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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일곱의 나는 어땠을까. 나는 내 인생이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소설에 나올 이야기는 아니고 뉴스에 나올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아직 살 날이 많이 남았지만 말년에 내 인생을 되돌아 본다면 분명, 그저 그런 인생이었어, 라고 자조하며 먼 산을 바라볼 테지. 그러나 이 평범한 인생을 살면서도 나는 끊임없이 좌절하고 괴로워했다. 목적지가 어디든 그 곳으로 가는 길은 절대로 평탄하지 않았다. 인생에 별 굴곡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조차도 이런데 다른 사람은 오죽할까. <유원>은 트라우마를 등에 업고 삶의 무게를 위태롭게 버텨내는 열일곱 살의 이야기다.
청소년기에는 누구나 자아에 관한 사려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 것인가. 삶이 유한하다는 걸 깨닫고, 인정하고, 납득하게 되면 인생의 의미를 반추하기 시작한다. 이 짧은 인생에서 나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과연 나는 이 세상에 살아갈 가치가 있는가.
'유원'은 화재 현장에서 겨우 살아난 아이다. 기억도 나지 않는 아득한 옛날에 11층 높이에서 떨어지고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아저씨에 의해 구조되었다. 언니는 그렇게 동생 유원을 살리고 뜨거운 불길 속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때부터 유원의 삶은 늘 두 사람의 무게 만큼 무거웠다. 아니, 유원을 받아내느라 하반신 불구가 된 아저씨까지 합해서 세 사람. 그래서 유원은 허투루 살 수가 없었다. 유원은 늘 죽은 언니와 장애인이 된 아저씨를 의식해야 했다. 순전히 자신의 몫 만큼만 살아야 하는데 그럴 수 없었다. 유원은 생각했을 것이다. 이게 나의 인생인지, 언니의 인생인지, 아저씨의 인생인지.
'높은 곳에 서려면 언제나 용기가 필요했다.' 친구들과 일부러 거리를 두던 유원은 우연히 옥상에서 수현을 만나고 서서히 마음을 열어간다. 옥상에서 하늘과 땅을 바라보는 유원은 잠시 동안이지만 자유를 얻는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경험이 있는 유원이 수현을 만나는 장소가 옥상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트라우마의 극복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은 당연히 후반부의 패러글라이딩이다. 유원은 추락한다. 집에 불이 나던 그때처럼. 하지만 이번에는 낙하산이 있다. 패러글라이더가 언니로 바뀌고, 늘 부담이었던 언니의 존재가 반갑게 다가온다. 남의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유원은 살아남은 자가 가져야 할 '마땅한 죄책감'을 훌훌 털어버리고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가게 된다. 유원이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수현. 결국 상처를 회복하려면 타인을 의지하고 타인과 소통해야 하는 게 아닐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홀로 속앓이하던 유원이 안쓰러워진다.
분명 이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기댈만한 구석 하나 쯤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나의 유원을, 나의 수현을 찾고 싶다.
2020년 6월 26일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