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 박상영 에세이
박상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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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질문과 더불어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회사를 다니시면서 어떻게 소설을 두 권이나 쓰셨나요?"이다.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 역시도 어떻게 그런 일들이 가능했는지 모르겠다고 (약간 겸손한 표정으로) 대답하곤 했지만, 실은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게 - P203

있어서 회사 생활과 글쓰기는 마치 세트상품 같은 일이었다는 것을. 글을 쓰는 행위 자체는 회사 생활의 다른 모든 업무와 다를 바 없는 ‘노동‘이지만, 실은 나는 글쓰기를 통해 일종의 ‘존재 증명‘을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모적으로 남의 일을 해주고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내 목소리로 나만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는 그 감각이, 수면장애를 앓으며 쪽잠을 자면서도 계속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나의 현실을 버티게 해주었다. - P204

나는 내 몸을 긍정하지 않는다. 부정하지도 않는다. - P231

다만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작가로 막 데뷔한 시기에는 질겁하던 부하게 나온 사진도 요즘은 그냥 그렇구나 한다. 이전에 나는 나 자신의 몸과 정신이 고유하다고 주장하면서도, 나 스스로가 레귤러핏 블루진이 될 수 없음에 자주 절망해왔던 것 같다. 지금의 내 변화가, 나의 무뎌짐이 싫지도 좋지도 않다. 그냥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나는 요즘도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에게 내가 운동하는 것을 알리지는 않는다. 운동을 한다고 하면, 심지어 웨이트트레이닝을 배우기까지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모종의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누군가에게 이 사실을 말할 때면 나는 다소 방어적인 미소를 지으며, 오직 건강을 관리하기 위한 생존 운동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절반의 진실이다. 애초에 그토록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매일 밤 굶고 자야지 다짐하면서도 폭식을 일삼지는 않겠지.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기성복이 무엇인지, 레귤 - P232

러핏이 무엇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채로 나의 인생은 오늘도 똑같이 흘러간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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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 박상영 에세이
박상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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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하면 회사를 때려치우겠다고 마음먹은 뒤로는 모든 게 편해졌다. 아무렇지도 않다.
거짓말이다.
정말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초연한 사람이 이렇게 주절주절 많은 생각을 늘어놓을 리가 없지.
놀부 같은 생김새와는 어울리지 않게 실은 나는 조금 소심하고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다. 단지 글쓰기가 본업이며 회사 일이 부업이라는 마음을 갖기로 했을 뿐이다. 결심은 결심일 뿐이고 성격은 또 성격이라, 눈치는 눈치대로 다 보면서도 기어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야 만다. 상상도 못할 만큼의 내적 에너지를 써가며…. - P22

아 정말 죽고 싶다. 남들 보라고 책을 써서 출판까지 해놓고,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유난스럽다는 것 정도는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내 글은 그야말로 내 마음의 전시장이고, 내이 쑥대밭 같고 전쟁터 같은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한 거 - P37

아니겠어? 간파당하지 않겠다, 절대로 내 진심이나 적의 같은 것을 들키지 않겠다, 그저 쉬이 잊히는 존재로 이곳에 정물처럼 머무르다가 어느 날 불현듯 사라져버리겠다, 다시금 마음먹으며 나는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 P38

다만 나는 매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작가가 되었고, 내 책을 가지게 되었고, 내 글을 실을 지면을 얻게 되었으나, 나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거나 나의 일상을 가꾸는 방법, 내가 나를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믿음을 완벽하게 잃어버렸다. - P100

어쩌면 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것은 작가인 것이 밝혀지는 게 아니라, 작가라는 것이 밝혀지고 나서도 계속해서 매일 같은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일지도 몰랐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나를 파악하고, 나에 대해 궁금해하고, 내가 그것에 관해서 설명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올까 봐. - P107

나를 모르는 많은 사람에게 내 글을 읽히고 싶은 욕망과,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숨기고 싶다는 욕망, 이 두 가지 모순된 욕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나는 지난 3년간 조금씩 나 자신을 고독하게 만들어왔다. 온몸으로 과잉된 자의식을 내뿜으며 말이다. - P108

나는 매일 싸우는 것처럼 살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과,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사람들과, 어쩌면 그 무엇보다도 나 자신과 말이다. - P135

한없이 나 자신이고 싶어서, 나를 표현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더 열심히 글을 쓸수록, 더 최선을 다해 노력할수록 오히려 내가 원하는 삶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쓸 때의 성취감이나 행복감은 금세 휘발됐고, 타인의 평가에 의해서 내 삶의 거의 모든 부분이 결정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막연히 꿈꿔왔던 삶을 이뤄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할 뿐,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모든 게 다 무기력하고 귀찮게만 느껴졌다. - P151

그리고 12년이 흘렀다. 나는 30대가 되었고, 이제는 정말로 그 꿈이라는 것을 이뤄 별 볼 일 없지만 내 이름으로 된 책도 갖게 되었고, 여전히 가난하지만 간신히 내 밥벌이는 하며 이곳에 당도하였다. 돈이 좋다. 돈이 좋고 꿈이 좋은데, 스무 살 때 봤던 그 불빛과 이 불빛이 도저히 같은 불빛일 수가 없는데, 이상하게 나는 또다시 그때의 나로 돌아간 것만 같다. 영원히 이렇게 높은 곳에서 불빛을 보고 싶은데, 아직은 더, 더 할 말이 많이 남은 것 같고, 더 정확히 표현해야만 하는 감정들이 남아 있는 것 같고… 그러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써야 하는 거겠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 사는 이 모습 그대로의 삶을 앞으로 이어나가면 되는 거겠지.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무거운 걸까. 서른둘의 나 - P160

는 이제 무엇을 꿈꾸고 어느 곳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 P161

실은 얼마 전까지 내게 있어서 이런 모습의 사진이 박제되는 것만큼 큰 공포는 없었다. 그런데 막상 닥치고 나니 사실 별로 감흥이 없다. 때때로 내 외모에 대해 평가하는 댓글이 달려도 생각보다 타격이 없다.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돼서? 아니면 원치 않은 모습이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의 내모습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결과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외면하고 싶을지언정 지금의 내 현실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매일 밤 나를 단죄해왔던 죄책감과 폭식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하루에 한 발짝씩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다 보면 언젠가는 정 - P170

말, 굶고 잘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어도 어쩔 수 없겠지만….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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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해릴린 루소 지음, 허형은 옮김 / 책세상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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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단한 이유를 말해주겠다. 그건 내가 온갖 장벽, 바리케이드, 그러니까 당신들이 뭔가를ㅡ아마도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ㅡ을 피하기 위해 당신과 나 사이에 둘러치는 몹쓸 것들을 다 참고 견 - P56

디면서 동시에 제때 집세를 내고 다크초콜릿도 음미하는 삶을 누리고 있어서다. 용기 없는 사람은 견디지 못할 삶이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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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 - 아파도 힘껏 살아가는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이주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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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한 모금 마시고 바다에 뛰어들어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에겐 철칙이 있다고 한다. 욕심내지 않는 것. 자신의 폐활량을 정확히 깨닫는 것. 그래서 나이와 상관없이 미역 따는 해녀와 전복 따는 해녀는 따로 있다. 미역만 딸 수 있는 해녀가 더 깊은 물에서 자라는 값비싼 전복을 탐내다 보면 목숨을 잃게 된다. ‘숨‘은 냉정하다.
정신적 에너지도 이와 비슷한 게 아닐까. 태어날 때부터 폐활량이 정해져 있듯 내게 주어진 정신적 용량이 있는 것이 아닐까. 고양된 감정, 넘치는 활력, 고갈되지 않는 아이디어 같은 조증의 에너지를 계속 감당하기 버거워졌다. - P62

"수간호사가 내게 요즘 모습이 ‘원래 모습‘이냐고 물었다. 원래 모습이란 무엇인가. 조증도 나고, 울증도 나다. 어느 것을 내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루한 병원생활로 지친 모습이 진정한 나일까. 이젠 아무리 난리를 피워도 오히려 퇴원을 늦출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체념과 체념을 거듭한 것이 나인가. 외부의 자극에 별 감흥이 없는 지금의 나인가." - P63

어린 시절의 경험이 조울병의 범인은 아니지만, 후일 조울 - P80

병이라는 낯선 손님이 찾아왔을 때 그 놀라운 식탐을 채워주는 먹거리인 건 분명해 보인다. 조울병은 망각의 냉동고에 갇혀 있었던 일들을 불러내 놀라운 기억력으로 소생시킨 뒤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병이다. 감정을 끄집어내 뼈를 다 발라 먹다시피 악착같이 후벼 파고 증폭시킨다. 조증이 점령한 머릿속에선 과거와 현재의 경험이 형광물질이라도 발라진 듯 총천연색으로 다가온다.
울증 시기엔 조증 때처럼 생생하진 않지만 과거의 기억이 물밑에서 발목을 잡아당기는 물귀신처럼 달라붙어 있다. 현재와 미래는 과거의 어두운 경험에 꽁꽁 묶여 있으며 앞으로도 이를 헤쳐 나오는 건 불가능하다고 체념한다. 조울병은 지난 일을 반짝반짝 빛나는 행복의 기억들 또는 땅 밑으로 꺼질 듯한 암울한 기억으로 극단화시킨다. 조울병을 앓기 이전의 경험이 조울병을 유발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조증과 울증 그 어느 시기든 나를 사로잡은 감정의 소재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얻어진다. - P81

슬픔과 우울은 어깨를 마주하고 찾아올 때가 많지만 본질적으 - P121

론 다르다. 슬픔은 이유가 있다. ‘나‘와 ‘잃어버린 것/사람‘을 분리할 수 있다. 그때가 언제일지 알 수 없지만, 이 슬픔이 언젠가는 다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은 오로지 슬픔으로 꽉 차 있는 감정의 공간에 기쁨과 행복이 비집고 들어올 것을 믿는다. 슬픔은 위로하는 타인과 교류할 수 있다.
반면, 우울은 실체 없는 어떤 것이 주변을 채우고 목을 조르는 느낌이다. 의지, 목표, 흥미가 마비된다. 모든 것이 메말라간다. 슬픔이 감정의 습지라면, 우울은 감정의 사막이다. 그것도 사하라 같은 열사의 사막이 아니라 남극 같은 동토의 사막. 우울은 귀를 막는다. 주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없다. 우울은 ‘셀프 감금‘이다. - P122

그럼에도 아는 것과 겪는 것은 늘 다르다. 내가 고통의 견적을 정확하게 파악한다고 하더라도, 고통의 주인은 고통이다. - P132

나중에 이 시기의 경조증과 울증의 실체를 알게 되자, 두 가지 모순되는 감정을 느꼈다. 이 병에 완전히 사로잡혔다는 절망감과 불안감이 한 축이었다면, 이 시기에 일어난(또는 일으킨) 크고 작은 사건이 왜 벌어졌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또 다른 축이었다. 난 아팠던 것이다. 내 잘못과 부주의로 벌어진 일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다 책임져야 하는 건 아니다. 그 반대도 가능하다. 내 책임이 아닌데 왜 이런 일이 내게 벌어졌는지 그 의미와 이유에 대해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세상엔 어떤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나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불운이 피해가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불행을 겪어야 한다.
불행에 물음표를 찍거나 저항하지 않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는 진실의 중요한 조각이다. 조울병을 그냥 내 부분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사실 지금도 자유롭지 않다. 약과 상담으로 단단히 죄어오는 조울병의 고삐가 언제 풀릴지 몰라 두렵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다. 짜고 달고 쓰고 매운 맛을 봤다. 때론 비릿함에 몸서리치기도 했다. 내 인생은 간이 잘 맞는다. - P138

선생님 앞에서 정신없이 울던 시기가 지난 뒤, 그는 과거의 나쁜 기억들을 곱씹으며 해석하는 일은 이제 충분하다고 했다. 계절이 변하면 철 지난 옷을 정리하는 것처럼 좋지 않은 것들은 기억의 서랍에 넣으라고 했다. - P167

만성적인 홍수가 불가피한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이사 가지 않는 한 물난리를 아예 피할 순 없다. 그러나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을 고안해내는 것, 방벽을 친다거나 집 구조를 바꾼다거나 배수구를 개선한다거나 하는 일은 가능하다.
환자들도 알고 있다. 조울병을 앓기 이전 과거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며, 노력한다고 해서 재발할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긴 어렵다는 것을. 의사가 환자를 돕는 방법은 재발이 없을 거라고 안심시키는 게 아니라 환자가 위기에 봉착할 때 ‘모 - P172

든 것‘을 잃지 않고 헤쳐나올 수 있는 태도를 가르치는 것이다. 환자 스스로가 이런 생각을 훈련할 수 있도록 지켜보고 장려하는 것이다. 내가 어떤 상황에 부닥쳤을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이해하고, 슬픔, 기쁨, 두려움에 너무 깊이 빠져들지 않을 방법을 익히고 실천하는 것. 불행이 발생하는 것은 통제할 수 없지만, 이런 훈련을 계속한다면 극복할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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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 남자는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저자가 찾아낸 답은 명쾌하다. 한국 남자 상당수는 룸살롱, 노래방 등 각종 ‘방’에서 여성 접객원이 수행하는 ‘아가씨노동‘을 향유하면서 남자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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