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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를 믿다
나스타샤 마르탱 지음, 한국화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시골로 이사 온 지 이제 4년이 되었다. 나에게 타자란 단순히 다른 사람들이었다. 도시 근교 시골이라 해도, 자연 속에 터를 잡은 이 공간에서의 삶은 인간이 아닌 수많은 타자들과 마주하게 해주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달려가는 고라니, 여름 밤의 호랑지빠귀 울음소리, 잔디 위에서 경계하는 유혈목이(꽃뱀)까지. 이곳에선 자연의 다양한 생명체들과 일상을 공유한다. 아파트처럼 경계를 명확히 구별하며 살 수 없다. 인간이 먼저 그들의 공간을 침범했고, 그들은 단지 삶을 이어갈 뿐이다. 우리 공간은 때로 그들의 통로가 되고 쉼터가 된다. 자연 속 삶은 이런 불분명한 경계를 받아들이고 다양한 생명체와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우리가 이 공간의 유일한 주인이 아님을 깨닫는 중이다.
이런 공존의 경험을 가지고 나는 나스타샤 마르탱의 『야수를 믿다』를 읽게 되었다. 시베리아 캄차카 반도에서 곰의 습격을 받고 생사의 기로에 선 인류학자의 이야기는 단순한 생존담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그 '중간 지대'에서 발견하게 되는 새로운 존재 방식에 관한 성찰이었다.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수많은 타자를 만난다. 때로는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사고를 당하기도 하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에 상흔이 남게도 된다. 이러한 경험들은 우리의 존재에 깊은 자국을 남기고,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 짧게 자란 풀들로 뒤덮인 평원은 붉고, 내 손도 빨갛고, 부풀고 찢긴 얼굴은 더는 전과 같지 않다. 신화의 시간처럼 불분명함이 지배하고, 나는 얼굴에 벌어진 틈으로 인해 윤곽이 사라진, 체액과 피로 덮인 모호한 형상을 하고 있다. 이는 하나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결코 죽음은 아니기에."
타자와의 예기치 못한 충돌이나 조우는 단순한 외상을 넘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관계 맺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관계 맺는 방식 자체를 뒤흔들어 놓는다.
『야수를 믿다』가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통찰은 이런 변화를 단순한 피해나 트라우마로 축소하지 않는 태도다. 마르탱은 자신의 변화된 몸과 정신을 "의미론적 공백"에 거주하는 기회로 받아들인다. 타자와의 만남에서 오는 변화를 단순히 원래 상태로 되돌려야 할 손상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변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녀의 직업도 신기하고 낯선 것이었지만, 사고 후에 자신의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고자 안주하지 않고 다시 캄차카로 돌아가기로 한 그녀의 결단이 더욱 놀라웠다. "수많은 생명체와 호흡하는 법을 아는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그녀는 트라우마의 현장으로 자발적으로 돌아간다.
그녀에게 캄차카 반도는 상처를 입은 곳이자 동시에 치유의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곰의 흔적을 지닌 그녀는 에벤인들의 전통적 세계관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존재가 되었고, 이를 통해 서구 문명 안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정체성의 가능성을 그 낯선 땅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곰의 습격으로 침투 받은 내면과 상처를 모두 받아들이게 된다. 그 변화를 거부하거나 이전의 자아로 돌아가려 하지 않고, 새롭게 태어난 자신을 온전히 수용한 것이다.
"숲에 사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다음과 같다. 수많은 생명체 중의 하나가 되는 것. 그들과 함께 동요하는 것."
『야수를 믿다』는 생존기를 넘어 상처를 통한 변신의 기록이다. 그 어떠한 변신 속에서도 자신을 받아들이고 자연 속에 하나의 생명으로서 다른 존재들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여정, 이 책은 인간과 자연, 상처와 치유, 존재와 변신의 경계에서 발견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들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