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 아노크라시, 민주주의 국가의 위기
바버라 F. 월터 지음,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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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인지도 있는 정치인이 소셜미디어에서 혐오의 언어를 휘두르며, 그것을 정치적 지지로 전환해내는 그 모습을.
지난겨울, 국군 통수권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계엄령을 선포했을 때, 그와 그를 지지하던 소수 사람들의 법원 폭동 모습을.


그러나 다행히, 봄은 왔다. 벚꽃이 피고 지는 이 계절 속에서, 우리를 독재의 어둠 속으로 끌고 가려 했던 그 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다. 불안 요소가 완전히 걷히진 않았지만, 우리는 한걸음 물러나 지난 시간이 남긴 어둠을 응시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대다수의 내전을 겪은 나라의 시민들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갑작스럽게 내전에 직면했다고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징후는 무엇인가.
이 책은 다양한 국가의 사례와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내전의 메커니즘을 설명해준다.


월터는 말한다. 내전은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는 우발적 사태가 아니라, 여러 요인이 촘촘히 맞물려 도달하는 필연적 결과라고. 민주주의의 약화, 사회의 불안정, 극단주의의 확산, 그리고 무엇보다 파벌화가 주요한 요인이다.


놀랍게도, 민주주의의 쇠퇴는 인터넷, 스마트폰, 그리고 소셜미디어의 확산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한다.
과거엔 음지에 존재했던 사기꾼, 음모론자, 선동가, 반민주주의자들이 이제는 SNS라는 확성기를 손에 쥐고, 점차 하나의 목소리를 넘어 거대한 세력으로 확장되고 있다.
SNS는 그들의 영향력을 증폭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고요보다 공포를, 진실보다 거짓을, 공감보다 분노를 택하는가.


그 해답은 우리의 뇌에 새겨진 오래된 기억과 습성에 있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공포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했고, 복잡한 진실보다 단순한 거짓을 더 쉽게 받아들인다.
분노는 도파민을 분비시켜 쾌감을 주며, 동일한 분노를 느끼는 이들과의 유대를 만들어낸다.
공감은 인내와 사유를 요구하지만, 분노는 즉각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소셜미디어는 이 취약한 본능을 이용해 좋아요 장사를 하고, 정치인들은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그들의 권력욕 앞에서 공동체와 공공선의 붕괴는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이 책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경고한다.
내전은 먼 나라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언제든 시작될 수 있는 현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민주주의와 독재 사이, ‘아노크라시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지금, 그 경계에 서 있다.
한국은 정치 불안정 연구단의 2024년 정치체 점수에서 10점 만점 중 8점을 받았지만,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에서 펴내는 보고서에는 민주주의에서 독재로 변모하는 국가로 분류되었다. 지난 계엄 사태 이후로는 아노크라시 상태임이 자명하다.


어떻게 단 한 사람의 권력이, 불과 몇 해 만에 우리의 민주주의를 이토록 흔들어놓을 수 있었던 걸까.


속상하고 분통이 터지지만, 나는 집회때 여의도에 모였던 사람들의 눈빛을 기억한다.
여의도를 무정차로 지나치던 지하철. 우리는 2정거장 전에 내려, 차가운 강바람을 맞으며 울컥하는 마음으로 그 길을 걸었다.


그때의 발걸음처럼, 이제는 우리의 어둠을 차분하고 냉철하게 들여다볼 시간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그것은 오직 우리의 관심과 견제를 통해 지켜낼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시민들은 할 일을 해왔다. 그러니 이제는 언론과 사법부가 그 책임을 다해야 할 차례다. 그것만이 위태로운 민주주의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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