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이 철학을 마주할 때 - 다가올 모든 계절을 끌어안는 22가지 지혜
안광복 지음 / 다산초당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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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면, 청소년기까지는 도입부이고 중년은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클라이맥스를 향해가는 지점일 수도 있고, 이미 클라이맥스를 지나가는 구간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삶의 무게가 더욱 묵직해지는 시기라는 점이다.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지고, 앞날의 선택지는 점점 좁아진다.


철학만큼 세상에 무용해 보이는 학문이 있을까. 세상은 늘 실용적이고 당장 득이 되는 것을 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나는 왜 존재하는가’,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목끝까지 차오를 때, 결국 우리를 붙잡아 주는 것은 실용이 아니라 사유의 힘이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스물두 가지 삶의 태도 가운데 특히 마음에 남은 것은 ‘지성’과 ‘초연’이다.

몽테뉴는 법원 판사로서 경력을 쌓아가던 38세에 과감히 자리를 내려놓고 고향 집 서재로 돌아갔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든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과연 진정한 학문의 탐구였을까. 주입식 암기와 학원에서 선생님이 짚어주는 대로 외우기에 급급했던, 그저 기계적인 반복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공부는 대개 학교 졸업과 함께 멈춰 버린다. 앎을 호기심과 열정으로 탐구해 본 경험이 부족했기에, 학문은 지겹고 지루한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그러나 몽테뉴는 중년으로 접어드는 나이에 자신만의 서재에서 오히려 삶을 성찰하는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책 속에서, 또 자신과의 대화 속에서 지혜를 길어 올리며 삶의 무게를 견뎌낼 힘을 찾았다.


몽테뉴가 서재에서 지적 성찰을 구했다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극한의 상황에서 철학을 실천했다. 로마 제국의 5현제였던 그는 독서와 명상을 즐기던 철학자이자 황제였다. 최전방 막사에서 『명상록』을 집필하며, 때로는 적군의 공격으로 직접 전장에 나서야 하는 위기 속에서도 사유를 놓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58세, 다뉴브 전선의 군영에서 병사하기까지, 그는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전장에 머문 황제였다.


그런 그는 어떤 마음으로 전장에 임했을까.

“너의 마음을 괴롭히는 어떤 일에 부딪히면 이를 불행으로 여기지 마라. 이를 슬기롭게 이겨내는 것을 행복으로 여겨라.”


이 말이 더욱 와닿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생생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는 고통을 푸념하지 않고, 오히려 극복하는 과정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라 말했다.


“해야 할 일은 하되, 벌어질 일은 벌어지게 두라.” 그는 오직 ‘지금 이 순간’의 자기 역할에 충실했다. 최선을 다해 싸우되, 결과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임을 알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묵묵히, 그러나 성실히 최선을 다하는 것뿐임을 그는 삶으로 보여주었다.


최근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시끄러웠던 나 역시 그의 태도에서 위안과 용기를 얻었다. 중년기에 접어들며 누구나 예상치 못한 시련을 마주하지만, 아우렐리우스의 태도는 단순한 위로를 넘어 실질적인 삶의 지침이 된다. 중년으로서뿐만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말한 ‘귀족적인 것’이 떠오른다. 그것은 단순히 신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고통과 무게를 당당히 감내하면서도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태도, 곧 스스로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고귀함은 자기를 긍정하는 힘, 위험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용기, 원한에 갇히지 않는 관대함, 그리고 자기만의 길을 창조하는 정신에서 비롯된다. 꼼수나 속임수로 남을 속여 얻는 승리는 결코 귀족적인 것이 아니다.


몽테뉴의 성찰, 아우렐리우스의 초연함, 니체의 긍정은 서로 다른 길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중년의 철학은 그러한 고귀함을 향해 나아가는 지표이자, 스스로를 더 나은 인간으로 빚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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