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의 사랑 거장의 클래식 6
딩옌 지음, 오지영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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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표제작 ‘설산의 사랑’을 읽으며 나는 알퐁스 도데의 「별」이 떠올랐다. 소설은 밤하늘과 산의 정적, 별빛, 여름 공기 같은 자연의 풍경과 호흡을 따라 주인공들의 감정을 에둘러 전한다.


"마전은 묵묵히 설산을 보았다. 그는 설산이 좋았다. 뭐가 좋은 건지 분명히 설명할 수는 없었다. …거기엔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비밀스럽고 숭고한 무언가가 설산을 거대한 수수께끼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마전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가게에 난 화재로 점원이 목숨을 잃자, 목숨값을 치르기 전까지 그 남자의 여동생 융춰와 할머니가 사는 집에 보내졌다. 그는 미안한 마음으로 매일 과일을 사서 문 앞에 두지만, 융춰는 그 과일을 봉지째 쓰레기통에 버린다. 버려지는 과일처럼 두 사람의 감정도 표면적으로는 폐기되지만, 그 행위는 묘한 소통의 통로가 된다.


멀리 보이는 설산에 신비로움을 느끼듯, 마전은 융춰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을 느낀다. 그 마음은 말로 꺼내는 순간 빛이 바래질 것 같아 차라리 침묵 속에 묻어둔다.


메를로-퐁티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침묵은 단순한 소극성이 아니라 지각의 생생함을 지키려는 선택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느끼는 순간은 언어 이전의 경험으로 가득하지만, 이를 “사랑한다” “좋아한다”로 옮기는 순간 그 풍부함은 단순한 개념으로 줄어든다. 마전은 그 순수함을 지키고자 말 대신 행동으로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순간에조차 애틋함과 아름다움을 지닌다.


이렇듯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내 직접적인 고백으로 이어지지 않지만, 설산 같은 침묵 속에서 서서히 무게를 더해 간다. 읽는 내내 ‘오늘날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스쳤다. 요즘 우리의 사랑과 문학은 대체로 직설적이며, 우리는 그것을 솔직하고 쿨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말로 다 전하지 못하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침묵 속에도 깊고 오래가는 아름다움이 있다.


『설산의 사랑』에는 표제작을 포함해 모두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슬람교를 믿는 중국 소수민족 둥샹족 출신인 작가는 무슬림 주인공과 종교·문화적 배경을 통해 중국 소설에서는 드물게 만날 수 있는 분위기를 빚어낸다. 특히 티베트 고원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광활한 자연과 섬세한 풍경 묘사가 돋보인다.


속세와 사원 사이에서 갈등하는 비구니의 이야기 「속세의 괴로움」, 생존과 자아 사이에서 길을 찾는 청년을 그린 「아프리카봉선화」, 혈연을 넘어선 유대를 다룬 「늦둥이」 등, 서로 다른 결의 이야기들이 모두 말하지 못하는 마음과 그 마음이 빚어낸 침묵의 아름다움을 공유한다.


가보지 못한 광활한 티베트 고원을 상상하며, 침묵이 어떻게 한 편의 시가 되고 삶이 되는지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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