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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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도서를 읽고 기록한 솔직한 서평입니다.


몇 년 전, 전국의 거리는 '검은 롱패딩 군단'이 점령했다. 지하철역에서도, 학교 앞에서도 똑같은 길이와 색깔의 옷을 입은 이들이 유령처럼 몰려다녔다. 아이들의 요청에 지갑을 열었던 부모들은 '두고 봐라, 몇 년 뒤면 분명 숏패딩이 유행할 거다'라며 예언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그 예언은 적중했다. 유행이라는 이름의 획일성은 매년 옷의 길이를 줄였다 늘였다 하며 인간의 취향을 길들이고 있다.


인간의 심리는 참으로 묘하다. 유일무이한 존재로 남들과 다르길 열망하면서도, 정작 소속되지 못할 때의 불안을 견디지 못한다. 결국 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자신의 고유한 색깔을 지우고 무채색의 집단 속으로 기꺼이 녹아드는 모순을 선택한다.


『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는 그런 인간의 모순적 본능이 '지성'이라는 영역과 만났을 때 벌어지는 비극을 블랙 코미디처럼 보여준다. 소설 속 세상에서 '롱패딩'은 옷이 아니라 '지능의 평등'이라는 사상이다. "모든 사람은 똑같이 똑똑하다"라는 이 획일적인 교리는 차별을 없애겠다는 선한 얼굴을 하고 나타나, 개인의 고유한 탁월함을 '혐오'라는 이름으로 단죄하기 시작한다.


'바보', '멍청이', '천재' 같은 단어는 금기어가 되며, 이를 사용하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거나 처벌받는 사회가 된다. 언뜻 생각하면 도덕적으로 나쁠 것 없어 보인다. 그러나 지능에 따른 구분이 사라지자 무능력한 사람들이 전문가가 되기도 하고 세상이 점차 우스꽝스럽고 위험하게 변해간다.


소설은 40년 우정 관계인 피어슨과 에머리라는 캐릭터를 통해 사회에 저항하거나 순응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두 얼굴을 보여준다. 피어슨은 사실을 말할 자유를 지키려다 고립되는 인물이고, 에머리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영민하게 자신을 세탁하며 성공을 쟁취하는 인물이다.


현실 속에서 우리도 두 가지 유형의 사람으로 살아간다. 롱패딩 군단에 속하는 사람과, 그 획일화된 행렬에서 이탈해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사람 말이다. 어떤 관점이 옳다고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나 또한 학창 시절 친구들과 유행을 따라 하며 그 동질감이 주는 특유의 안정감을 느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혼자 튀는 것보다 무리 속에 섞여 있을 때 얻는 평온함은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안정감의 대가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남들과 똑같아지기 위해 내 안의 고유한 차이들을 스스로 깎아내는 동안 인간의 자유는 그만큼 쪼그라든다. 어쩌면 중요한 건 어느 쪽이 옳으냐를 따지는 게 아니라, 나의 선택이 유행인지 신념인지 자각하는 것이 먼저일지도 모른다. 


인스타를 열어보니 지금은 '두쫀쿠'가 유행인가 보다. 아직 먹어보지 못했는데 그 맛이 궁금하긴 하다. 나도 모르게 맛집을 검색하고 있는 걸 보니, 획일성이라는 롱패딩은 생각보다 벗기가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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