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 삶의 지도를 확장하는 배움의 기록
이길보라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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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경험."
예술가로서 어떻게 지속가능한 삶을 꾸려나가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아 막막할 때 이 말을 생각한다. 두 단어로 연결된 짧은 수어이지만, 엄마 아빠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말 그 삶의 방식을 믿었기에 선택의 순간마다 용기내어 직접 부딪칠 수 있었다. - P10

"안녕하세요. 농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이 이야기꾼의 선천적 자질이라고 굳게 믿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이길보라입니다."
여기서 스스로 굳게 믿는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지 않으면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 누구도 내 선천적 배경을 긍정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유일하게 엄마, 아빠만이 내 배경을 밑도 끝도 없이 긍정했다. 다시 태어나도 농인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한 치의 의심도 없는 표정과 흔들림 없는 그들의 손동작이 나를 그렇게 ‘믿게‘ 만들었다.
그래서 농인 부모로부터 태어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된 것은 어쩌면 ‘타고난 일‘인지도 모르겠다. 부모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와 소리를 듣는 사람으로 세상에 귀기울이는 것은 다른 결을 지니고 있었다. 이 두 가지가 왜, 어떻게, 무엇이 다른지를 들여다보는 것이 나의 일이 되었다. - P17

"열어라! 열어라!"
모든 참가자들이 목소리 높여 구호를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이들과 자리가 없어 뒤쪽으로 길게 줄을 섰던 사람들이 차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주행하던 차량의 운전자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경찰 역시 그랬다. 그렇게 집회 대오는 넓게 확장된 도로로 옮겨갔다. 드디어 차도를 점거했다. 누군가는 불편할 터였지만 그들이 불편함을 깨닫는 것 자체가 이 집회의 목적이었다. 여성은 단지 성별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평생 불편함을 겪어왔으니 말이다.
20세기 초, 영국의 여성참정권운동을 다룬 영화 <서프러제트>에 이런 대사가 있다.
"우리는 창문을 깨고 불을 질러요. 남자들이 들어주는 유일한 언어가 전쟁이니까요."
여성에게도 투표할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던 이들이 길거리의 창문을 무차별적으로 깨고 집에 불을 지르자 그제야 듣기 시작한다. 남성이 인식하는 방식, 미러링을 통해 여성은 스스로 가시적인 존재가 되기를 택한 것이다. 그렇게 오랜 투쟁 끝에 그들은 참정권을 얻는다. <서프러제트>는 권리를 얻기 위해 투쟁하는 여성들의 연대를 다룬 영화다. - P250

졸업 연구 주제는 ‘몸짓과 움직임을 통한 역사 다시 쓰기―우리의 몸의 침묵과 기억 읽기‘로 잡았다. 실험이 중심이었던 3학기와 개념화에 집중했던 4학기를 통해 연구 주제를 명확하게 잡을 수 있었다. 초기 연구 주제 ‘여성의 기억은 남성 · 국가의 기억과 어떻게 다른가‘라는 추상적인 질문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헤맸는데 2학기에 제작한 영상 <국민체조 및 국기에 대한 경례>가 전환점이 되었다. 내가 말하는 여성의 기억은 ‘몸의 기억‘이고, 몸에 새겨진 기억을 파고들기 위해서는 가장 가까운 몸, 내 몸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의 몸은 국민체조와 국기에 대한 경례, 학교에서 배운 깜지 쓰기, 국가 및 사회가 요구하 - P266

는 (여성의) 몸이 되기 위한 동작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 동작들은 모두 국가, 사회로부터 훈련되고 주입된 것이었으며 한국과 멀리 떠어진 이곳에서 몸이 기억하는 동작들을 통해 그 기억이 무엇인지, 그사이에 숨겨진 침묵의 기억은 어떤 것인지 영화를 통해 살펴보는 것이 내가 프로젝트를 통해 하고 싶은 연구였다.
연구 주제를 잡은 후 학기마다 짧은 영상을 제작했다. 네덜란드의 큰 공원에 테이블과 의자 하나를 가져다 두고 긴 롤페이퍼에 깜지를 썼다. 캄캄해져 주변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종이를 작은 글씨로 채웠다. 한 시간 정도 촬영했는데 실제 물리적 시간을 보여주고 싶어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상영했다. 깜지 쓰기는 실제로 내가 좋아했던 공부 방법이기도 했는데 네덜란드의 공원 한복판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롤페이퍼에 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무엇보다 내몸은 정확하게 그 동작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주 작은 글씨로 오랜 시간 종이 채우기. 읽고 쓰기를 장시간 반복하는 학습법그후 내가 한국에서 습득한 몸의 동작들을 돌아보았다. 늘 주변을 신경쓸 것, 겉모습을 단정히 할 것, 다리를 벌리지 않고 앉을 것, 남들과 끊임없이 비교할 것, 화장할 것, 치마를 입을 것, 긴 머리 스타일을 고수할 것, 성별에 맞게 행동할 것. 이른바 정상성의 몸 되기. 내 몸이 체화하고 있는 동작들은 결국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는 몸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이었고 나 혹은 우리의 몸은 그걸 - P267

지속하며 이 시스템을 지탱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묻어야만 했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그건 여성의 몸에 대한 질문이었고, 재생산권에 대한 논의와 연결되었다. 나는 나와 엄마, 할머니의 임신중지 경험을 소재로 영화를 통해 우리 몸의 기억을 드러내기로 했다.
작업은 쉽지 않았다. 마지막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촬영을 하러 한국에 갔다. 스튜디오에 엄마와 할머니를 불러 인터뷰를 했다. 꼭 하고 싶은 작업이었지만 동시에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작업이었다. 감독으로서 꼭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딸이자 손녀로서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엄마와 할머니에게 몸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그들의 임신중지 경험에 대해 물었다. 할머니는 "박정희 정권 때는 실제로 인구 조절을 하기 위해 낙태 수술이 빈번하게 이루어졌고 당시에는 쉬쉬하지 않고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고 했지만 엄마는 말하고 싶지 않다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나는 그럼에도 이야기해야 한다고 엄마를 설득했지만 사실 그러고 싶지 않기도 했다. 나는 나의 임신중지 경험을 공유했다. 할머니는 놀랐고 엄마는 듣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는 질문했다.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태어난 여성들이고 나는 엄마의 몸으로부터, 할머니의 몸으로부터 나왔는데 왜 우리는 각자의 임신중지 경험을 공유할 수 없는지, 여태껏 발화되지 않고 몸 어딘가에 묻어둔 기억들은 이상적인 몸을 갖추기를 요구하는 국가 ·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나는 인터뷰 영상 - P268

과 국민체조, 국기에 대한 경례, 이상적인 여성의 신체상을 주입했던 아카이브 영상들과 섞어 편집했다. 마지막 프로젝트의 제목은 ‘우리의 몸‘이었다.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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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개정증보판 달인 시리즈 1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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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왜그렇게 출세를 못해 안달하는지 아니? 다 외로워서 그런 거야. 사람들 ‘속에서‘ 폼나게 살고 싶으니까 돈이나 권력으로 사람들을 계속 자기 옆에 묶어두려고 하는 게지. 헌데, 실제론 출세를 하면 할수록 더더욱 ‘왕따‘가 된다는 게 문제란 말이야. 그건 또 왠 줄 아니? 열심히 돈과 권력을 좇아 살다 보니, 친구들의 존재를 홀라당 까먹어버린 거야. 한마디로 ‘재수없어‘ 지는 거지. 다 공부를 엉터리로 했기 때문이야. 그런 사람은 공부를 백날 해봐야, 아니, 최고등급을 받아봤자 잔챙이밖엔 안 돼. 잔챙이를 누가 친구로 사귀고 싶어하겠어? 또 자기 자신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그따위 공부가 어찌 세상을 이롭게 하겠냐구? - P10

그런 시각에서 보면 대학로는 정말 밋밋하기 짝이 없다. 거리의 대부분이 패스트푸드점과 카페로 가득하고, 극장들은 소비적 상권에 압도되어 거의 눈에 띄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나를 포함하여 모 - P43

두들 그곳을 문화의 거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건 문화란 세련되고 소비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통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참, 그러고 보면 문화라는 말처럼 오염된 단어도 없지 싶다. 단어 본래의 뜻으로 치자면야 인간이 누리는 삶의 다양한 표현방식이 되겠지만 시대를 잘못 만난 탓으로 지금은 ‘삶‘은 쏙 빠져버리고 뭔가 삐까번쩍한 표현형식이라는 의미만 남고 말았다. 그러자니 자연 ‘다양성‘마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남은 건 오직 눈앞을 휙휙 지나가는유행뿐. - P44

밥을 먹고 물을 마시듯 꾸준히 밀고 가는 항심(恒心)과 늘 처음으로 돌아가 배움의 태세를 갖추는하심(下心), 공부에 필요한 건 오직 이 두 가지뿐이다. - P49

아무리 즐거워도 돈이 되지 않으면 ‘인생에 쓸모없는‘ 일이 되어버리고, 아무리 싫어하는 것이라도 돈이 되면 ‘몹시 유용한‘ 일이 된다. 돈이 깊이 개입하는 순간, 어떤 활동이든 졸지에 타율성이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다 남을 이겨야 한다는 강박증까지 작동하기 시작하면, 그 활동 속에 들어 있는 모든 생명력은 완전 잠식되고 만다. - P53

독서를 외면하는 대안학교라? 언어도단! 상식적인 말이지만, 그런 다양한 활동이 신체와 ‘통‘하려면 무엇보다 근기(根器)가 튼실해야 한다. 근기란 쉽게 말하면 그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에너지의 분포도‘ 같은 것이다. 그릇이라고도 하고, 카리스마라고도 한다.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성적이나 학벌이 아니라, 바로 이 근기다. 그런데 이것을 제대로 충전할 수 있는 길은 단언컨대 독서밖에 없다! - P57

창의성? 참 좋은 말이다. 이걸 나쁘다고 할 사람은 세상에 없다. 문제는 창의성의 구체적 내용이다.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어떤 창의성인가가 문제라는 거다.
가장 두드러진 건 시설과 서비스의 세련됨을 창의성과 그대로 오버랩시키는 경향이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 사회는 학교가 주는 칙칙하고 낙후된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하여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 어딜 가도 시설 하나는 끝내준다. 전국 구석구석마다 - P61

영상 시설이 갖추어지고, 인터넷이 연결되었다. 특히 대학은 거의 몇 년간을 리모델링에 올인했다. 한 대학은 화장실을 리모델링하는데 10억을 썼다고 한다. 시설만 바꾸면 창의적 역량이 절로 고양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은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학술진흥재단의 연구비 지원도 만만치 않다. 그 덕분에 온갖 종류의 학회가 우후죽순처럼 난립하고, 전국 규모의 학술지 또한 차고 넘친다. 그런데, 참 기이하게도 이런 외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창의적인 담론이 제출되었다는 소문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표절에 복제에 몰주체적이고 기형적인 풍토가 만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 P62

결국 우리는 모두 속은 것이다. 여건만 좋으면, 지원만 충분하면 활동은 저절로 굴러가리라는 발상, 이것이 바로 학교가 퍼뜨리고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수락한 거짓말의 덫이다. 즉 창의성에 대해 전혀 ‘창의적으로‘ 사유하지 못한 것. 진정한 창의성은 폼나는 공간에 들어앉아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그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학습 주체와 공간이 어우러져 전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아주 강도 높은 학습의 장을 연출하는 것, 창의성이란 바로 그런 것을 의미한다. - P65

독재 정권 시절엔 대량생산의 시대였고, 그때는 창의성 따위가 필요하지 않았다. 똑같은 것을 반복적으로 찍어내면 되니까. 그에 반해, 지금은 상품이 시장에서 먹히려면 차별성이 뚜렷해야 한다. 쉽게 말해 튀어야 한다. 그러자니 사회 전체가 온통 창의성, 개성, 사고력 따위를 떠들어대기에 바쁜 것이다. 따라서 이때의 창의성이란 새로운 유행을 선도하는 기획력, 신상품 개발의 아이디어 따위를 의미한다.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아니라, 포장과 이미지를 적당히 바꿀 줄 아는 능력에 해당하는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간 학교들이 거죽을 바꾸는 데 그토록 치중했던 것도 나름 이해할 만하다. - P66

그러므로,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으면 자신의 문체를 주의 깊게 살펴보라. 거울보다 더 투명하게 자신을 비춰줄 것이다. 아마 탁월한 직관력을 가진 점쟁이라면, 문체만 보고도 그 사람의 운명을 다 점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고전의 시대엔 그런 경우가 더러 있었다. 문장에 흐르는 기세나 빛깔만 보고도 장차 어떤 인물이 될지, 어떤 일을 저지를지 충분히 예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지금과는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면, 운명의 궤적을 변경하고 싶다면, 문체를 바꾸면 된다. 거꾸로, 문체를 바꾸고 싶으면 모름지기 표정을, 몸을, 삶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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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 한 여자의 일생
김인선 지음 / 나무연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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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나는 70여 년 살아온 내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으려 한다. 내 인생 가운데는 내 의지와 무관하게 운명처럼 주어진 부분이 있다. 가령 부모님이 원치 않았건만 내가 태어나게 된 것을 나는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이후 나는 낯선 독일에 와서 간호사로 일했고, 신학을 공부했고, 독일로 이주해서 살아가다가 죽음을 앞둔 이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단체를 만들었다. 또한 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했다가 이혼했고, 지금은 나를 사랑해주는 한 여성과 - P9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나의 삶은 어느 정도 내 의지로 만들어온 것이리라. 한편 내 앞에는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의 시간이 놓여 있다. 이 시간은 인간이 정하는 걸까, 신이 정하는 걸까.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면 인간의 선택일 수 있겠지만, 많은 이들에게 죽음의 시간은 신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아직 당도하지 않았지만, 앞으로의 나에게 닥칠 일이다.
나는 내게 주어진 운명이 무엇이고, 내가 결정해온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상황과 환경도 있겠지만, 내가 살아가는 동안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가늠해보고 싶었다. 그것이 이 글을 쓰는 데로 나를 이끌었다. - P10

그러니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나는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나 자신을 무례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에게 성내지 않을 것이다. 나 자신이 소중한 것처럼 다른 사람도 소중히 여길 것이다. 그렇게 나에 대한 마음을 타인에게 확장시켜나갈 것이다. 그것이 곧 세상을 아름답게 이끄는 길이라고 나는 믿는다. - P11

이런 사연은 가난하고 척박했던 당시의 한국에서 흔히 있을 법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는 일흔 살 인생을 살아온 지금까지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서러움의 세월이다. 과거의 아픔은 나이를 먹으며 잊히는 게 아니라 더욱 선명하게 되살아나곤 한다. 그만큼 인생에 깊이 각인된 것이기에 그러할 것이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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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 중산층 사회 - 90년대생이 경험하는 불평등은 어떻게 다른가
조귀동 지음 / 생각의힘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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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20대가 경험하는 불평등은 1퍼센트와 99퍼센트의 격차가 아니라 10퍼센트와 90퍼센트의 격차에 기인한다. 그리고 그 격차는 단순히 임금의 격차가 아니라 생애주기 전반의격차다. 변호사·의사와 삼성전자·우리은행 직원의 생활세계 내 격차는 크지 않지만, 그들과 중소기업 노동자 또는 비정규직의 격차는 감히 메울 수 없을 정도로 넓고도 깊다. 20대가 계급 불평등을 경험한다면 현대판 부르주아지인 10퍼센트와 나머지 90퍼센트의 불평등인 것이다. - P9

20대 집단 내부의 격차는 ‘능력‘의 격차로 포장된 ‘결과‘의 격차이면서, 동시에 ‘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계층‘의 격차다. 결국 20대의 격차는 부모 세대인 50대의 격차가 그대로 세습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P10

결국 오늘날 20대가 경험하는 불평등은 ‘세습 중산층‘과 나머지 사람들의 격차에 가깝다. "부의 위계에 따라 구조화되어 있던 사회가 거의 전적으로 노동과 인적자본의 위계에 따라 구조화된 사회로 바뀌었다"는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지적은 구미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60년대생이 대학(특히 명문대) 정원 확대, 경제 호황기 노동시장 진입, 수출 대기업의 급성장과 그로 인한 노동소득 증가·자산 가격 급등에 힘입어 세습 중산층의 1세대를 이루었다면, 90년대생은 그들의 교육 투자로 만들어진 세습 중산층의 2세대다.
오늘날 20대가 경험하는 불평등의 본질은 부모 세대인 50대 중산층이 학력(정확히는 학벌)과 노동시장 지위를 바탕으로 그들의 자녀에게도 동일한 학력과 노동시장 지위를 물려주는 데 있다. 세습 중산층의 자녀가 ‘번듯한 일자리‘를 독식하는 게 2019년의 20대가 1999년 또는 2009년의 20대와 다른 점이다. 이렇게 심화된 ‘격차 고정‘은 결혼, 주택 등 생애주기에서의 기회에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결혼과 주택 문제는 세습 중산층과 나머지 사람들 간의 격차 심화의 결과이면서 그와 동시에 - P12

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하는 요인이다.
‘90년대생‘은 출신 학교, 직업, 소득, 자산 나아가 결혼 등의 사회적·문화적 경험에 이르기까지 다중의 불평등을 경험한다. 그들에게 불평등은 마치 공기와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불평등 확대와 격차 고정 상황에서 겪는 경험의 이질성은 정치·사회 인식에 영향을 미쳐 ‘계급의식‘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세계관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그들은 ‘세대‘로 묶을 수 있는 단일한 실체가 아니다. 굳이 세대론의 용어를 사용해 이들을 규정짓자면 ‘초격차 세대‘가 어울릴 것이다. - P13

불공정·불평등에 대한 인식도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이는 성별에서도 차이를 드러낸다. 남성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하층일수록 사회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성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상층일수록 사회 구조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 진보적 성향을 띤다. 20대 남녀 간 정치적 양극화는 중산층 집단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경제적 지위의 향상 가능성이 없는 하위 90퍼센트에 속한 20대들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부모 세대인 50대를 불신하는 것이다. 그들이 상위 10퍼센트에 속한 ‘5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 남성의 진보 담론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20대, 특히 20대 남성은 보수화된 게 아니라 비당파화apartisan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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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 - 어느 여성 생계부양자 이야기
김은화 지음, 박영선 구술 / 딸세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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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러나 시대가 있고, 사회라는 게 있다. 지금도 여성에게 달린 가부장제의 족쇄가 이렇게 많은데, 10년 전, 20년 전에는 그 족쇄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엄마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나니그 맥락이 보인다. 이제는 알겠다. 엄마가 나를 키우기 위해 무엇을포기했고 무엇을 감수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용감했는지 말이다.
그래서 내가 먼저 엄마를 알아주기로 했다. 그 시작은 제대로 된 호칭을 붙여 주는 일이다. 엄마는 그간 가족을 위해 일했다. 그러나 한 가정을 이끄는 가장이나 생계부양자 같은 호칭은 남성에게만 명예롭게 주어졌다. 나는 여기에 대항해서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다고, 아니 살렸다고, 그녀의 노동이 ‘
었더라면 나는 지금의 내가 되지 못했을 거라고, 엄마는 우리 가족의 생계부양자였으며, 진정한 가장이었다고 말이다. - P16

그러나 밀려난 자리에서 삶의 전환을 꾀하고, 다시 최선을 다하는 삶의 태도야 말로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가부장적인 사회는 여성들을 자꾸 변방으로 몰아낸다. 여자라서 공부를 더 시키지 않고, 여자라서 저임금의 노동을 맡기며, 여자라서 무급으로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하는 것을 사회는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여자들은 피해자의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밀쳐졌다가도 튕겨 오르고, 순응했다가 반발한다. 원망과 증오, 사랑으로 불타올랐다가 체념과 무기력으로 가라앉는다. 실눈을 뜨고 때를 기다린다. 다양한 삶의 전략을 구사하며 성큼성큼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간다. 삶의 길 위에서 그녀들 하나하나가 적극적인 플레이어이며, 역사의 주인공이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살아남은 여자는 누구나 강하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밀려난 곳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 P249

이 책은 영선 씨만을 위해 쓴 것이 아니다. 그녀의 곁에는 늘 여성들이 있었다. 마산수출자유지역에서 함께 일했던 여성 노동자들, 공동체를 위해 일하던 부녀회 친구들, 한복 학원을 같이 다녔던 동기들, 물류 창고에서 함께 먼지를 뒤집어쓰던 여성 노동자들, 요양보호사로 매일 육체의 한계를 시험당하던 중년의 여성들 말이다. 그녀들 하나하나를 생계부양자로 호명해 주고 싶다. 가부장적인 사회는 당신들에게 별처럼 높이 떠오를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간을 살아내고 딸들에게는 또 다른 기회를 준 당신들에게 후배 여성으로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여전히 여성은 남성이 시급 1만 원을 받을 때 6300원을 받으며 살아간다. 과연 여성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우리는 전략적으로 또 연대하며 살아갈 것이다. 어머니 세대, 당신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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