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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 필요한 시간 - 진리, 과학, 신앙, 그리고 신뢰에 관하여
프랜시스 S. 콜린스 지음, 이은진 옮김 / 포이에마 / 2025년 3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요즘 나는 우리나라가 마치 한편의 영화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비현실적인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심화되는 사회적 분열과 정치적 갈등 속에서 정신적 피로감도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 조금 전 산불 관련 기사의 댓글을 읽다가 객관적 사실과는 무관한 혐오 표현들로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프랜시스 S. 콜린스의 『지혜가 필요한 시간』은 코로나 팬더믹의 시기를 겪으면서 미국 사회의 극심한 분열과 과학적 사실에 대한 불신, 거짓 정보의 확산이 불러온 비극적 결과를 목격한 저자의 답답함과 깊은 성찰에서 쓰였다. 조사에 따르면 백신에 대한 잘못된 정보로 인해 23만 명이 넘는 미국인이 불필요한 죽음을 맞았고, 이는 베트남전 전투 사망자의 네 배에 달하는 숫자라고 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콜린스는 지혜의 원천을 회복하는 것이 분열된 사회를 치유하는 길이라고 이야기한다.
‘철학(Philosophy)’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지혜(Sophia)와 사랑(Philo)의 합성어이다. 인류 문명이 발전하고 변화하는 동안에도 지혜를 향한 갈망은 변함없이 우리 안에 남아 있다. 콜린스가 제시하는 네 가지 지혜의 원천은 이러한 오랜 철학적 전통 위에서 현대 사회에 유효한 지침을 제공한다. 당파적 이해관계와 선동적인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어갈 때, 다시금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흔들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단단한 정신적 토대를 마련해 줄 것이다.
콜린스가 제시하는 네 가지 지혜의 원천인 진리, 과학, 신앙, 신뢰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이다. 그는 진리를 공동체가 공유해야 할 상식의 토대로 보고,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대화할 때 상대를 악마화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과학은 자연의 객관적 사실을 규명하는 도구이지만, 과학만능주의와는 구분되어야 하며, 신앙은 도덕적 가치와 삶의 의미를 찾는 데 도움을 준다. 마지막으로 신뢰는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접착제로, 거짓 정보가 만연한 시대에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을 분별하는 '정신 면역력'이 필요하다. 이 네 가지 원천이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분열된 시대를 지혜롭게 헤쳐 나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상대방과 당신이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에 큰 차이가 있을 때는 열린 마음과 관대한 태도로 대화에 임하라. 상대를 악마화 하고픈 유혹을 참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상대를 악마로 몰아가면, 그들도 당신을 악마로 몰아갈 가능성이 크고, 결국 대화 속에 남는 건 악마들뿐일 것"이라는 경고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나에게도 필요한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때때로 에릭 호퍼가 말하는 맹신자들이 된다. 호퍼의 『맹신자』에서 그가 분석한 맹신자는 자신의 개인적 정체성에 불만을 느끼고, 대중운동에 참여함으로써 새롭고 집단적인 정체성을 찾으려는 사람이다. 흥미로운 점은 맹신자들이 한 운동에서 다른 운동으로 쉽게 전향한다는 것이다. 열성적인 종교인이 열성적인 공산주의자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 특정 이념이 아니라 소속감과 목적의식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라 정의하지만, 이는 어느 정도 착각일 수 있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무비판적으로 정보를 수용하고, 믿고, 추종한다. 이러한 성향을 자각하고 경계하지 않으면, 누구나 맹신자가 될 수 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것과 사회 구조가 할 수 있는 것의 한계는 명확하다. 각자도생 해야 하는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각자도생이라는 말만으로는 어쩐지 서늘하다. 답답한 이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콜린스가 제시한 지혜의 원천들을 톺아 보며, 변화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겠다. "어둠으로는 어둠을 몰아낼 수 없고, 오직 빛만이 어둠을 몰아낼 수 있다"는 마틴 루터 킹의 말을 생각하며, 우리 각자가 그 빛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때이다. 그것은 작은 변화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겠다.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 겨울이 지나지 않은 듯 느껴지는 3월의 어느날. 마침내 도래할 따뜻한 봄날을 그리워하며 책장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