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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 꾸준히, 천천히, 묵묵히 삶을 키우는 나무의 지혜
리즈 마빈 지음, 애니 데이비드슨 그림, 박은진 옮김 / 아멜리에북스 / 2025년 8월
평점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언젠가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 시절의 나는 관계에서도,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도 길을 잃은 듯 혼란스러운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할 때마다 그저 한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나무들에게 위안을 받았다. 아무 말 없이, 그러나 한결같이 곁을 내어주는 존재. 나에게 나무는 그런 이미지로 남아 있다. 흔들리되 쓰러지지 않고, 고요히 제 자리를 지키며 곁을 내어주는 존재.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에는 59종의 나무가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함께 저마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겉으로는 외롭게 홀로 서 있는 듯 보이지만, 땅속에서는 촘촘히 얽힌 뿌리로 서로의 자원을 나누는 사시나무. 애벌레의 공격을 받으면 특유의 페로몬을 내뿜어 기생말벌을 불러들이는 느릅나무. 그 이야기를 읽는 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과 서로를 지켜내는 힘에 대해 생각했다.
아프리카 초원에 사는 우산가시 아카시아는 코끼리와 기린의 주요 먹이가 된다. 그런데 기린이 잎을 뜯으려 하면 이 나무는 에틸렌 가스를 내뿜어 이웃 나무들에게 위험을 알린다고 한다. 나무들이 그렇게 서로를 지켜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도 삶의 일부다.” 그 문장을 읽는 동안 오래 시선을 붙잡은 장면이 있었다. 중남미의 열대성 폭풍에 쓰러진 구아레아 나무였다. 땅에 고꾸라져 누운 채로도 그 나무는 포기하지 않고 쓰러진 줄기에서 새순을 틔운다고 한다. 옆에 실린 일러스트 속 연약한 새싹은 더욱 귀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책의 뒷부분에서 또 한 번 발걸음을 멈추게 한 나무가 있었다. 산사나무였다. 바람 한 점 없는 그림 속에서 그 나무는 마치 거센 바람을 맞고 있는 듯 한쪽으로 몸을 기울인 채 위태롭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무심히 보면 그저 수형이 독특하고 예쁠 뿐이다. 그러나 나무는 본래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려 한다. 끝없이 바람이 스치는 탁 트인 공간에서는 그 본능을 온전히 따를 수 없다. 산사나무는 결국 바람을 받아들이며 덜 흔들리는 방향을 찾아 몸을 비스듬히 기울이고, 그렇게 자신만의 균형을 만들어간다고 한다.
집 마당 한켠에 참빗살나무가 있다. 조경업체 사장님은 나무의 줄기를 가리키며 “이렇게 곡이 있는 수형은 드물고 귀한 거예요”라고 말했었다.
삶은 때때로 힘겹다. 액정 속 매끈한 사진과 현실은 다르다. 때로는 폭풍 같은 바람이 몰아칠 때도,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밀려올 때도 있다. 곧게 뻗은 길을 걷고 싶어도, 어느새 앞에는 굽이진 오솔길이 놓여 있곤 한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며칠 전 화집에서 본 램브란트의 자화상이 떠올랐다.
30대의 정점을 찍은 그의 자신감 넘치는 얼굴에서부터, 40대에 접어들며 상실과 파산, 세월의 무게가 스며든 눈빛으로 변해가는 초상들까지. 화폭 속 변화는 마치 삶의 길이 직선에서 굽은 오솔길로 이어지는 순간을 그대로 담아낸 듯했다.
그의 자화상이 주는 울림은 아마 그것이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통을 밀어내지 않고 받아들이며,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한 겹 한 겹 쌓아 올린 그의 얼굴은 결국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얼굴과 닮아 있지 않을까.
창밖으로 참빗살나무의 잎이 반짝인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지 못하고 몸을 구부린 채 자라온 나무. 그 곡선에는 어떤 바람과 시간이 스며 있었을까. 풍경으로만 보이던 나무도, 사람도 결국 그 굽은 형태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곡진 형태가 곧 아름다움임을 깨닫는다.
덧. 책은 얇고 아름다운 일러스트가 가득해, 휴가철이나 가을 공원 벤치에 앉아 읽기에도 잘 어울릴 듯 하다. 실로 꿰맨 실제본의 단단한 만듦새 또한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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