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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땅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희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평점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변신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주도한 진화 생물학 교수 알리스 카메러는 최신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해 세 가지 아종으로 다양화된 새로운 인류를 개발하려 합니다. 공중을 나는 인간, 땅을 파고드는 인간, 헤엄치는 인간이죠.”
소설은 진화생물학자 알리스 카메러의 비밀 연구에서 출발한다. 인류가 맞닥뜨릴 위기에 대비한 취지였지만, 연구가 탄로나면서 그는 반대론자들의 위협을 받게 된다. 친구이자 프랑스 연구부 장관의 도움으로 국제 우주 정거장으로 피신해 연구를 이어가던 중, 3차 대전이 발발하여 지구는 핵전쟁으로 파괴된다.
우주정거장에서 1년 가까이 고립된 채 버텨낸 알리스와 일행은 연료와 식량의 고갈 앞에서 결국 지구로 귀환하게 된다. 그가 지니고 돌아온 것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자 동시에 새로운 불안의 씨앗이었다. 인간과 박쥐의 혼종으로 하늘을 나는 〈에어리얼〉, 인간과 두더지의 혼종으로 땅속에 적응한 〈디거〉, 인간과 돌고래의 혼종으로 바다를 유영하는 〈노틱〉. 세 종의 키메라는, 파괴된 지구 위에서 구인류를 대신할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한다.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 속에서 소설은 SF 영화 같은 스펙터클과 긴장감 넘치는 서사를 펼쳐내, 마치 블록버스터 한 편을 보는 듯했다.
“그건 메아리라는 거야. 메아리는 삶에서 우리 태도의 영향을 보여 주는 흥미로운 은유이기도 하단다. 보내는 대로 돌아오는 거야. 두려움을 보내면 네게도 두려움이 오지. 불신을 보내면 너도 불신을 받아. (…) 사랑을 보내면 너도 사랑을 받지. 우주는 네가 보낸 것을 언제나 되돌려주는 거울처럼 돌아간단다.”
소설 속에서 “삶은 메아리와 같다”는 대목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로 읽힌다. 두려움과 불신, 모욕과 증오를 내보내면 그 역시 증폭되어 돌아오고, 사랑과 신뢰를 보낼 때 비로소 같은 울림이 되돌아온다. 인류가 서로에게 불신과 적의를 보낸 끝에 핵전쟁과 아마겟돈이라는 최악의 파국에 이른 것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귀결이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충동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하나는 삶과 사랑, 결합과 창조를 향한 에로스의 충동이고, 다른 하나는 파괴와 해체, 죽음을 향한 타나토스의 충동이다. 『키메라의 땅』 속 키메라들의 서사는 이 두 충동의 끊임없는 긴장을 드러낸다. 처음에는 협력과 공존을 시도하지만, 곧 타나토스에 휘둘리며 갈등에 빠진다.
베르베르는 과학 기술로 새로운 인류를 창조한다 해도 그것이 곧 인류의 구원이 될 수 없음을 말한다. 종의 진화가 반드시 윤리적 진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키메라는 기능적으로는 더 우수할 수 있지만, 인간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그들에게는 여전히 인간의 본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래는 우리 안의 에로스와 타나토스 중 어떤 힘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랑과 파괴, 그 둘 중 어느 파동이 메아리로 돌아올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그리고 그것은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끊임없이 작동하는 진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