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밤 을유세계문학전집 148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솔직한 서평입니다.

"여기에 집이랑 사람 나무 자유롭게 그려봐."


대학원에서 미술심리를 공부하던 지인이 하얀 종이를 내민다. 나는 기꺼이 피실험자가 되기로 했다. 손이 가는 대로 쓱쓱 그렸다. 집, 나무, 사람 그리고 새 한 마리. 하늘 한가운데를 날아가는. 『전날 밤』을 읽다가 나는 그 새를 다시 떠올렸다. 지인이 그림을 보더니 말했다. 새는 날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 말을. 무엇을 향해 날고자 하는 마음이었을까.


"나는 무엇을 원하는 걸까? 내 마음이 왜 이토록 무겁고 괴로울까? 왜 날아다니는 새들을 선망의 눈으로 바라볼까? 새들과 함께 날고 싶다. 어디로 날아갈지는 모르지만, 다만 멀리, 여기서 멀리멀리 날아가고 싶다." (p128)


투르게네프가 이 소설을 발표한 1860년은 러시아 역사에서 중요한 변곡점이다. 작품이 발표된 바로 다음 해에 농노해방령이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러시아는 크림전쟁의 패배 이후 서구 열강에 대한 열등감과 변혁에 대한 열망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지식인들은 러시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두고 격렬히 논쟁했지만, 정작 무언가를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인간은 드물었다. 열망은 뜨거웠으나 실천은 공허했다. 엘레나의 목마름은 그 시대의 목마름이었다.


그러나 러시아 역사를 찾아보기 전까지, 나는 중반까지도 그런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엔 그저 청춘들의 연애소설로 읽혔다. 아름답고 총명하며 약한 존재에게 연민의 마음을 품는 엘레나.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예술가 슈빈, 지적이고 성실한 학생 베르세네프, 그리고 조국 불가리아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는 강인한 인사로프.


삼각관계인 슈빈, 베르세네프, 엘레나는 인사로프의 등장으로 정리된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논쟁에 빠지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들에게는 '말'이 중요했다. 관념과 언어 속에서 겉도는 말들만이 그들 사이를 채웠다. 그러나 인사로프는 달랐다. 그는 말하지 않았다. 다만 행동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지 뚜렷이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주어진 환경과 시간 속에서 그저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살아내는 자. 확고한 이상을 가진 인간은 굳이 그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의 과묵함이 오히려 엘레나를 끌어당겼다.


그녀는 귀족의 안락함과 미래를 버리고 인사로프와 함께 그의 과업을 이루려 러시아를 떠난다. 이 대목에서 그녀의 선택이 용감해 보이기도 했지만, 마음 한켠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자신의 이상을 찾기보다는 타인의 중력에 이끌려, 그가 내는 빛을 반사하는 반사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의 후반, 인사로프가 병으로 쓰러지고 죽음을 앞두었을 때, 무언가가 변한다.


"사랑하는 부모님, 영원히 작별을 고합니다. 저를 다시는 보지 못하실 거예요. 어제 드미트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로서는 모든 게 끝났습니다. …… 이미 저에겐 D의 조국 외에 다른 조국은 없습니다. …… D가 죽은 후에도 저는 그의 기억과 그가 평생 추구한 대의에 충실할 겁니다. …… 저는 행복을 찾았고, 아마 죽음도 찾을 겁니다." (p271)


엘레나는 그의 옛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의 과업을 이어받기로 한다. 그 결심의 순간, 그녀는 더 이상 반사체가 아니다. 타인의 이상에 기대어 형태를 찾던 여성이, 그 이상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스스로 빛을 내는 주체로 변모한다. 투르게네프는 이 각성을 소란스럽지 않게 그려낸다. 엘레나는 선언하지 않는다. 다만, 남는다. 불가리아로 향하는 배를 타고 그녀는 조용히 그 다음 날을 향해 나아간다.


러시아가 아닌 끝내 사랑하는 이의 땅으로 건너가 이방인이 되기로 한 그녀. 소설 초반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방향성 없음에 괴로워하던 그녀는 결국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그 길이 죽음의 길이라 할지라도.


소설의 제목 '전날 밤'은 무엇의 전날일까. 러시아의 시대적 상황으로 보면 변혁의 전야이고, 개인에게 있어서는 삶의 방향을 선택하기 직전의 밤이다. 투르게네프는 인사로프라는 인물을 통해 강인한 행동력을 삶으로 증명하는 인간의 초상을 그려낸다. 그러나 내가 인사로프라는 인물에게서 부러운 것은 단 하나였다. 그의 확고한 목적과 이상. 행동은 그 다음의 일이다.


신과 별들이 죽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절대적 가치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 살까'라는 질문보다 '어떻게 하면 이 시스템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을까'라는 질문이 먼저다. 누구도 누구에게 강요할 수 없다. 다만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살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 그것이 바로 삶의 방향이 아닐까. 우리는 세상의 시스템이 잘 돌아가게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세상을 좀 더 ‘의미 있게’ 만들 수도 있는 존재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무엇을 위해. 창 밖에 보슬비가 내린다. 마당 위로 박새 한 쌍이 비를 맞으며 날아간다.

- 오마이 뉴스 '책동네'에도 서평이 게재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