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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싸우는가 - 싸울 수밖에 없다는 착각 그리고 해법
크리스토퍼 블랫먼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25년 8월
평점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에서 평화로운 시기는 얼마나 될까.
흔히 인류사를 전쟁과 폭력의 연속으로 기억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폭력적인가. 프로이트는 이것이 ‘죽음 파괴 충동’이라는 인간 본성에서 비롯된다고 말하고, 르네 지라르는 사회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폭력을 특정 집단에 전가한다고 설명한다. 홉스 역시 자연상태의 인간을 불신과 공포 속에 놓인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만으로는 인류사를 설명하기 어렵다. 실제로는 긴 역사 대부분이 소규모 협력과 교환에 기반한 평화의 시기였고, 전쟁은 예외적으로 특정 조건에서만 폭발했다. 블랫먼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전쟁을 인간 본성이 아니라 협상 실패의 결과로 설명하며, 평화가 전략적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블랫먼은 원인을 다섯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권력을 견제받지 않는 지도자가 이익을 독점하는 견제되지 않은 이익. 둘째, 명예나 이데올로기 같은 가치 때문에 타협을 거부하는 무형의 동기. 셋째, 힘과 의도를 알 수 없어 오판을 낳는 불확실성. 넷째, 약속이 지켜질지 확신할 수 없어 선제 공격을 유혹하는 이행 문제. 다섯째, 상대를 악마화하고 내 집단을 과대평가하는 잘못된 인식이다.
이 다섯 가지는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드러난다. 지금 가자지구의 봉쇄로 어린아이를 포함한 수많은 목숨이 굶어 죽고 있다. 국제사회와 유엔조차 개입하지 못한 채 참극은 계속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희생양이었던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이 오늘날 또 다른 집단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을 준다.
가자지구의 상황을 블랫먼의 틀에 비추어 보면 몇 가지 원인이 특히 두드러진다.
첫째, 정치적 위기에 놓인 네타냐후 정부가 외부 적대를 강화하며 불만을 전가하는 견제되지 않은 이익. 둘째, 유대인 사회에 뿌리 깊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적대감과 역사적 원한이라는 무형의 동기. 셋째, 팔레스타인 전체를 잠재적 위협으로 악마화하는 잘못된 인식이다. 민간인의 고통과 기근은 지워지고 봉쇄가 정당화된다. 이렇게 가자의 현실은 블랫먼이 제시한 몇 가지 원인만으로도 설명된다. 전쟁은 모든 조건에서가 아니라 특정 조건이 선택적으로 작동할 때 현실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평화로 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블랫먼은 전쟁의 원인을 줄이고 협상의 폭을 넓히는 조건을 제시한다. 경제적·사회적 교류로 상호의존을 강화하면 공격은 어려워진다. 권력을 분산시켜 지도자의 독주를 막으면 전쟁의 유인은 줄어든다. 합의의 이행을 보장할 제도를 마련하고, 해결이 불가능한 갈등에는 국제기구와 제3자가 개입해야 한다. 무엇보다 상대를 악마화하지 않고 협상의 상대로 인정하는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골은 깊다. 그러나 두 집단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면 국제사회가 개입해 더 이상의 무고한 희생을 막아야 한다. 이스라엘 또한 과거 자신들이 겪은 폭력의 기억을 되돌아봐야 한다. 독일군의 폭력 앞에서 그들이 사람이었듯, 가자지구 주민들 또한 똑같이 선량한 사람들이다.
유대인 철학자 레비나스는 타인의 얼굴이 우리에게 “살해하지 말라”는 윤리적 명령을 건넨다고 말했다. 굶주린 아이들의 얼굴은 지금 당장 응답하라고 절규하고 있다. End the siege, End the genoci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