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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의 습격 - 편리와 효율, 멸균과 풍족의 시대가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들에 관하여
마이클 이스터 지음, 김원진 옮김 / 수오서재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전원주택에 거주한 지 4년째다. 자연을 가까이 두고 살겠다는 로망, 그리고 관계에서 한 발짝 물러서고 싶다는 마음이 나를 시골로 데려왔다. 평생 도시에서만 살아왔기에, 도시 밖의 삶은 그야말로 낯설고 막연한 영역이었다.
아침이면 새소리에 눈을 뜨고, 풀냄새와 잣나무 향기를 맡으며 하루를 연다. 밤이 되면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렇게만 보면 참 낭만적인 삶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시골에서의 삶은, 한마디로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일이다.
도보로 갈 수 있는 상점이 없다.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꼴로 오가고, 병원도 몇 개 진료 과목을 가진 소규모뿐이다. 치과 치료를 받으려면 도시로 나가야 하고, 배달앱으로 간편하게 시켜 먹던 음식과도 작별했다. 말하자면, 편리함과는 거리가 먼 삶이다. 그리고 이 삶은 매일같이 불편함을 견디는 연습이기도 하다.
마이클 이스터는 건강 전문 저널리스트다. 그는 알코올 중독이라는 개인적 위기를 계기로, 인간 본연의 생명력과 감각을 회복하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북극 알래스카에서 33일간 문명과 완전히 단절된 채 순록 사냥을 하며, 혹독한 추위와 고독, 배고픔, 불편함을 몸으로 겪는다. 그 경험을 통해 그는 말한다. 우리가 피하려 드는 그 불편함이야말로, 오히려 건강과 회복, 생존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책을 읽으며 문득 생각했다. 내가 이곳에서 겪고 있는 불편함도, 퇴행이 아니라 감각을 되찾는 과정일 수 있지 않을까? 이스터는 말한다. 편안함은 도둑처럼 삶에 스며들어 기준을 바꿔 놓았고, 불편함은 피해야 할 감정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 속에, 삶의 밀도와 생기, 회복의 가능성이 깃들어 있다고.
치과 진료 하나에 반나절을 쓰고, 빵 하나 사러 읍내까지 차를 타고 가는 일상이 처음엔 꽤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이 모든 불편함이 나를 더 주의 깊고, 더 능동적인 존재로 만들어주고 있다는 걸 느낀다. 스스로 움직이고, 감각하며, 때로는 묵묵히 견디는 사이, 나는 편안함 속에서 잊고 지냈던 삶의 무게와 리듬을 다시금 체감하게 되었다.
그가 알래스카에서 마주한 날것의 자연을 그대로 경험하긴 어렵다. 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자연에 가까워지고 싶어, 마당의 잡초를 뽑고, 눈이 오면 내 손으로 치우고, 정원의 식물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하루를 살아간다. 관리실도 없고, 대신해줄 이도 없다. 모든 일이 조금 더 느리고 수고스럽다. 그렇기에 더 가깝고, 더 실감 난다.
『편안함의 습격』은 단순히 “불편을 견뎌라”라고 말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인 편안함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되묻는 책이다. 편리함과 맞바꾼 것들이, 실은 우리를 점점 더 피로하고 둔감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경험과 과학적 연구로 풀어낸다.
나 역시 지금은 조금 불편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이 불편함이 예전처럼 피하고 싶은 감정만은 아니다. 불편함을 상쇄하고도 남을 무언가가, 그 안에 분명히 있다.
더 명확하게 나 자신을 느끼고, 더 깊이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연과 함께 움직이고, 감각하고, 감내하는 이 일상의 조각들이야말로, 이스터가 말한 ‘회복된 인간성’의 작은 실마리인지도 모르겠다.
편안함에 익숙해져 무뎌진 이들에게, 이 책은 다시금 깨어 있는 삶으로 걸어가 보자고 말한다. 알래스카의 설원까지 가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 이 자리에서, 아주 조금만 불편한 쪽으로 몸을 기울여보는 것. 그 작은 시도가, 더 건강하고 생기 있는 삶으로 이끄는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