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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삶 - 배우고 익히는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지식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지음, 이재만 옮김 / 유유 / 2013년 2월
평점 :
나는 내가 읽은 책들이 저마다의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책들은 다 읽은 후에도 책장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손 닿는 곳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펼쳐보게 된다. 그런 책들이 나에게는 인생책이라고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Antonin-Gilbert Sertillanges, 1863~1948)가 쓴 ‘공부하는 삶(The Intellectual Life, 이재만 옮김, 유유 출판사)‘이다. 책 날개에 써있는, 작가를 소개하는 가장 첫 문장은 ‘세상에서 공부를 가장 좋아한 사람‘이다. 얼마나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으면 저런 설명이 달릴 수 있었을까?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를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이해가 가고 저절로 수긍하게 된다.
그는 진심으로 공부하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공부를 소명이라 여겼다. 그는 ‘소명은 요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고, 우리의 제1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요컨대 소명을 들었다면 신과 우리 자신에게 순종해야 한다.(p.27)‘라고 말한다.
그 말은 공부를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순종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부르심에 대한 자연스러운 응답이다. 그는 평생을 신학자이자 철학자로 살며, 지성인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지성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부르심을 받으며, 그 길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메시지는 결국 모든 사람을 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지적 소명을 탐구하는 사람을 ‘빛을 운반하는 사람‘이라고 지칭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당신이 빛을 운반하는 사람으로 지명된다면, 신께서 당신이 운반하기를 기대하는 그 어슴푸레한 빛이나 불꽃을 감추면서 가지마라. 당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가 가져오는 삶의 열매를 사랑하라. 공부에, 그리고 공부를 유익하게 쓰는 데에 당신이 가진 시간과 마음 중에서 가장 좋은 부분을 바쳐라.(p.27)‘
이 얼마나 멋지고 진실된 말인가! 나는 이 부분을 읽다가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빛을 운반하는 사람( a light bearer)‘이라니! 나는 내가 빛을 운반하는 사람이라는 게 깨달아 졌다. 빛을 운반하는 사람은 단순히 빛을 들고 운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빛인 것이다. 예수님은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복음 5:14)‘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잘나서도 아니고, 뭔가를 열심히 해서도 아니다. 그저 그분을 믿었기에 세상의 빛이 되었고, 빛의 전달자가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빛인 동시에 빛의 전달자 이거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 될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부할 소명을 받았고, 공부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세르티양주는 공부를 해야만 한다고 말만 해놓고, 무책임하게 가만히 있지 않았다.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공부를 충실하게 하려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택해야 하는지, 체력과 먹는 음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떤 책을 공부하고, 누구를 본받아야 하는지를 이 책에 꼼꼼하게 써놓았다. 책을 읽다 보면 버릴 구절이 하나도 없다고 느끼게 된다. 그가 얼마나 공부에 몰입하고 실천하며 겪은 노하우인지 바로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우리 삶의 지적 참고서라고 생각한다.
그는 읽기의 첫째 원칙은 적게 읽는 것이라고 말한다. 허겁지겁 읽는 것, 자제하지 못하는 습관, 정신을 해치는 과도한 마음의 양식, 스스로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쉽고 익숙한 다른 이들의 사유에 안주하는 게으름을 금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나치게 읽는 정신은 양분을 공급 받기는커녕 오히려 둔해지며, 서서히 성찰하고 집중하는 힘을 잃어버려 결국에는 산출하지 못하게 된다고 주의를 준다.
또한, 배우겠다는 자세로 읽거나 들을 때에는 그 상황에 온전히 집중해야 하며, 소리를 지르듯이 들은 것을 되뇌고, 음절 하나하나를 똑똑히 발음하라고 말한다. 무언가를 기억에 고정시키길 원한다면 그것을 읽거나 듣자마자 정확하게 반복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라고 한다. 그것이 책이라면 내용을 요약하고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 때까지 주의를 돌리지 말라고 한다. 그는 읽기, 기억하기, 노트하기의 세 과제가 어떤 의미에서는 동일하다고 보며,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공부하는 삶을 살아가는 내내,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위해 글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는 공부를 좋아했던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게 좋아졌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공부는 소명이며, 소명은 선택이 아니라 순종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일을 순조롭게 충실히 해나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 책이 어떻게 고맙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책상에 고독하게 앉아 있는 당신의 마음에 신이 말을 건넬 때, 당신은 아이가 귀담아 듣는 것처럼 귀를 기울여야 하고, 아이가 말하는 것처럼 글을 써야 한다.(p.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