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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 전집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32
이솝 지음, 아서 래컴 그림,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쓴 리뷰임
누구나 어떤 경로로든 이솝 우화를 접해봤을 것이다. 책으로 봤거나, 만화로 봤거나, 이야기로 들었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우화를 알고 있다면 그건 이솝 우화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원작 우화만 해도 무려 358편이나 되니까.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제법 두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2016년 11월 16일에 민음사의 <이솝 우화>를 읽어보았다. 그 책은 246쪽 밖에 되지 않아서 딱 그 정도 분량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번에 읽은 현대지성의 <이솝 우화 전집>은 435쪽이다.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싣기 위해 노력한 것 같은데, 읽어보니 처음 보는 이야기도 많아 좋았다. 아무래도 독자 입장에선 읽을 거리가 풍부할수록 좋다.
풍부한 이야기와 더불어 눈에 띄는 것은 일러스트다. 20세기에 활약한 아서 래컴 외에도 다양한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이 실려 있다. 책 내용과는 별개로 일러스트를 보는 것만으로도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오늘날 일러스트와는 확실히 스타일이 다르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일러스트도 있다. 예를 들면, 톰 소여의 모험이나 허클베리핀의 모험에서 보았던 펜화 느낌의 작품이라든지. 아마 그 그림을 그린 일러스트레이터는 당대에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우화의 내용은 단순하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건 길어봤자 2쪽이고 대부분 1쪽이다. 그마저도 꽉 채우지 못 해 여백이 많다. 그런데 이렇게 짧은 이야기에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각 이야기마다 교훈이 적혀 있는데, 역자가 쓴 게 아니라 이솝 우화를 읽은 후대 사람들이 쓴 것이라고 한다.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 교훈도 더러 있지만 이를 통해서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을 짐작할 수 있다.
이솝, <이솝 우화 전집>, 현대지성, 2020, 77쪽
51
허풍쟁이
유명한 로도스 이야기도 실려 있다. 멀리 뛰기 선수가 자신의 고향 로도스에서는 아주 먼 거리를 뛰었다며 허풍을 떨자, 어떤 사람이 그에게 이곳이 로도스라고 생각하고 한 번 뛰어 보라고 했다는 이야기. 교훈에는 '행동으로 증명할 수 있다면 온갖 말을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라고 되어 있는데 허풍을 경계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솝, <이솝 우화 전집>, 현대지성, 2020, 83쪽
57
사람들과 제우스
이 이야기는 교훈보다는 제우스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너는 선물을, 게다가 가장 큰 선물을 받았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하는구나. 너는 이미 말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말은 신들에게도 힘을 행사할 수 있고 사람들에게도 힘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다른 힘 잇는 것보다 더 힘 있고, 다른 빠른 것보다도 더 빠르지."
분명 인간은 동물 중에서도 나약한 존재다. 하지만 말을 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기에 서로 힘을 합해 태생적인 나약함을 극복할 수 있는 거라고 믿는다. 인간의 언어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솝, <이솝 우화 전집>, 현대지성, 2020, 105쪽
73
북풍과 해
'햇볕 정책'으로도 유명한 그 이야기다. 나그네의 옷을 벗긴 건 매서운 북풍이 아니라 따뜻한 해였다는 이야기. 이 이야기를 통해 때론 유화적인 대응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교훈은 각종 인간관계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솝 우화를 읽다보면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왜 굳이 동물과 해 같은 자연물이나 북풍 같은 자연 현상을 의인화해 이야기를 만든 걸까? 물론 '허풍쟁이'처럼 사람이 등장하는 이야기도 많지만 대부분은 사람 대신 동물이 등장한다.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의인화된 대상이 지니고 있는 특징을 생각하면 알 수 있다.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이솝 우화에 자주 나오는 동물은 성격이 고정되어 있다. 뱀은 사악한 동물로, 여우는 꾀가 많은 동물로, 사자는 용감한 동물로 묘사된다. 아무래도 당시 사람들이 각각의 동물에 느꼈던 것들이 그대로 반영된 듯하다. 반면 사람은 성격이 다양하다. 지혜로운 사람도 있고, 멍청한 사람도 있고, 선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다. 우화에서 사람이 등장하면 그 사람이 어떤 성격인지 바로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동물은 대부분 성격이 고정되어 있으니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주인공을 사람으로 설정했을 때보다 성격을 더욱 부각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효과적으로 교훈을 전달할 수도 있다.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에서 동물을 의인화하여 전체주의를 풍자하기도 했다. 요즘에도 각국의 리더와 정치인들이 동물로 풍자되는 경우가 많은 걸 생각하면 왜 이솝 우화에 동물이 많이 등장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해 더 효과적으로 비판할 수 있고, 풍자의 대상이 된 인물로부터 받게 될 공격을 줄일 수 있다는 게 풍자의 장점이다.
출판사의 책 소개에 의하면, 이솝 우화는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에도 탐독했던 책이라고 한다. 무지한 아테네 시민들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은 소크라테스가 이 우화들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야기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주인공들을 보며 아테네 시민들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2020년 11월 29일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