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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지능 - 인공지능은 할 수 없는 인간의 일곱 가지 수학 지능
주나이드 무빈 지음, 박선진 옮김 / 까치 / 2023년 10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얼마 전 '일렉트릭 스테이트'라는 영화를 보았다. 인간과 로봇 간의 전쟁으로 디스토피아가 된 세계를 그리고 있는데, 로봇들이 '자유의지'를 획득하여 파업을 일으키고 전쟁을 하는 설정이다. 디스토피아 영화에 기계의 반란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인류가 자신이 창조한 기술에 대해 가진 근원적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AI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새로운 버전이나 모델이 출시될 때마다 우리는 기대와 희망을 품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안한 시선을 떨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불안은 대상을 잘 알지 못할 때 생겨나는 감정이다. AI는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바꿀 혁신적 도구이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인간이 대체되고 영화처럼 우리 삶을 위협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서게 된다.
주나이드 무빈은 인공지능 시대에 대체될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진 고유함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수학지능이다. 이는 기억 저 너머로 넘어간 고통의 방정식이나 미적분을 푸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수학지능이란 추정, 표상, 추론, 상상, 질문, 조율, 협동이다. 이는 단순한 계산 능력을 넘어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인지 과정을 포괄한다. 이 중 '추정'과 '표상'은 우리가 문제를 인식하고 개념화하는 방식이며, '추론'은 논리적 사고를 통해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조율'과 '협동'은 사회적 맥락에서 지식을 공유하고 발전시키는 능력이다. 특히 '상상'과 '질문'의 능력은 기존 체계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창의성의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다.
아이는 2세에서 5세까지 4만번 질문한다고 한다. 아마 부모라면 격하게 공감이 갈 것이다. 이 지치지 않는 호기심은 인간의 질문 능력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본질적인지를 보여준다.
주나이드 무빈은 수학이 퍼즐 놀이와 같은 유희적 활동이라고 한다. 인간은 문제를 푸는 사고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틀에 박힌 생각을 넘어 상상하고 질문한다.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문제가 그래프 이론이라는 새로운 수학 분야를 탄생시킨 것처럼, 인간의 호기심 어린 질문은 새로운 지식 세계를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바로 이것이 AI가 아직 온전히 모방하지 못하는 인간 수학 지능의 본질적 가치이다.
요즘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해석할 때 AI랑 같이 읽고 있다. 니체의 문장은 비유와 압축이 많아서 혼자서 이해가 쉽지 않다. 처음에는 AI가 단숨에 해석해내는 것이 내심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했지만, 곧 이런 방식의 책 읽기도 독서의 하나의 방법임을 받아들였다.
다만 그 의미가 내 삶에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니체의 철학이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재해석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상상은 여전히 내 몫일 것이다.
AI를 통한 수동적 지식의 소비자가 될지, 창조자가 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결국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은 AI와의 대립이 아닌 공존과 협업에 있다. 무빈의 강조처럼, AI의 한계와 인간 수학 지능의 가치를 이해한다면 디스토피아적 불안을 넘어 기술과 인간이 서로 협업하고 견제하는 건강한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미적분을 몇 초 만에 풀 능력은 없더라도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이 있음에 묘한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