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음은 설명되지 않는다 - 우울증 걸린 런던 정신과 의사의 마음 소생 일지
벤지 워터하우스 지음, 김희정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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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투명하게 드러난다면 어떨까? 두려움, 미움, 수치심, 사랑으로 달뜬 마음, 분노 등이 해파리의 내장처럼 비쳐 보인다면 아마도 편의점에 자가비 하나 사러 가는 일조차 힘들 것이다. 그만큼 감정과 생각을 드러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 앞일지라도 그렇다. 그렇기에 우리는 종종 아무렇지 않은 척 감정을 적당히 숨기고 살아간다.


방송에 등장하는 유명한 정신과 의사들은 한결같이 삶의 비밀을 아는 듯 여유롭고, 연출된 미소로 무장한 채 사람들을 대한다. TV 프로그램 속에서 환자나 출연자의 마음을 단번에 읽어내고 조언을 건네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전능에 가까운 존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완벽해 보이는 그들도 결국은 우리와 같은 사람임을, 런던의 정신과 의사 벤지 워터하우스는 자신의 고백을 통해 보여준다. 실제로 정신과 의사들이 정신 질환을 앓거나 약물 남용, 심지어 자살에 이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NHS 정신과 수련의로 일한 10년을 담은 이 책은, 환자를 돌보던 의사가 스스로 우울증 환자가 되어 고통과 치유의 길을 동시에 걸어간 기록이다. 영국 시골의 목가적인 환경에서 아동기를 보냈으니 행복했을 것이라는 엄마의 주장과 달리, 그는 안정적이지 못했던 가정사를 내면 깊숙이 감추며 살아야 했다.


책 초반부에는 유머러스한 문장과 드라마 같은 환자들의 이야기가 이어져 마치 한 편의 시트콤을 보는 듯했다. 실제로 책장을 넘기며 “풋” 하고 여러 번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지나치게 농담으로 상황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언젠가 ‘가면우울증’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겉으로는 웃으며 일상을 살아가지만, 내면에는 깊은 슬픔과 불안이 자리한 상태를 뜻한다.


벤지 역시 농담으로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방어했다. 그러나 상담을 시작하면서 그는 유머 뒤에 감춰진 방어를 거두고, 한 인간으로서 또 전공의로서의 고민과 부모와의 갈등을 솔직히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 순간부터 책 속 문장들의 결도 달라진다. 그는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며 쉽게 풀리지 않는 부모와의 오래된 상처와 억눌린 기억을 되짚고, 그 과정에서 마음의 균열과 화해의 가능성을 찾아간다. 이 여정이 지극히 인간적이기에 위로와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제목이 말하듯 인간의 마음은 병명이나 코드, 숫자와 분류만으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한 마음의 영역이 있으며,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단순한 이분법 너머에는 고유한 삶을 살아가는 한 인간이 있다. 그리고 그 인간은 저마다의 상처와 고통을 품은 채, 그저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런던의 정신과 의사 벤지를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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