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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의 눈으로 보면 과학 고전이 더 재밌어진다 - 어려운 과학 개념부터 뜻밖의 뒷이야기까지, 술술 읽히는 과학 고전 가이드 ㅣ 지식의 눈 4
박균호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6년 9월
평점 :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문과일까, 이과일까. 책을 펼치자마자 답이 나왔다. 이 책이 다룬 과학 고전 스물일곱 권 가운데 내가 읽은 책은 한 권도 없었다. 서점에서도 과학 코너는 늘 지나치는 곳이었다.
고3 아이의 비문학 지문을 들여다보면 '세상에' 소리가 절로 나온다. 철학, 경제, 법, 과학, 기술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한 지문 안에서 처음 보는 개념을 이해하고, 그 개념이 어떻게 작동하는지까지 따라가야 한다. 과학 지문은 특히 그렇다. 문장은 읽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려지지 않는다. 저자가 30년 동안 교실에서 본 모습도 이것이었다. 아이들이 막히는 건 낱말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머릿속에 장면이 떠오르지 않아서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문과 출신 쌤이 풀어 주는 이 책은 멀고 어렵게 느껴졌던 과학에 대한 좋은 입문서가 될 것 같았다. 책은 수식 대신 장면을, 공식 대신 일화를 앞세운다. 지구 둘레를 잰 원리는 오렌지와 이쑤시개로 풀고, F=ma는 빈 페트병과 물 찬 페트병으로 설명한다. DNA 이중나선은 김밥이다. 겉의 김과 밥이 모양을 잡고 안쪽에 속재료가 줄지어 들어가듯, DNA도 바깥 뼈대가 모양을 받치고 안쪽 염기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맞물려야 안정된다. 속재료를 아무렇게나 넣으면 김밥이 울퉁불퉁해진다는 설명은 귀여운 비유에 그치지 않는다. 이중나선의 굵기가 일정한 이유를 정확히 짚는다.
과학자도 사람으로 등장한다. 다윈은 딱정벌레를 입에 문 소년이고, 마취 없는 수술을 견디지 못해 의학 공부를 그만둔 청년이다. 코페르니쿠스는 낮에는 교회 일을 하고 밤에는 별을 보았다. 저자는 이들이 망설이고 실패한 과정을 알면 과학 이론이 외워야 할 정답으로만 남지 않는다고 말한다. 장마다 끝에는 생각할 질문 두 개와 함께 읽을 책 세 권이 붙는다. 코페르니쿠스부터 해러웨이까지 460년, 스물일곱 권이 이렇게 이어진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대목을 읽고는 신기해서 아이와 시공간이 휜다는 이야기를 잠깐 나누기도 했다. 장면이 떠오르니 말로 옮길 수 있었다. 저자가 노린 것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책이 전하는 것은 지식만이 아니다. 이중나선 장에서 저자는 이 발견을 두 천재의 승리로만 정리하면 사진을 만들고 수치를 계산한 연구자들의 시간이 사라진다고 쓴다. 정답을 발표한 사람뿐 아니라 단서를 만든 사람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다. <프린키피아> 장에서는 뉴턴이 중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수학으로 밝혔지만, 왜 생기는지는 끝내 알지 못했다고 쓴다. 뉴턴은 모르는 원인을 그럴듯한 이야기로 채우지 않았다. "나는 가설을 꾸며 내지 않는다"(125p). 누가 찾아냈는가. 무엇을 알았고 무엇을 몰랐는가. 과학 고전을 읽는다는 건 이런 질문을 함께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간다. 과학책을 즐겨 읽지 않으니 나는 문과 쪽에 가깝다. 그런데 과학 코너를 지나친 건 문과여서가 아니었다. 어디서부터 들어가야 할지 몰랐을 뿐이다. 이 책은 그 입구를 보여 준다. 다음에 서점에 가면 과학 코너 앞에서 한 번은 멈춰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