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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랜드
양기연 지음 / 열림원 / 2025년 8월
평점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펜타랜드는 게임의 세계를 테마파크로 구현한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다섯 편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이거나 혹은 관람객이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가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제2의 성』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성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해, 전통적으로 여성이 늘 남성 앞에서 ‘타자’로 위치 지어져 왔음을 지적한다. 남성이 ‘보편 인간’이라면 여성은 ‘특수한 성별 존재’로 규정되어 왔다. 『펜타랜드』의 화자들 역시 바로 그 타자화된 자리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식소다 낙뢰’의 화자는 두더지 인형 탈을 쓰고 얼굴 없는 익명으로 일하다가 동료 천진우와 마음을 나눈다. 그러나 놀이공원에서 일어난 사고의 책임으로 그가 부당 해고를 당했을 때, 화자는 그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채 무력하게 떠나보낸다. 언제든 대체 가능한 노동처럼, 두 사람의 관계 역시 깊어지지 못한 채 희미하게 끝난다.
‘도넛 모양의 틀’의 지안은 매표소에서 근무하며 관람객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핀다. 보육원에서 자란 그녀가 찾고 기다리는 것은 자신을 버린 어머니의 얼굴이다. ‘폭죽 파편 맞기’에서는 자궁 경부에 염증이 생겼음에도 파트너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화자가 등장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상황 속 주인공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관계의 결핍과 몸의 한계를 경험하며, 스스로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 채 타자화된 위치에 머문다.
‘지빠귀의 구애’ 속 주인공은 남성 동료 치산의 눈에 들기 위해 애쓰다가 오히려 동료들 앞에서 모욕적인 언사를 듣는다. 이어지는 ‘영웅의 행진’에서는 사고로 몸이 불편해진 어머니를 돌보며, 주인공이 독립의 욕망과 책임의 무게 사이에서 갈등한다. 두 이야기는 여성의 몸과 관계, 돌봄이 어떻게 사회적 요구와 얽히며 개인을 소모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소설은 환상과 즐거움의 공간으로 꾸며진 테마파크와, 그 이면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을 날카롭게 대조한다. 마치 너무 강한 빛 아래에서 오히려 그림자가 또렷해지는 것처럼, 화려한 축제 뒤편에 가려진 어두운 음영을 드러낸다. 각기 다른 자리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서사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러한 타자화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성’으로 구분하는 시각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여성은 무엇보다도, 여성이라는 이름 이전에 인간이다. 사르트르의 말대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이 문장을 낡은 실존주의의 표어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중요한 통찰을 담고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본질이나 역할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다. 삶의 과정 속에서, 스스로의 선택과 행위를 통해 비로소 본질을 만들어 간다.
그렇기에 소설 속 화자들이 반복해서 수동적으로 그려지는 장면들은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하게 다가왔다. 그 불편함은, 이론과 달리 오늘날 현실 속에서도 여성들이 여전히 타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일 것이다.
책장을 덮고 나서 소설이 던지는 물음 너머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어떻게 주체로 살아갈 수 있는가’, ‘나와 다른 타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물음 말이다. 그것은 요즘 읽고 있는 레비나스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그는 타자를 내가 다 알았다고 믿는 순간 타자는 사라져버리며, 언제나 내 이해를 넘어서는 무한한 존재로 남는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