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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
요아힘 마이어호프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26년 1월
평점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누군가에겐 탈출하고 싶은 지옥이었을 높은 담장 안이, 소년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보금자리였다. 환자 수 1,500명이 넘는 주립 어린이·청소년 정신병원. 그 거대한 격리 구역의 정중앙에 한 가족이 산다. 병원장 가족을 위한 관사가 하필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요아힘 마이어호프의 자전 소설 『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는 이 기묘하고도 서늘한 동거에서 시작된다.
제목만 보면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일 것 같지만, 책장을 넘기자마자 마주하는 건 천진난만하고 유쾌한 세계다. 주인공 요아힘에게 쇠창살은 감옥이 아니라 조금 다른 이웃들의 창문이었고, 밤마다 들려오는 비명소리는 익숙한 자장가였다. 폐쇄된 공간에 살면서도 요아힘은 누구보다 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소년의 눈에 비친 어른들은 환자든 아니든 그리 다르지 않다. 자기만의 루틴에 집착하는 환자 페르디난트나 한여름에도 털옷을 고집하는 영어 선생님, 불쑥 전쟁 트라우마를 쏟아내는 교장 선생님은 저마다의 결핍을 안고 산다는 점에서 매한가지다. 요아힘은 그들을 편견의 눈으로 평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그저 우리 곁의 이웃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 특별한 환경 속에서도 요아힘의 가족은 평범하게 흘러가는 듯 보인다. 지적이고 다정한 아버지, 헌신적으로 가정을 돌보는 어머니. 소설의 3분의 2 정도는 니콜라의 소동처럼 매일이 유쾌한 장면으로 채워진다. 소년에게 닥친 시련이라곤 고작 형들의 짓궂은 놀림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후반부에 접어들면, 유쾌한 소동극의 막이 걷히고 외면하고 싶었던 가족의 민낯이 드러난다. 부모라는 이름 아래 부부라는 관계는 위태로웠다. 병원의 지배자인 아버지는 평생 외도로 아내를 외로움과 히스테리에 몰아넣었다. 결국 부모는 헤어지고, 아버지는 새 연인을 따라 떠난다. 형의 죽음과 아버지의 임종을 거치며 요아힘은 비로소 이 모든 혼돈을 직시한다.
"그래, 이제 나는 믿는다. 내가 기억의 보따리를 다시 하나하나 풀어 꺼내놓을 때, 겉으로 확실해 보이는 과거에 대한 믿음을 접고 과거를 혼돈으로 받아들이고 형상화하고 꾸미고 기념할 수 있을때, 그리고 나의 죽은 이들이 모두 다시 살아나 친숙하면서도 내가 지금껏 인정한 것보다 더 낯설고 자율적인 존재가 될 때 비로소 나는 현재 삶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과거를 단순히 아름답게 꾸미려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정신분석적 치유에 가까운 '기억의 주권 찾기'다. 삶에서 고통이나 상처를 가리고 외면하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그러나 일시적인 봉합이나 미화는 결국 회피나 자기기만에 가깝다. 상처를 미화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그 상처는 나의 주인이 되어 내 삶을 은밀히 조종하기 때문이다. 상처를 꿰매지 않고 응시하는 법.
요아힘은 그 구멍을 억지로 메우는 대신, 그 구멍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바꾼다. 시선을 바꾼다는 것은 아버지의 외도를 '가족을 향한 배신'으로만 규정하지 않는 것이다. 아버지를 완벽해야 할 '부모'라는 틀에서 해방시켜, 욕망과 고독에 흔들리던 한 명의 '낯선 타인'으로 인정하는 작업이다.
여기서 이 소설의 진짜 미덕이 드러난다. 요아힘은 "다 이해하니까 용서한다"는 식의 상투적이고 도덕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아버지를 용서해야 한다는 의무감 자체를 느끼지 않는다. 어린 시절 그의 세계 속 인물들이 '아버지', '어머니', '형'이라는 단 하나의 이름과 관념으로 묶인 사람들이었다면, 이제 그들은 고정된 무엇이 아닌,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는 낯선 타자들이다.
이처럼 이름 너머에 숨겨진 그들의 다양한 면모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곧 요아힘이 과거라는 중력에서 벗어나 가능성이라는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된다. 글쓰기를 통해 기억의 주권을 되찾은 소년은 이제 더 이상 과거에 갇혀 있지 않다.
이 책의 제목 『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는 중의적인 선언이다. 그것은 세상을 떠난 이들이 하늘로 돌아갔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내 기억의 감옥에 억눌려 있던 그들을 비로소 나의 관념 밖으로 기꺼이 '날려 보낸다'는 작가의 결단이기도 하다. 아버지를, 어머니를, 그리고 형을 내가 만든 편협한 정의에서 해방시킬 때, 그들은 비로소 자유롭게 날아오른다. 그리고 그들을 놓아준 소년의 삶 역시, 비로소 중력을 이기고 가볍게 떠오르기 시작한다. 죽은 이는 날아오르고, 산 자는 마침내 자유로워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