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읽기 - 영국에서 정원 디자이너로 살아가기
김지윤 지음 / 온다프레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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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영화 ‘프렌치 수프’에서 내가 매료된 것은 요리의 향연이 아닌, 19세기 프랑스의 서정적인 풍경이었다. 느리게 펼쳐지는 화면 속에 가득 차오르던 따스한 햇살, 새들의 지저귐, 마당을 수놓은 들풀과 들꽃들. 그것은 자연이 빚어낸 완벽한 무질서의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두 사람의 은근한 로맨스만큼이나 그 풍경은 깊고 잔잔한 잔상으로 남았고, 요리 장면보다도 더 오래 내 기억 속에 머물렀다.


꽃과 풀, 나무를 좋아해 전원주택으로 이사한 지 벌써 4년이 흘렀다. 처음 계획은 마트와 농협이 있는 읍내 분위기의 마을에서 시작하려 했으나, 지인의 소개로 이 집을 본 순간 나와 남편은 한눈에 반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마당에 펼쳐진 자연스러운 조경에 마음을 빼앗겼고, 남편은 넉넉한 주차공간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정원의 그라스와 야생화 때문에 집을 사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지만, 전원주택에서 건물 못지않게 중요한 건 바깥과 어우러지는 정원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4년을 살아보니, 녹색 풍경이 주는 위안과 채움은 생각보다 더 깊고 본질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정원읽기』를 읽고 싶었다. 나는 정원을 바라보는 전문 디자이너의 시선과 경험이 궁금했다. 그것도 꽃과 정원으로 유명한 영국에서 실무를 쌓은 경험이 있는 디자이너라니, 더욱 그랬다.


“우리에게는 어느 형태로든 자연과 연결되고 싶은 본능이 숨어 있다. 도시마다 그 갈증을 채워주는 보석 같은 공간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본다.”


영국의 농원을 방문할 때 느꼈던 설렘, 아름다운 정원을 완성하기 위해 오븐과 창호 견적을 조정하면서까지 정원에 진심인 클라이언트, 주말이면 공원 풀밭에 삼삼오오 모여 자연을 즐기는 도시 사람들. 저자는 이를 통해 정원 문화가 단순한 취미나 조경 기술을 넘어, 자연과 인간, 공간과 감각이 서로 교감해온 깊은 역사와 전통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그가 묘사하는 영국의 정원은 단지 아름다운 경관이 아니라, 자연을 받아들이고 일상 속으로 스며들게 하는 하나의 삶의 방식이었다.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손이 근질거려 근처 화원으로 향했다. 연보라색 프록스와 노란 들꽃 몇 포기를 사서 오랜만에 작은 정원 한켠을 채웠다. 흙을 파헤치자 개미들이 기어나오고, 젖은 흙냄새가 코끝에 번졌다.


어쩌면 정원이란, 내 삶의 속도를 잠시 멈추고 자연과 눈을 맞추는 조용한 순간들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철학자 한병철은 “정원의 시간은 타자의 시간이다”라고 말했다. 정신 없는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잡초를 뽑고, 가지를 다듬고, 정성을 들이는 일은 곧 타자와의 만남이다.


그 자연이라는 타자 앞에서 나는 비로소 삶의 또 다른 속도와 기다림의 미학을 배운다. 저마다의 시간이 교차하고 포개지며, 계절마다 정원은 조용한 아름다움으로 채워진다.


꽃이나 식물은 어찌보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후에 누릴 수 있는 여분의 것이다. 그들이 여유로움 속에 자연을 삶 속으로 들이고 누리는 문화가 책을 읽는 내내 부러웠다. 속도의 문화가 익숙한 우리에게도 그런 여분의 것을 누릴 수 있는 넉넉함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 봄, 향기가 가득 퍼지는 히아신스 화분 하나 창가 곁에 두어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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