마음을 전하는 것이 가능한가? 소통과 교감이 이뤄지는 것이 가능한가? 웅웅거리는 에어컨 실외기 옆에서 멍게를 우물거리는 그는 이에 대한 믿음을 상당 부분 상실한 상태였다. - P38
"너와 나의 이야기 중에 무엇이 오래 살아남는지 두고 봐" 그렇지만 이것이 지금 민정이 글을 쓰는 가장 솔직한 이유였다. 세상에 보탬이 되고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깨달음을 전해주려고 글을 쓴다면 근사했겠지만, 항상 민정을 노트북 앞에 앉히는 힘은 자 - P41
신의 분노였다. 복수심이 아니라면 무엇이 나를 개성있는 존재로 만들겠는가? 얻어맞았을 때 다시 후려치고 싶은 이 욕망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글을 쓰겠는가? 민정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면서 휴지로 눈가를 꼭꼭 훔쳤다. - P42
우리는 서로에게 단 하나뿐인 배우자였지만, 한편으로는 결혼이라는 공연에서 남편과 아내라는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인지 몰랐다. 준호가 준호가 아닐수록, 내가 내가 아닐수록이 역할극은 더욱 원만하게 굴러갔으리라. - P58
분노할 때는 많았는데. 사회적 현상이나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못 견디게 화가 날 때는 많았는데. 그런 감정은 대부분 글이 되어서 세상으로 나갔다. 그러나 슬픔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구나. 그가 생각하기로 슬픔은 누군가와 공유하기에는 너무나 개인적인 감정이었다. 그 - P71
•뿐만 아니라 이 슬픔의 전후 과정을 분석해서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자신과 타인에게 설명해도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았다. 분노와 언어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짝이었다면, 슬픔 앞에서는 자꾸 말이 흩어지고 사라졌다. 말의 속도가 시간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 P72
그는 내 말을 듣고 또 울었다. 이 모든 슬픔과 갈등을 일시에 해소하고 싶다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은 유혹이 불쑥 찾아왔다. 내가 ‘용서할게‘라고 말하면 그가 얼마나 감동할까. 얼마나 행복해할까. 잘못하고 반성하고 용서하고, 다시 함께 삶을 만들어 가는 서사를 따라갈 수 있다면 얼마나 편안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 - P93
서 한편으로는 그와의 삶이 나에게 주는 가치란 익숙함뿐이라는 것도 의식한다. 그저 빨랫감 같을 뿐이잖아. 네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은, 빨고 말리고 다시 빨아야 하는 옷가지 같을 뿐이잖아. 아무것도 새로울 것이 없는, 오래전부터 세상이 만들어 놓은 이야기잖아. 다시 그를 파트너로 받아들이며 사는 삶을 상상해본다. 나는 너를 용서하려고 노력하면서 내가 나인 것을 후회하고 자책하겠지. 온갖 심리학 서적, 명상 서적, 종교 서적을 찾아보면서 너는 결코 해줄 수 없고 해주지도 않을 위로의 말을 구하겠지. 먼 훗날 갑자기 폭발해서 눈물을 흘리며 소리치는 나를 보면서 너는 말하겠지. "아직도 그 얘기야? 그만 좀 해." - P94
나는 나쁜 아내였을까? 내가 집안일을 적게 해서, 편해지는 쪽을 택해서 대가를 치르게 된 걸까? 집안일도 섹스도 하지 않는 아내는 배신당하기 마련일까? 그러나 어디까지가 동거인이자 배우자의 의무이고, 어디까지가 아내에 대한 착취인지 그 선을 구분하기가 쉽지 - P121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의 관계에서 그 선을 고민하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사실이 괴로웠다. 아내이자 며느리 역할을 거부하면서 배우자로서의 사랑을 요구해서는 안 되는 건가? 페미니스트라고 하면서 사랑하는 남자에게 아기처럼 귀여움 받기를 원해서는 안 되는 건가? 이런 욕망은 내가 지향하는 삶과 배치되는 건가? 나는 온갖 고민에 휩싸여 있었던 반면 그는 나에게 해주는 모든 일에 자부심을 느꼈다. 목마를 때 물을 가져다 주는 것,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 발을 주물러 주는 것, 한마디로 둘의 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헌신적인남편이라는 것. - P122
그가 나와 함께 여성단체 시위에 참석하면 기자들이 멘트를 따려 하고, 페미니즘 강연을 들으면 강연자가 ‘청일점‘인 그에게 한마디를 청했다. 남자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다니! 아내와 함께 페미니즘 공부를 하다니! 나와 함께 있는 그에게는 애정을 담뿍 담은 눈길이 쏟아졌다. 무엇을 해도 기준에 맞지 않는 나와 사정이 달랐다. 내가 남편보다 집안일을 많이 한다고 ‘세상에 둘도없는 아내‘라고 칭송 들을 일은 없을 것이다. 페미니즘에 관심도 가지면서 남편에게 물도 떠다주고 발도 주물러줬다면 자기모순에 질식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다. 그는 보편적/가부장적 남편의 역할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세상에 둘도 없는 남편‘으로 칭찬받았고, 그 역할에 충실하면 이해받았다. 아내인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내다운 아내가 되든, 아내답지 못한 아내가 되든 자신을 혐오하지 않기 어려웠다. 부당해. 불공평해. 화가 나. 이런 생각이 들 때면 한편으로는 사회적인 분노를 준호라는 개인에게 모조리 투사하는 걸까 봐 또다시 죄책감이 뒤따랐다. 내가 줄 위에서 균형을 잡느라 비틀거리며 발을 뗄 때 그는 무엇을 했던가? - P123
무엇보다 기혼에게 쏟아지는 ‘조용히 하라‘는 메시지에 숨이 막혔다. "기혼이 가만히 있으면 누가 뭐라 하냐? 자기도 페미라고 바락바락 우기니까 문제지." "자꾸 기혼이 스피커로 나서니 문제다. 기혼한테서 마이크를 빼앗아라." - P151
"또 기혼 플로우냐? 기혼들은 눈치껏 좀 닥쳐라. 너네만 입 닫으면 된다" 너만 조용히 하면 돼. 너만 가만히 있으면 돼. 나는 이런 말을 평생 들으며 살아왔다.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어린 시절부터, 시가 사람들과 호칭 문제로 갈등을 겪었던 결혼 이후까지. 너만 조용히 하면 모두가 평화롭다는 메시지는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녔다. 그런 말을 접할 때마다 천천히 익사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어떤 상황을 두고 아무리 ‘싫다, 불편하다, 불쾌하다, 부당하다‘라고 말해도 이것은 물속에서ㅠ외치는 소리일 뿐, 물 밖에 있는 이들에게는 결코 도달할 리 없다는 자포자기. 그 무력감이 계속해서 삶을 지배해 왔기에, 내가 여성단체에 가입해서 회원들을 만났을 때 수줍게 고백했던 말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저한테도 입이 생긴 것 같아요." - P152
이렇게 간신히 찾은 입을 다시 또 다물라고? - P153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자신의 시선이었다. 나는 ‘기혼 여성‘이라는 집단에 속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붙은 ‘기혼‘이라는 이름표가 싫었다. 사회에서 기혼 여성 페미니스트는 4B로 정체화한 페미니스트보다 온건한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급진적인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4B운동으로 가부장제에 맞선다면, 기혼 페미니스트에겐 남편을 변화시키고 아이를 교육해서 성평등한 가정을 만드는 역할이 있다고, 그 두 가지 변화가 함께 가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기혼 페미니스트 당사자들도 이야기했다. 나는 배우자와 옥신각신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가정이라는 작은 집단의 변화를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말들이 답답했다. 페미니즘을 알게 된 이상 내 삶에서 가부장제 - P156
와의 연관 고리를 하나라도 더 끊어버리고 싶었다. 남자의 욕망, 남자가 여자에게 요구하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내 삶에는 준호가 있었다. 그가 아무리 내 앞에서 설설 기는 시늉을 하는 남편이라도, 존재만으로도 나를 떳떳하지 못하다는 기분에 빠뜨린다는 점에서 내 삶에 묻은 얼룩과 다름없었다. 기혼이든 비혼이든 ‘각자의 자리‘에서 싸우면 된다고 하지만, 나의 자리가 어디인지 혼란스러웠다. 페미니즘을 더 일찍 접했어야 했어. 결혼은 어리석은 선택이었어. 어울리지 않는 껍데기를 썼어. 나는 기혼 여성을 향한 혐오의 말에는 반대해도, 한편으로는 기혼 페미니스트라는 단일한 집단을 가정해놓고 그 이미지에 내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여성 집단에 특정한 이미지를 부여하는 것 역시 여성 혐오임을 알면서도 내 안의 거부감을 쉽게 지울 수 없었다. 나는 내가 기혼 페미니스트들을 ‘온건하다‘라고 멸시하는 딱 그만큼 자신을 경멸했다. 나는 더 급진적인 존재가 되고 싶었다. 정치적으로 순수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티끌 한 점 없는 페미니스트로 살고 싶었다. - P157
남편이라는 존재가 부끄럽다는 것은 생각 이전에 감각이었다. 가끔 길에서 남자가 여자를 팔로 감싸며 걷는 모습을 보곤 했다.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는 남자, 남자의 팔 안에서 혀 짧은 소리로 말하는 여자. 이런 모습을 보면 이성애 자체가 징그러웠다. 이토록 젠더 권력이 불평등한 두 사람이 어떻게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여자들은 자신보다 힘이 세고, 임금을 더 받고, 범죄의 위협에서 훨씬 자유로운 존재 앞에서 격심한 분노를 느껴야 하지 않은가? 여자들이 불평등한 구도에 어느 정도는 눈을 감아야만 연애 관계가 성립할 수 있을 - P160
텐데 나를 억압하는 대상에게 애정을 느끼는 건 스톡홀름증후군 같은 이상심리, 문화적 세뇌, 자기기만이 아닌가? 커플이 포옹하고 있을 때 남자는 운동화를 신고 여자는 하이힐을 신었다면 가슴이 더 답답했다. 사회에서 ‘여성적인 것‘으로 분류된 모든 기호가 굴욕적으로 느껴졌다. - P161
사실 청첩장을 찍을 당시에 준호는 내 이름을 앞에 넣자고 제안했는데, 나는 "남들처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대답하면서 내 이름을 뒤에 넣기로 정했다. 지나고 보니 그가 무엇을 제안했든 내 삶에 이것이 ‘문제‘로 주어졌다는 사실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청첩장 이름의 순서라는 문제는 준호가 없었다면 내 삶에 제시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나는 이런 문제를 계속 풀어가면서 살아야 한다는 게 억울했다. 아마 준호는 자신이 평등한 제안을 했는데 거부한 것은 나라고 생각하면서 이 문제를 다시 떠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는 끝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무엇 때문에 내 입에서 ‘남들처럼 하는 게 좋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는지, 이 결정에 어떤 사회적 통념이 작용했으며 그것이 지금의 내 삶을 - P162
어떻게 만들었는지 자꾸 돌아보면서 쓸개를 핥듯이 패배감을 곱씹었다.
돌이켜 보면 의문이 든다. 정말로 배우자인 준호가 없었다면 나는 아무 거리낄 것 없이 당당한 기분으로 길을 걸을 수 있었을까? 내 패딩 점퍼에 새겨진 ‘페미니스트‘라는 글자가 십자가처럼 느껴지지 않고, 페미니즘과 내 삶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감각으로 살 수 있었을까? - P163
무엇이 나의 모습인지 알 수 없었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삶에 비전을 제시하는 가장 급진적인 사상이라고 믿는 나. 이성애의 모든 애정 표현이 어색하고 거북하게 다가오는 나. 화장한 페미니스트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나. 자신은 다른 기혼 여성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나. ‘페미니스트‘라는 글자가 새겨진 옷을 입고 탈코르셋을 한 모습으로 남편과 걷는 나. 자꾸만 나에게 팔을 감는 남편과 애써 거리를 벌리는 나. 영화관으로 걸어가는 짧은 길에서 나는 내 안에서 부딪치는 목소리들 때문에 심신이 마모되는 것 같았다. 분명히 처음에 페미니즘은 내 삶을 해석하게 해주는 새로운 눈이었는데, 이 눈은 순식간에 거울로 변했다. 그 거울 앞에서 나는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 P164
탈코르셋을 해서 그의 관심을 잃게 되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상대방의 스타일이 바뀌었다고 감정이 사라지는 관계라면 하루빨리 끝내는 게 나았다. 나를 못내 찜찜하게 했던 것은 내 안에서 떠오르는 질문이었다. 지금의 내 모습이 정말 내가 원했던 것인가? 화장을 하든 하지 않든, 여성의 화 - P175
장을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하든 긍정적인 것으로 생각하든, 이 모든 생각이 다시 자신을 검열하는 시선으로 돌아왔다. 내가 페미니즘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준호는 언제나 내 말에 백 번 동의하지만 자신은 남자이므로 페미니스트 자격이 없다고 몸을 낮췄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진보적 가치를 지지하기만 하면 되는데, 나는 왜 내 삶이 모순 때문에 파열될 것 같은 느낌을 안고 살아야 했을까? - P176
그때 나는 탈코르셋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만, 여성이 탈코르셋 운동과 자기 욕망이 부딪치는 상황에서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반드시 후자를 택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저는 여성 개인의 욕망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만약 우리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조금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외부의 목소리와 티끌만큼도 타협하지 않는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궁금하거든요." - P177
이제 나는 이 몸에 어떤 메시지도 더 쓰고 싶지 않았다. 남성들의 관 - P177
음적, 폭력적 시선만이 아니라 내 몸을 사회운동의 장으로 보는 자신의 시선에서도 놓여나고 싶었다. 나를 나에게서 자유롭게 풀어주고 싶었다. - P178
나는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제시하는 정답을 거부할 자유만이 아니라, 동조와 거부라는 기준에 얽매이지 않는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싶었다. 좋은 것부터 나쁜 것, 옳은 것부터 그른 것, 편안한 것에서 불편한 것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선택지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 싶었다. 이 선택하는 자유야말로 남성에 비해 여성이 가장 적게 누리는 행복이었다. - P180
그의 말을 들을수록 ‘임신‘이 그의 삶에 한 번도 무게를 가진 적이 없는 문제라는 것이 실감 났다. 그는 단지 진보적인 가치로서 낙태죄 폐지를 주장했을 뿐이었고, 실제 그의 삶에 임신이라는 가능성이 끼어들었을 때는 아무런 공포도 불안도 느끼지 않았다. 그는 고작해야 성감을 북돋우려고 콘돔을 쓰지 않을 만큼 태평한 세상에 살고 있었다. 내가 오래전의 임신 중단 경험을 되짚으며 아내로서 떳떳한가 고민하는 동안, 그는 콘돔 없이 혼외 성관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는 겨울날 피켓을 들고 법원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만족스러웠으리라. <파도 위의 여성들>에서 한 여성은 미프진을 삼키고 활동가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이렇게 외로웠던 적은 처음이에요." 이 문장이 모니터에 뜨는 순간 목이 메었다. 배를 감싸며 병원에 누워 있던 열일곱 살의 내가 얼마나 외 - P207
로웠는지 준호는 꿈에도 알 수 없을 것이다. - P208
어떤 자리에서든 누군가의 여자친구나 아내로 소개되는 순간 나에게 베일 하나가 씌워지는 느낌이었다. 안팎이 보이긴 하지만 분명히 무언가가 얼굴을 가리고 있는 느낌. 준호도 이 느낌을 알까? 내 주변 사람들 앞에서 남자친구나 남편, 사위라는 역할로 존재할 때 그도 나처럼 복잡한 기분을 느낄까? 아니면 사회적 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맡는 것은 똑같아도 익명의 존재가 되는 사람은 여자뿐일까? 준호도 나의 지인 사이에서 자신의 개인성이 지워지는 인상을 받은 적이 있는지 궁금했다. 문살롱 사람들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내 안에 충돌하던 감정은 이런 것이었다. 익명의 존재가 되는 쾌감과 불쾌감. 역할로만 관계 맺는 안온함과 거북함. ‘정상적인 삶‘을 사는 ‘정상적인 여자‘가 되는 기쁨과 슬픔. 문 살롱 사람들뿐만 아니라 준호로 연결된 사람들과 만날 때는 늘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오랫동안 손 놓고 있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 것은 이 기분 때문이기도 했다. 내 안에서 부딪치는 감정을 들여다보며 나의 관점으로 하나의 서사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 - P229
으면 나중엔 나도 자신을 알아볼 수 없을 것 같았다. - P230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내가 준호에게 이해받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었다. 결혼한 이후부터 나를 둘러싸는 숨 막히는 공기를 너도 느낄 수 있다면. 이 바람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자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 해야 내가 느끼는 부당함을 오롯이 전달할 수 있을까? 차분하게 이야기하면 내 말은 그의 귀를 스쳐갈 뿐이었고, 마구 화를 내면서 이야기하면 싸움이 시작됐다. 말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많은 뱀, 지네, 개구리를 토해내는 마법에 걸린 것 같았다. - P238
어쩌면 준호의 주변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남편을 억누르는 아내‘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그의 처신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느 자리에 가나 귀염 받는 막내처럼 거침없이 애교를 부리는 너. 누군가가 쓰다듬어 주고 토닥여주는 상황을 사랑하는 너. 준호는 이 상황을 즐기고, 나아가서는 유도했던 - P239
걸까? 아내에게 붙잡혀 사는 남편은 동정받기 마련이다. 남편한테 붙잡혀 사는 아내는 경멸받아도. 그렇다면 우리가 한국 사회에서 남편과 아내로 살아왔던 시간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까? 그는 사랑받기 쉬운 조건에서 사랑받으려 노력했고, 나는 사랑받기 힘든 조건에서 사랑받기를 거부했다. - P240
"그래, 알아. 너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갈등이 생기니까 힘들었겠지. 하지만 너는 내가 얼마나 다쳤는지 몰라." "알아. 난 알아." - P241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나도 마찬가지야." 뱀이 서로의 꼬리를 물듯이 뱅뱅 도는 대화였다. 이런 대화가 이어질수록 내 마음의 아주 작은 조각도 전달되지 않는다는 절망감이 깊어졌다. ‘안다‘라는 단어가 이토록 절망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말이었다니. 준호의 아버지가 "책 안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다 안다"라고 말했을 때, 그리고 준호가 내 옆에서 ‘안다‘라고 말할 때만큼 상대와 내가 멀리 있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우리가 한때는 서로의 삶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제 우리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은 서로의 말이 가닿지 않는 막막함뿐일까? - P242
어떻게 하면 내가 네 앞에서 평등한 개인이면서도 애정 - P244
내가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코르셋‘을 수행하는 여자들을 비웃기 위함이 아니다. 나는 내가, 그리고 다른 여자들이 다이어트를 하고 결점 없는 흰 얼굴을 만들고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서 트리트먼트에 힘쓸 때 무엇을 꿈꾸었는지 안다. 우리는 행복을 꿈꿨다. 사랑받고 사랑하는 삶.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일요일에 성당에 다니는 일상. 대단히 특별할 건 없어도 남부럽지 않게 사는 보통의 삶. 그 천진한 기대를 생각하면 나는 도무지 우리를 비웃을 수 없다. 이런 작은 바람조차 철저하게 모욕하는 세상에 화가 날 뿐.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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