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하기, 소유되기
율라 비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찹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올해 우리 집에 상전이 한 분 생겼다. 무려 ‘고3 수험생’이다. 내내 방문을 닫고 있으니 정확히 무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코피 터지게 열공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아이의 눈밑엔 벌써 다크서클이 훈장처럼 내려앉았다. 나의 눈빛은 의심과 불안 속에 흔들린다.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진로 상담지를 앞에 두고 내뱉은 한마디는 꽤 낭만적이었다. “엄마, 나 작가 해볼까?”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선 ‘자본주의적 회계 시스템’이 자동으로 가동됐다. 작가라는 근사한 단어 뒤로 낮은 등단 확률과 빠듯한 인세 같은 현실적인 계산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 것이다. 결국 고민 끝에 에둘러 내뱉은 말은 이랬다. “음... 진로 두 개는 마련해야겠는데?”


이런 나의 '회계적 본능'은 저자 율라 비스가 페인트 한 통을 고르며 하는 고민과 꼭 닮아 있었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구입할 형편이 되지 않는 가격의 페인트 브랜드를 발견한 참이다. 물론 사려면 살 수도 있다. 나와 같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페인트 같은 물건을 어떻게든 구입한다는 것은 보통 경제적 능력이 아니라 가치를 선언하는 일이다."


비싼 페인트를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선언하려는 그녀의 욕망이나, 아이의 꿈에 안정성이라는 안전장치를 달아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길 바라는 나의 염려나, 결국 그 뿌리는 같았다. 이 책 《소유하기, 소유되기》는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린다. 우리는 무언가를 소유함으로써 자신을 드러내고, 동시에 사회에서 더 잘 팔리는 가치 있어 보이는 '상품'이 되기를 소망한다는 사실 말이다. 페인트 한 통으로 자신의 품격을 증명하려는 저자나, 아이의 꿈조차 '유용함'으로 계산해버리는 나나, 결국 자본주의라는 거대 시스템에 무의식까지 저당 잡혀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자크 라캉은 우리의 무의식이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 말대로라면 현대인의 무의식은 이미 자본주의라는 문법으로 빼곡하게 짜여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이의 낭만적인 고백 앞에서 ‘작가’라는 행위 대신 ‘인세’라는 숫자를 먼저 떠올린 것도 그 때문이다. 내 무의식의 언어가 효율과 유용이라는 문법에 깊이 길들여졌다는 서글픈 증거였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이것이었다. 기차역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그녀에게, 건축학을 전공하고 운전대를 잡은 택시기사가 묻는다. 저자가 교수라는 사실을 알고 던진 질문이었다. 


“학생들에게 그 일로는 생활비를 벌 수 없는 일을 가르쳐서 먹고사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세요?”


한마디로 당장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학문을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 기사의 이 질문은 내 머릿속 ‘회계 시스템’을 정면으로 타격했다. 아이에게 작가라는 꿈 대신 ‘진로 두 개’를 운운했던 나의 논리와 정확히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질문에 피하지 않고 이렇게 답한다.


“제가 학생들에게 해주는 일은 사람들이 대체로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것에서 가치를 찾는 방법을 가르치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타인에게 뭔가 가치 없는 일을 해도 된다고 허락해 주는 건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저자가 말하는 이 선물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무용함’일 것이다. 효율과 유용함의 세계에서 무용함을 쫓아 살아도 좋다고 그녀는 나직이 말한다. 하지만 율라 비스는 자신의 목소리에 실린 무게가 어디서 오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녀가 가르치는 '글쓰기'가 당장 시장에서 수익을 보장하지 않음에도, 이를 설파할 수 있는 이유가 역설적이게도 사회적 위신이 높은 엘리트 대학의 교수라는 직함 덕분임을 정직하게 응시한다.


아이의 첫 번째 꿈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지 못하는 나에게는 자꾸만 갑갑한 마음이 든다. 마음 같아서는 이상은 더 높은 곳을, 시선은 이 너머의 가치 있는 것들을 향해 살라고 호기롭게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현실의 중력은 그리 가볍지 않다.


결국 《소유하기, 소유되기》는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무엇으로 계급을 가르는가, 우리는 왜 일하는가,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 말이다. 이 책은 무용함과 유용함 그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정말 좋은 삶인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아이의 방문 앞에서, 나는 비로소 내 머릿속 회계 시스템의 전원을 잠시 꺼보기로 했다. 현실의 중력이 무거워 아이의 첫 번째 꿈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기엔 여전히 망설임과 회의적인 마음이 앞선다.


아이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꿈이 많이 꺾이긴 했지만 그래도 책을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해서 전공이 무엇이든 어떤 직업을 가지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아이에게 '작가'라는 명사를 소유하라고 말하는 대신, 그저 글을 쓰는 즐거운 행위 그 자체를 응원해 주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소유하기보다 존재하기를.

유일무이한 너로, 그저 너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