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 박상영 에세이
박상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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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하면 회사를 때려치우겠다고 마음먹은 뒤로는 모든 게 편해졌다. 아무렇지도 않다.
거짓말이다.
정말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초연한 사람이 이렇게 주절주절 많은 생각을 늘어놓을 리가 없지.
놀부 같은 생김새와는 어울리지 않게 실은 나는 조금 소심하고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다. 단지 글쓰기가 본업이며 회사 일이 부업이라는 마음을 갖기로 했을 뿐이다. 결심은 결심일 뿐이고 성격은 또 성격이라, 눈치는 눈치대로 다 보면서도 기어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야 만다. 상상도 못할 만큼의 내적 에너지를 써가며…. - P22

아 정말 죽고 싶다. 남들 보라고 책을 써서 출판까지 해놓고,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유난스럽다는 것 정도는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내 글은 그야말로 내 마음의 전시장이고, 내이 쑥대밭 같고 전쟁터 같은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한 거 - P37

아니겠어? 간파당하지 않겠다, 절대로 내 진심이나 적의 같은 것을 들키지 않겠다, 그저 쉬이 잊히는 존재로 이곳에 정물처럼 머무르다가 어느 날 불현듯 사라져버리겠다, 다시금 마음먹으며 나는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 P38

다만 나는 매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작가가 되었고, 내 책을 가지게 되었고, 내 글을 실을 지면을 얻게 되었으나, 나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거나 나의 일상을 가꾸는 방법, 내가 나를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믿음을 완벽하게 잃어버렸다. - P100

어쩌면 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것은 작가인 것이 밝혀지는 게 아니라, 작가라는 것이 밝혀지고 나서도 계속해서 매일 같은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일지도 몰랐다. 내가 아는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나를 파악하고, 나에 대해 궁금해하고, 내가 그것에 관해서 설명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올까 봐. - P107

나를 모르는 많은 사람에게 내 글을 읽히고 싶은 욕망과,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숨기고 싶다는 욕망, 이 두 가지 모순된 욕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나는 지난 3년간 조금씩 나 자신을 고독하게 만들어왔다. 온몸으로 과잉된 자의식을 내뿜으며 말이다. - P108

나는 매일 싸우는 것처럼 살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과,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사람들과, 어쩌면 그 무엇보다도 나 자신과 말이다. - P135

한없이 나 자신이고 싶어서, 나를 표현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더 열심히 글을 쓸수록, 더 최선을 다해 노력할수록 오히려 내가 원하는 삶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쓸 때의 성취감이나 행복감은 금세 휘발됐고, 타인의 평가에 의해서 내 삶의 거의 모든 부분이 결정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막연히 꿈꿔왔던 삶을 이뤄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할 뿐,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모든 게 다 무기력하고 귀찮게만 느껴졌다. - P151

그리고 12년이 흘렀다. 나는 30대가 되었고, 이제는 정말로 그 꿈이라는 것을 이뤄 별 볼 일 없지만 내 이름으로 된 책도 갖게 되었고, 여전히 가난하지만 간신히 내 밥벌이는 하며 이곳에 당도하였다. 돈이 좋다. 돈이 좋고 꿈이 좋은데, 스무 살 때 봤던 그 불빛과 이 불빛이 도저히 같은 불빛일 수가 없는데, 이상하게 나는 또다시 그때의 나로 돌아간 것만 같다. 영원히 이렇게 높은 곳에서 불빛을 보고 싶은데, 아직은 더, 더 할 말이 많이 남은 것 같고, 더 정확히 표현해야만 하는 감정들이 남아 있는 것 같고… 그러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써야 하는 거겠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 사는 이 모습 그대로의 삶을 앞으로 이어나가면 되는 거겠지.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무거운 걸까. 서른둘의 나 - P160

는 이제 무엇을 꿈꾸고 어느 곳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 P161

실은 얼마 전까지 내게 있어서 이런 모습의 사진이 박제되는 것만큼 큰 공포는 없었다. 그런데 막상 닥치고 나니 사실 별로 감흥이 없다. 때때로 내 외모에 대해 평가하는 댓글이 달려도 생각보다 타격이 없다.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돼서? 아니면 원치 않은 모습이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의 내모습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결과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외면하고 싶을지언정 지금의 내 현실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매일 밤 나를 단죄해왔던 죄책감과 폭식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하루에 한 발짝씩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다 보면 언젠가는 정 - P170

말, 굶고 잘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어도 어쩔 수 없겠지만….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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