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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세상에서 까마귀가 사라진다면
마쓰바라 하지메 지음, 정한뉘 옮김 / 나무의마음 / 2026년 3월
평점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도시에 살 때 까마귀는 보기 힘든 새였다. 몇 년 전 전원주택으로 보금자리를 옮기고 나서야 비로소 까마귀를 가까이서 만날 수 있었다. 정해진 날 집 앞 벚나무 아래에 쓰레기를 내놓으면 수거해 가는데, 문제는 그사이에 까마귀가 귀신같이 알고 날아와 봉투를 헤집어 놓는다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를 새 봉투에 다시 담으며 까마귀를 원망하기도 했다.
시골 길을 운전하다 보면 종종 마주치는 장면이 있다. 도로 한가운데 까마귀들이 모여 로드킬 당한 사체를 쪼아 먹고 있는 모습이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같은 장르에서 왜 까마귀를 죽음의 전조나 불길함의 상징으로 그토록 자주 소환하는지 비로소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까마귀 덕후' 마쓰바라 교수는 이처럼 미움과 혐오의 대상인 까마귀를 위해 여러 권의 책을 펴냈지만, 세간의 인식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방향을 바꿨다. '그렇게 싫다면 차라리 없애보자'는 생각으로 『만약 세상에서 까마귀가 사라진다면』을 집필한 것이다.
까마귀가 없는 세상을 채울 새는 어떤 새일까. 콘도르, 솔개, 카라카라, 찌르레기, 바다직박구리… 수많은 후보가 등장하지만, 까마귀의 빈자리를 온전히 메울 수 있는 새는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청소동물로서의 역할, 종자를 퍼뜨리는 역할, 수역과 육역을 잇는 물질 순환까지. 까마귀는 그 하나가 빠지면 전체가 흔들리는 생태계의 '키스톤'이었다. 미워하고 쫓아내고 싶었던 그 새가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그 존재의 무게를 가늠하게 된다.
나는 이사 온 지 몇 주 만에 까마귀와의 신경전을 포기했다. 번거롭더라도 쓰레기 수거장에 직접 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 뒤로 나에게 까마귀는 해조도 익조도 아닌 그저 '까마귀'가 되었다. 산책을 하다 마주치는 까마귀를 관찰하다 보니 의외로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가끔은 전깃줄 위에 앉은 까마귀 소리를 흉내 내 보기도 한다. 까마귀가 '악악' 울면 나도 '악악' 하고 받아친다. 녀석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아래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날아가 버린다. 올블랙에 덩치도 크지만 보기보다 까마귀는 겁이 많다. 동네 깡패 까치에게 밀려 도망 다니는 장면도 여러 차례 목격했다. 물론 번식기에 예민해지는 것만 조심한다면 꽤 흥미로운 이웃이다.
그렇게 전깃줄 위의 까마귀와 실없는 대화를 시도하고 편견 없이 관찰하다 보니, 마쓰바라 교수가 왜 그토록 까마귀를 사랑하는 '덕후'가 되었는지 알 것도 같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좋고 싫음, 선과 악이라는 편견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제대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