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책
후안 비요로 지음, 보탬 옮김 / 열림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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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후안은 성 한가운데 있다. 통로 끝에서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는 무장한 군인이다. 그녀를 구하러 간다. 다다른 곳은 진홍빛 방. 벽에 손을 댄다. 피가 흐른다. 아이는 꿈에서 깬다.


수백만 권의 책이 꽂혀 있는 서가. 내 기억 속에도 그런 서가가 있다. 지금은 문을 닫고 없는 반포의 반디앤루니스. 후안이 느낀 무력함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몰려오던 그 무렵, 나 역시 그랬다. 고속터미널 꽃시장을 지날 때면 손끝으로 꽃을 스치고, 그 길로 서점에 들어섰다. 부드럽고 은은한 조명, 갈색 책장마다 높이 꽂혀 있던 책들. 층층의 계단에 앉아 마음껏 읽고 구경할 수 있던 그곳은 나의 은신처였다.


그 공간을 가득 메우던 책 냄새, 그곳은 마치 어머니의 자궁처럼 안전하고 편안한 곳이었다. 주인공 후안이 '야생의 책'을 찾아 모험을 떠나듯, 나도 나의 질문들의 답을 찾아 매일 그곳으로 향했다.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처음 집어 든 책은 '에티카'였다. 스피노자의 그 수많은 명제들. 그것은 알 수 없는 암호 같았고, 한 자 한 자 해독하는 것은 어둠 속을 더듬으며 길을 찾아가는 일과 같았다. 이해하고 싶은데, 읽고 싶은데 알 수 없는 그 문장들은 손에 땀이 나게 했다. 한 페이지를 읽는 데 한 시간 정도를 들이고 나면 남는 건 허무와 무력감이었다. 신기한 것은, 후안이 '야생의 책'을 찾아 몇 주간 모험을 떠나듯, 나 역시 매일 책장을 펼칠 때 알 수 없는 설렘이 있었다는 것이다.


후안은 부모의 별거와 이사 문제로 방학 동안 삼촌 집에 맡겨진다. 그곳에는 수백만 권의 책이 꽂힌 도서관이 있다. 띠또 삼촌은 후안에게 '야생의 책'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것을 찾아주기를 바란다.


"그 책이 그분들에게서 도망쳐 버렸대. 반항아 같은 책이지. 길들일 수 있는 누군가에게만 읽을 수 있게 허락할 거래. 기수에게 길들여지는 야생마처럼 말이야."


나도 그 책을 길들이고 싶었다. 온전히 이해하고 싶었으니까. '아, 이 책은 이거였어!' 하고 닫아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내 속에 지식들을 차곡차곡 쌓아두고 싶었다. 당시에 느끼는 결핍을, 책에서조차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대상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붙들었음에도 그 결핍은 채워지지 않았다. 다만 모험을 떠난 후안처럼, 나에게 길들이기를 거부하는 책을 찾아 헤매던 그 시간들은 남아 있다. 일 년에 걸쳐 세 번을 읽었지만, 몇몇 챕터는 끝내 열지 못했다. 책이 거울처럼 나를 들여다보는 그 시간 속에서, 나도 나를 바라보았다.


책 속에 이런 문장이 있다.

" '야생의 책'은 현재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지극히 희귀한 존재이지. 아직 읽은 사람이 없잖아. 그리고 이제 곧 짠 하고 나타날 책이거든. 그 책이 독자를 찾으면 내용을 스스로 쓸 거라고. '야생의 책'에 필요한 게 바로 이런 독자야. 현재를 살고, 오래전에 일어난 일들을 현재의 시점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람, 다시 말해 진정한 독자."


십 년 전 그 서점에서 조급했던 나의 모습이 보인다. 그때 길들이지 못한 '에티카'가 지금 이 책을 통해 나를 다시 들여다보는 것 같다. 다른 점은 그때보다는 조금 여유가 생겼다는 것. 그리고 그 책 말고도 여러 권의 철학서를 그렇게 만나기를 수없이 반복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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