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을 위한 철학 - 나를 짓누르는 삶의 중력을 거슬러 은총으로 나아가는 길
시몬 베유 지음, 한소희 엮음 / 구텐베르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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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인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산책길에서 꺾여 있는 소나무 가지 하나를 발견했다. 그 순간 머릿속이 분주해진다. 가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도 전에, '리스 소재로 쓰면 딱 좋겠는데'라는 생각이 먼저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세상을 만날 때 그것의 본래 모습을 조용히 응시하기보다, 자신의 욕망과 필요라는 프리즘을 통해 먼저 계산하고 해석한다. 데카르트로부터 비롯된 '코기토(Cogito, 나는 생각한다)'의 확신은 근대적 주체라는 거대한 신화를 만들어 냈다. 그 신화 속에서 세상은 더 이상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세계의 주인공 자리에 앉아, 모든 존재를 자신의 목적에 맞는 '도구'로 재단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구화는 비단 사물에만 머물지 않는다. 때로는 인간이 인간을 사물처럼, 시스템의 부품처럼 다루며 타자의 고유한 존재를 지워버리기도 한다. 주체가 과잉된 세계에서 타자도 세계도 더 이상 존엄한 무엇이 아니라, 나의 욕망을 채워주거나 방해가 되는 사물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더 쓸모 있는 도구가 되기 위해 스펙을 쌓고, 끊임없이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갈고닦는다. 주체라는 이름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서려는 그 노력이, 어느 순간 스스로를 상품화된 객체로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잊고 사는 걸까.


시몬 베유는 이 비극적인 역설 앞에서 사유가 아닌 몸을 던져 넣었다. 촉망받는 철학자였던 그녀가 1934년 르노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선 것은, 타자의 고통을 책상 위에서 관념적으로 사유하는 자신의 안락함을 부끄러워한 결단이었다.


“끔찍한 것은, 당신이 하는 일이 시계의 초침에 의해 지배당한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100분의 1초 단위로 쪼개진 시간의 노예가 된다. 기계는 당신의 주인이 되고, 당신은 그저 기계의 변덕에 복종할 뿐이다.” 시몬 베유가 『노동 일기』에 남긴 이 처절한 기록은 주체가 완전히 파괴된 현장의 증언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을 위한 철학』은 이 지점에서 새로운 반전을 꾀한다. 주체가 해체되는 이 극한의 상황을 단순한 몰락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내 욕망과 의지로 세상을 주무르던 주체의 환상이 깨질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실재와 진실하게 만날 기회를 얻는다. 자아라는 두꺼운 벽이 사라진 빈자리에야 비로소 타자의 진실과 사물의 본래 모습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환상과 누군가의 도구로 전락한 현실 사이에서, 우리의 삶은 자꾸만 어긋난다.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했던 ‘나’는 세상에 나가자마자 그 냉험한 사실을 몸소 겪는다. 어찌할 수 없는 그 앞에 삶이 무력해지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 그녀의 철학은 그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부터 세상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된다고 말한다. 나의 욕망을 비워내고 대상을 소유하려 들지 않는 고요한 응시, 베유는 그것을 '주의'라고 부른다.


이러한 사유는 자아를 비워 우주의 근원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불교의 무아(無我)나 인도의 고대 사상과도 맞닿아 있다. 나를 증명하려는 안간힘을 내려놓고 자신을 텅 비워낼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재단하는 ‘주인’이 아닌, 세계와 진실하게 공명하는 ‘존재’가 된다.


책장을 덮고 다시 산책을 나선다. 겨우내 축적한 뱃살을 빼기 위함도 아니고, 필요한 소재를 찾기 위함도 아니다. 그저 천천히 내딛는 땅을 밟고 하늘을 보고 새소리를 들으며, 소나무를 스쳐 온 바람을 만난다. 비로소 세상이 그 자체로 내게 다가옴을 느낀다.


사실 하이데거와 니체, 사르트르의 철학에 익숙한 내게 자아를 비워내라는 그녀의 사상은 아직 다 알 수 없는 신비에 가깝다. 주체의 의지와 기투를 강조하는 사유들 틈에서,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되돌리는 베유의 언어들은 때로 낯설고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말할 수 없는 마음의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무언가 되어야 하고,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아도 괜찮다는 위로를 받았기 때문일까. 그녀를 통해 세상을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닌, 그저 가만히 응시해야 할 실재로 마주하는 또 다른 시선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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