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경험." 예술가로서 어떻게 지속가능한 삶을 꾸려나가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아 막막할 때 이 말을 생각한다. 두 단어로 연결된 짧은 수어이지만, 엄마 아빠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말 그 삶의 방식을 믿었기에 선택의 순간마다 용기내어 직접 부딪칠 수 있었다. - P10
"안녕하세요. 농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이 이야기꾼의 선천적 자질이라고 굳게 믿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이길보라입니다." 여기서 스스로 굳게 믿는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지 않으면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 누구도 내 선천적 배경을 긍정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유일하게 엄마, 아빠만이 내 배경을 밑도 끝도 없이 긍정했다. 다시 태어나도 농인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한 치의 의심도 없는 표정과 흔들림 없는 그들의 손동작이 나를 그렇게 ‘믿게‘ 만들었다. 그래서 농인 부모로부터 태어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된 것은 어쩌면 ‘타고난 일‘인지도 모르겠다. 부모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와 소리를 듣는 사람으로 세상에 귀기울이는 것은 다른 결을 지니고 있었다. 이 두 가지가 왜, 어떻게, 무엇이 다른지를 들여다보는 것이 나의 일이 되었다. - P17
"열어라! 열어라!" 모든 참가자들이 목소리 높여 구호를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이들과 자리가 없어 뒤쪽으로 길게 줄을 섰던 사람들이 차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주행하던 차량의 운전자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경찰 역시 그랬다. 그렇게 집회 대오는 넓게 확장된 도로로 옮겨갔다. 드디어 차도를 점거했다. 누군가는 불편할 터였지만 그들이 불편함을 깨닫는 것 자체가 이 집회의 목적이었다. 여성은 단지 성별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평생 불편함을 겪어왔으니 말이다. 20세기 초, 영국의 여성참정권운동을 다룬 영화 <서프러제트>에 이런 대사가 있다. "우리는 창문을 깨고 불을 질러요. 남자들이 들어주는 유일한 언어가 전쟁이니까요." 여성에게도 투표할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던 이들이 길거리의 창문을 무차별적으로 깨고 집에 불을 지르자 그제야 듣기 시작한다. 남성이 인식하는 방식, 미러링을 통해 여성은 스스로 가시적인 존재가 되기를 택한 것이다. 그렇게 오랜 투쟁 끝에 그들은 참정권을 얻는다. <서프러제트>는 권리를 얻기 위해 투쟁하는 여성들의 연대를 다룬 영화다. - P250
졸업 연구 주제는 ‘몸짓과 움직임을 통한 역사 다시 쓰기―우리의 몸의 침묵과 기억 읽기‘로 잡았다. 실험이 중심이었던 3학기와 개념화에 집중했던 4학기를 통해 연구 주제를 명확하게 잡을 수 있었다. 초기 연구 주제 ‘여성의 기억은 남성 · 국가의 기억과 어떻게 다른가‘라는 추상적인 질문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헤맸는데 2학기에 제작한 영상 <국민체조 및 국기에 대한 경례>가 전환점이 되었다. 내가 말하는 여성의 기억은 ‘몸의 기억‘이고, 몸에 새겨진 기억을 파고들기 위해서는 가장 가까운 몸, 내 몸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의 몸은 국민체조와 국기에 대한 경례, 학교에서 배운 깜지 쓰기, 국가 및 사회가 요구하 - P266
는 (여성의) 몸이 되기 위한 동작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 동작들은 모두 국가, 사회로부터 훈련되고 주입된 것이었으며 한국과 멀리 떠어진 이곳에서 몸이 기억하는 동작들을 통해 그 기억이 무엇인지, 그사이에 숨겨진 침묵의 기억은 어떤 것인지 영화를 통해 살펴보는 것이 내가 프로젝트를 통해 하고 싶은 연구였다. 연구 주제를 잡은 후 학기마다 짧은 영상을 제작했다. 네덜란드의 큰 공원에 테이블과 의자 하나를 가져다 두고 긴 롤페이퍼에 깜지를 썼다. 캄캄해져 주변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종이를 작은 글씨로 채웠다. 한 시간 정도 촬영했는데 실제 물리적 시간을 보여주고 싶어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상영했다. 깜지 쓰기는 실제로 내가 좋아했던 공부 방법이기도 했는데 네덜란드의 공원 한복판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롤페이퍼에 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무엇보다 내몸은 정확하게 그 동작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주 작은 글씨로 오랜 시간 종이 채우기. 읽고 쓰기를 장시간 반복하는 학습법그후 내가 한국에서 습득한 몸의 동작들을 돌아보았다. 늘 주변을 신경쓸 것, 겉모습을 단정히 할 것, 다리를 벌리지 않고 앉을 것, 남들과 끊임없이 비교할 것, 화장할 것, 치마를 입을 것, 긴 머리 스타일을 고수할 것, 성별에 맞게 행동할 것. 이른바 정상성의 몸 되기. 내 몸이 체화하고 있는 동작들은 결국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는 몸이 되기를 요구하는 것이었고 나 혹은 우리의 몸은 그걸 - P267
지속하며 이 시스템을 지탱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묻어야만 했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그건 여성의 몸에 대한 질문이었고, 재생산권에 대한 논의와 연결되었다. 나는 나와 엄마, 할머니의 임신중지 경험을 소재로 영화를 통해 우리 몸의 기억을 드러내기로 했다. 작업은 쉽지 않았다. 마지막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촬영을 하러 한국에 갔다. 스튜디오에 엄마와 할머니를 불러 인터뷰를 했다. 꼭 하고 싶은 작업이었지만 동시에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작업이었다. 감독으로서 꼭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딸이자 손녀로서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엄마와 할머니에게 몸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그들의 임신중지 경험에 대해 물었다. 할머니는 "박정희 정권 때는 실제로 인구 조절을 하기 위해 낙태 수술이 빈번하게 이루어졌고 당시에는 쉬쉬하지 않고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고 했지만 엄마는 말하고 싶지 않다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나는 그럼에도 이야기해야 한다고 엄마를 설득했지만 사실 그러고 싶지 않기도 했다. 나는 나의 임신중지 경험을 공유했다. 할머니는 놀랐고 엄마는 듣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는 질문했다.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태어난 여성들이고 나는 엄마의 몸으로부터, 할머니의 몸으로부터 나왔는데 왜 우리는 각자의 임신중지 경험을 공유할 수 없는지, 여태껏 발화되지 않고 몸 어딘가에 묻어둔 기억들은 이상적인 몸을 갖추기를 요구하는 국가 ·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나는 인터뷰 영상 - P268
과 국민체조, 국기에 대한 경례, 이상적인 여성의 신체상을 주입했던 아카이브 영상들과 섞어 편집했다. 마지막 프로젝트의 제목은 ‘우리의 몸‘이었다.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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