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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번역 일기
김정아 지음 / 샘터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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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고 성실하게 사는 삶은 어떤 것일까? 누구도 단 한 번뿐인 삶을 대충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 그 작가의 삶을 보며, 사람이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것에 정말 놀랐다. 나도 나름 부지런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사람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작가의 삶에 감탄하느라 그의 글이 얼마나 좋은지 미처 생각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 책은 바로 김정아 작가가 쓴 '도스토옙스키 번역일기'였다. 아주 오래 전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었다. 그 책을 읽고 받았던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지금도 그 작품은 나에게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그 일로 인해 도스토옙스키는 내가 읽고 싶은 작가가 되었지만, 생각처럼 그의 작품을 많이 읽지 못했다.


김정아 작가는 자신을 '도스토옙스키 전도사'라고 소개한다. 그는 도스토옙스키를 너무 사랑하기에 그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다. 무작정 좋아해서 알리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수없이 읽고, 공부하고, 정확하게 전하려고 한다. 이 작가를 우연히 유튜브의 한 동영상에서 보게 되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분이 번역한 도스토옙스키를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슬라브어를 전공한 박사이자 번역가이다. 그는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나 도스토옙스키의 4대 장편(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번역하였다. 그가 먼저 번역했던 도스토옙스키를 읽은 지만지 출판사 사장님의 끈질긴 권유로 시작하게 된 일이었다. 하지만 그 길은 너무도 어렵고 험난했다. 도스토옙스키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감당하기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고, 몸이 상하고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번역을 계속해야 했다. 그 모든 어려움을 견디며 끝까지 해낸 그의 책임감과 성실함으로 인해 오늘 이 작품들이 우리에게 다다랐다.


그는 번역을 하게된 동기, 그 고통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끝까지 해낸 과정, 우리가 미처 읽어내지 못한 도스토옙스키의 생각과 마음을 이 책을 통해 들려준다. 그 이야기 자체가 내게는 정말 큰 감동이었다. 도스토옙스키 뿐만 아니라 김정아 작가를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의 성실함이 이토록 감동이 되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이분의 번역으로 '죄와 벌'을 읽고 있다. 먼저 '악령'을 읽고 있었는데 번역가가 권하는 순서를 따르기 위해 악령을 잠시 덮어두고 죄와 벌을 읽기 시작했다. 얼마나 흥미롭게 읽고 있는지 모른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을 때보다 조금은 가벼운? 느낌이 든다. 4대 장편을 순서대로 읽을 계획이다. 도스토옙스키를 읽을 계획이라면 김정아 작가의 번역일기를 먼저 읽고 그의 번역으로 읽어보기를 권한다. 


내가 책을 읽을 때 가장 감사한 것 중 하나는 성경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면 어려운 것 중 하나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이 둘을 알고 있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책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김정아 박사는 도스토옙스키를 올바로 이해하고 번역하기 위하여 실제로 오랫동안 성경 공부를 배우러 다녔다고 한다(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당시에 그가 교인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한가지만 봐도 그가 얼마나 정직하고 성실하며, 도스토옙스키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 이런 번역가가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자랑스럽다. 


그의 수고와 헌신 덕분에 나는 오늘도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을 깊고, 정확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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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 삶과 문학, 읽고 쓰기에 관한 네 번의 강의
제임스 우드 지음, 노지양 옮김, 신형철 해제 / 아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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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다시 살아나는 읽기‘에 대하여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을 읽으며 나는 몇 번이고 멈춰 서서 그가 말하는 책들을 찾아보았다.

그는 흔히 말하는 문학 비평가이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그가 누군가의 작품을 평가하는 자리에 앉아 있는 느낌은 없었다. 그는 작품을 향유한 사람으로서, 한 작품이 독자를 통해 어떻게 다시 태어나는지를 이야기하려는 듯 보였다.

James Wood는 말한다.
“리뷰는 어떤 작품이 향유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효율적으로 판단해 주는 일이지만, 비평은 뛰어난 안목과 기예를 가진 이가 특정한 작품을 ‘일단 향유하기 시작하면’ 작품이 어떻게 거듭나는지를 보여주는 일이다.”(p.21)

이 문장을 읽고 나서, 나는 이 책이 무엇을 말하려는 책인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우드의 비평은 작품 위에 서서 내려다보는 말이 아니라, 이미 그 작품 안으로 들어가 머문 사람이 남기는 독서의 흔적에 가깝다. 그는 작품을 요약하거나 판결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지, 어디에서 멈추었는지, 어떤 문장이 그의 시선을 붙잡았는지를 차분하게 풀어놓는다.

그래서 이 책은 ‘어떤 작품을 읽어야 하는가’를 알려주기보다, 우리가 작품을 어떻게 읽을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한 작품의 내부로 초대받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이미 읽었다고 생각했던 작품이 전혀 다른 얼굴로 다시 말을 걸어오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 책이 독자에게는 새로운 발견의 기회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시에, 만약 내가 작가라면 — 내 작품이 이런 방식으로 읽힌다면 — 그것은 비평이 아니라 하나의 깊은 이해이자,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은 인정일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은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라기보다, 한 작품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오래 머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작품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독자는 조금 더 느리게 읽고 싶어지고, 조금 더 오랜 시간 한 문장 곁에 머물고 싶어진다.

어쩌면 비평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작품을 평가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작품을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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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제172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스즈키 유이 지음, 이지수 옮김 / 리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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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Die Liebe verwirrt nicht alles, sondern vermischt es."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이런 소재를 이렇게 재미있게 쓸 수 있다니 정말 놀라웠다.
표면적으로는 갈등도 크지 않고 사건도 요란하지 않지만, 인물 간 대사와 미묘한 시선의 차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이러니가 읽는 재미를 만든다.
작가는 종종 설명을 생략한 채 상황을 보여주는데, 그 여백이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뒤로 갈수록 하나씩 맞물리듯 모여드는 사건들은 이 소설이 얼마나 단단한 플롯을 지니고 있는지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다.

무엇보다, 괴테라는 이름만으로도 내게는 궁금한 소설이었다.
그 이름이 한 권의 이야기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등장하고, 어떻게 변주되는지를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번역자가 “이 책을 여섯 번 통독했고,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가 보였다”고 쓴 문장을 보고, 나는 책장을 덮은 다음 날 바로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롤로그를 펼치는 순간, 처음 읽었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재미와 감각들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읽기에서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은, 이 소설이 단순히 ‘괴테의 말’을 둘러싼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인용을 소비하고, 권위를 오해하고, ‘괴테가 말했다’는 말 한 줄에 얼마나 쉽게 기대어 버리는지를 섬세하게 드러낸 다.

작가는 독자가 스스로 그 빈칸을 채우도록 유도하며, 말과 진실, 오해와 해석이 교차하는 지점을 끝까지 밀도 있게 따라가게 만든다.
읽고 나면 자연스레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괴테의 말’을, 혹은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믿고 살아왔을까?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제목은 그래서 역설적이다.
정작 이 소설이 말하고 싶은 것은, 괴테가 무엇을 말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듣고, 어떻게 자기 방식으로 해석해 버리는가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조용하고 절제된 문장 속에서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이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한 번 읽고 나서 다시 펼치게 되는 힘을 가진 소설.
읽을수록 새로운 결이 드러나는 소설.

그렇기에 번역자가 여섯 번이나 읽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두 번째 읽기에서 나 역시 실감할 수 있었다.
멀지 않은 어느 날 다시 이 책을 펼치게 된다면, 그때는 또 어떤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될지 기대해본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에도 잔잔한 즐거움이 오래도록 마음속에서 진동하는 작품이었다.

📖 “지난번 꽃 정말 고마웠습니다. 다소 특이한 모양이지만 향기는 분명 장미와 비슷 하니 참 신기했습니다. 친구에게 보여주자 이런 것도 꽃이냐며 놀라더군요. 하지만 실로 조물주의 사랑은 하나의 꽃에서 모든 꽃을 싹트게 했습니다. 그걸 알면 우리 인간도 언젠가는 혼란 없이 뒤섞이리라 믿을 수 있습니다.” -괴테- (P.216)


🤔💬 이 편지를 정말 괴테가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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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삶 - 배우고 익히는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지식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 지음, 이재만 옮김 / 유유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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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읽은 책들이 저마다의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책들은 다 읽은 후에도 책장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손 닿는 곳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펼쳐보게 된다. 그런 책들이 나에게는 인생책이라고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Antonin-Gilbert Sertillanges, 1863~1948)가 쓴 ‘공부하는 삶(The Intellectual Life, 이재만 옮김, 유유 출판사)‘이다. 책 날개에 써있는, 작가를 소개하는 가장 첫 문장은 ‘세상에서 공부를 가장 좋아한 사람‘이다. 얼마나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으면 저런 설명이 달릴 수 있었을까?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를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이해가 가고 저절로 수긍하게 된다.

그는 진심으로 공부하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공부를 소명이라 여겼다. 그는 ‘소명은 요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고, 우리의 제1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요컨대 소명을 들었다면 신과 우리 자신에게 순종해야 한다.(p.27)‘라고 말한다.

그 말은 공부를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순종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부르심에 대한 자연스러운 응답이다. 그는 평생을 신학자이자 철학자로 살며, 지성인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지성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부르심을 받으며, 그 길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메시지는 결국 모든 사람을 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지적 소명을 탐구하는 사람을 ‘빛을 운반하는 사람‘이라고 지칭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당신이 빛을 운반하는 사람으로 지명된다면, 신께서 당신이 운반하기를 기대하는 그 어슴푸레한 빛이나 불꽃을 감추면서 가지마라. 당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가 가져오는 삶의 열매를 사랑하라. 공부에, 그리고 공부를 유익하게 쓰는 데에 당신이 가진 시간과 마음 중에서 가장 좋은 부분을 바쳐라.(p.27)‘

이 얼마나 멋지고 진실된 말인가! 나는 이 부분을 읽다가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빛을 운반하는 사람( a light bearer)‘이라니! 나는 내가 빛을 운반하는 사람이라는 게 깨달아 졌다. 빛을 운반하는 사람은 단순히 빛을 들고 운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빛인 것이다. 예수님은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복음 5:14)‘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잘나서도 아니고, 뭔가를 열심히 해서도 아니다. 그저 그분을 믿었기에 세상의 빛이 되었고, 빛의 전달자가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빛인 동시에 빛의 전달자 이거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 될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부할 소명을 받았고, 공부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세르티양주는 공부를 해야만 한다고 말만 해놓고, 무책임하게 가만히 있지 않았다.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공부를 충실하게 하려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택해야 하는지, 체력과 먹는 음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떤 책을 공부하고, 누구를 본받아야 하는지를 이 책에 꼼꼼하게 써놓았다. 책을 읽다 보면 버릴 구절이 하나도 없다고 느끼게 된다. 그가 얼마나 공부에 몰입하고 실천하며 겪은 노하우인지 바로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우리 삶의 지적 참고서라고 생각한다.

그는 읽기의 첫째 원칙은 적게 읽는 것이라고 말한다. 허겁지겁 읽는 것, 자제하지 못하는 습관, 정신을 해치는 과도한 마음의 양식, 스스로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쉽고 익숙한 다른 이들의 사유에 안주하는 게으름을 금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나치게 읽는 정신은 양분을 공급 받기는커녕 오히려 둔해지며, 서서히 성찰하고 집중하는 힘을 잃어버려 결국에는 산출하지 못하게 된다고 주의를 준다.

또한, 배우겠다는 자세로 읽거나 들을 때에는 그 상황에 온전히 집중해야 하며, 소리를 지르듯이 들은 것을 되뇌고, 음절 하나하나를 똑똑히 발음하라고 말한다. 무언가를 기억에 고정시키길 원한다면 그것을 읽거나 듣자마자 정확하게 반복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라고 한다. 그것이 책이라면 내용을 요약하고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 때까지 주의를 돌리지 말라고 한다. 그는 읽기, 기억하기, 노트하기의 세 과제가 어떤 의미에서는 동일하다고 보며,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공부하는 삶을 살아가는 내내,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위해 글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는 공부를 좋아했던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게 좋아졌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공부는 소명이며, 소명은 선택이 아니라 순종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일을 순조롭게 충실히 해나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 책이 어떻게 고맙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책상에 고독하게 앉아 있는 당신의 마음에 신이 말을 건넬 때, 당신은 아이가 귀담아 듣는 것처럼 귀를 기울여야 하고, 아이가 말하는 것처럼 글을 써야 한다.(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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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멜론 슈거에서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최승자 옮김 / 비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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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수박 설탕으로 만들어진 세계, 그 안에서 삶과 죽음은 조용히 공존한다.

브라우티건의 ’워터 멜론 슈거에서(In Watermelon Sugar)‘는 단순한 문장과 반복적인 서술 속에서도, 과거와 현재, 파괴와 평화가 교차하는 몽환적 감각을 선사한다.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자신의 이름이 책을 읽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였는지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것 같기도 했다.
책의 제목만 보고 뭔가 달콤한 내용을 예상했던 것과 달리 나는 이 책의 난해함 속에서 헤매며 많은 생각을 했다.

‘잊혀진 작품(Forgotten Works)‘의 버려진 잔해와 아이디아뜨(i’DEATH)‘공동체의 고요한 삶을 오가며, 주인공과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과거를 붙잡고 허무와 파괴 속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단순하지만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고 조화로운 현재를 살아갈 것인가!

인보일(inBOIL)과 그의 일당들, 마거릿의 죽음에서 나는 기괴함과 서늘함마저 느꼈다.
그런 죽음을 감정 없이 바라보는 주인공의 모습이 아이디아뜨의 평화롭지만 기묘한 분위기와 비슷하다.

읽는 동안 나는, 달콤하지만 서늘한, 낯설고도 기묘한 세계를 헤매는 기분이었다. 

그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나는 브라우티건의 문장을 직접 읽기로 마음 먹었다.

책을 덮고 나서도 여전히 그 세계의 그림자가 머릿속을 맴돈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그리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답을 쉽게 결정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이 소설은, 명확한 결론이 아니라 끝없는 질문만을 남기려는 것이 아닐까.

나는 iDEATH도, Forgotten Works도 끝내 택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머물며, 설령 나의 다른 세상 안에 산다고 해도 두 세계가 던지는 질문을 오랫 동안 붙들게 될 것 같다.

브라우티건은 화려한 수사 대신 간결한 언어로, 마음 깊은 곳에 울림을 주는 섬세한 서정을 남긴다. 

책을 덮은 후에도 그의 문장은 오래도록 잔향처럼 남아, 과거와 현재, 삶과 죽음 사이에서 우리가 걸어가는 삶을 더 깊이 바라보게 한다.




워터 멜론 슈거에서는 여러 가지 일이 다시, 또다시 행해졌다. 지금 내 삶이 워터멜론 슈거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처럼.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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