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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멜론 슈거에서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최승자 옮김 / 비채 / 2024년 5월
평점 :
모든 것이 수박 설탕으로 만들어진 세계, 그 안에서 삶과 죽음은 조용히 공존한다.
브라우티건의 ’워터 멜론 슈거에서(In Watermelon Sugar)‘는 단순한 문장과 반복적인 서술 속에서도, 과거와 현재, 파괴와 평화가 교차하는 몽환적 감각을 선사한다.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자신의 이름이 책을 읽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였는지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것 같기도 했다.
책의 제목만 보고 뭔가 달콤한 내용을 예상했던 것과 달리 나는 이 책의 난해함 속에서 헤매며 많은 생각을 했다.
‘잊혀진 작품(Forgotten Works)‘의 버려진 잔해와 아이디아뜨(i’DEATH)‘공동체의 고요한 삶을 오가며, 주인공과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과거를 붙잡고 허무와 파괴 속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단순하지만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고 조화로운 현재를 살아갈 것인가!
인보일(inBOIL)과 그의 일당들, 마거릿의 죽음에서 나는 기괴함과 서늘함마저 느꼈다.
그런 죽음을 감정 없이 바라보는 주인공의 모습이 아이디아뜨의 평화롭지만 기묘한 분위기와 비슷하다.
읽는 동안 나는, 달콤하지만 서늘한, 낯설고도 기묘한 세계를 헤매는 기분이었다.
그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나는 브라우티건의 문장을 직접 읽기로 마음 먹었다.
책을 덮고 나서도 여전히 그 세계의 그림자가 머릿속을 맴돈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그리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답을 쉽게 결정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이 소설은, 명확한 결론이 아니라 끝없는 질문만을 남기려는 것이 아닐까.
나는 iDEATH도, Forgotten Works도 끝내 택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머물며, 설령 나의 다른 세상 안에 산다고 해도 두 세계가 던지는 질문을 오랫 동안 붙들게 될 것 같다.
브라우티건은 화려한 수사 대신 간결한 언어로, 마음 깊은 곳에 울림을 주는 섬세한 서정을 남긴다.
책을 덮은 후에도 그의 문장은 오래도록 잔향처럼 남아,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 사이에서 우리가 걸어가는 삶을 더 깊이 바라보게 한다.




워터 멜론 슈거에서는 여러 가지 일이 다시, 또다시 행해졌다. 지금 내 삶이 워터멜론 슈거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처럼.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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