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일기 - 공포와 쾌감을 오가는 단짠단짠 마감 분투기
김민철 외 지음 / 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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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마감은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다. 나의 마감이 늦어지면 다음 사람이 마감을 맞추느라 자신의 시간을 갈아 넣어야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아는 것. 나의 일상이 중요한 것처럼 그들의 일상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매 순간 자각하는 것. 더 고민해보고 싶고, 더 써보고 싶고, 끝까지 붙들고 해보고 싶지만, 그리고 그러다 보면 정말 대단한 아이디어가 나올 것 같은 착각도 들지만, 지금까지 최선의 지점에 멈춰서는 것. 다음 사람을 믿고, 지금까지의 최선의 공을 던지는 것. 그것이 마감의 규칙이다.

중요한 지점은 '지금까지의 최선의 공'이다. '지금까지 누구도 못 던진 대단한 공'이 아니라. (김민철, 마감근육, 19쪽)




내가 있는 바닥(?)도 마감이 일상이다. 발표 원고 마감, 강좌 강의안 마감, 게재 원고 마감, 토론문 마감, 시험 성적 마감 등등... 여기서도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중요하다. 나의 원고 마감이 늦어지면 토론자가 준비할 시간이 사라지고, 게재 원고 마감을 어기면 편집부에서 죽어나기 때문이다. 시험 성적 마감? 유학이나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전설이 되는 것은 마감을 잘 지킨 이가 아니라 어기는 이들이다. 학회 간사 시절 마감을 칼 같이 지키는 선생님도 몇 분 보았지만, 더 자주 보았던 것은 마감을 어기는 분들이었다. 해도해도 너무하는 것 같아서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하면, "몰랐어? 그 분이 말야..."하면서 전설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긴 나도 발표문 요지조차 받지 못한 채, 발표장 현장에서 발표 내용을 듣고 토론을 해야했던 경험이 있다(그것도 두 건의 발표에 대한 토론을 해야했는데, 두 발표자 모두 내게 원고를 주지 않았다). 발표 제목만 알고서 발표장에 간 토론자. 아무리 뛰어난 토론자라 할지라도 이럴 때는 발표자와 '연결'될 수 없다.



하지만 정작 무서운 마감은 따로 있다. "지금까지 누구도 못 던진 대단한 공". 그러니까 누구도 보지 못한 공을 던지는(?) 마감. 바로 학위논문 마감이다. 앞서 언급한 원고와 달리, 학위논문에는 마감이 없다. 아, 물론 최대 등록학기라든가, 학위 논문 제출 마감일자 같은 행정적인 마감이야 존재하지만, 언제까지 논문을 꼭 써야 한다는 구체적인 마감이 없다는 얘기다. 박사보다 박사수료가 더 많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게으름으로 미루는 탓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조금 더' 혹은 '아직은...'이 발목을 잡는다. 자료를 조금 더 보고, 아직은 준비가 덜 되었으니... 운운. 게다가 박사수료쯤 되면 생계를 위해 직업을 갖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논문을 마감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안 생기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엔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살리기도 곤란하다. 대체 내 학위논문따위가 어떤 타인과 연결되어 있단 말인가? 이럴 때는 '과거의 나' 혹은 '미래의 나'라는 타인과 연결해야만 한다. 다시 말하자면, 절대적인 고독과 직면해야 하는 것이다.



그때 생애에서 가장 중대한 첫 마감을 앞두고 있었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무엇을 마감하기 위해서는 그 마감 앞에서 혼자여야 한다는 걸, 절대적인 고독이 필요하다는 걸, 그것은 누구와 나눌 수도 없고 나누어서도 안 되며 심지어 누구에게 엿보이거나 들켜서도 안 되는 나만의 내밀한 직면이어야 한다는 걸. (권여선, 스물에도, 마흔에도 마감, 79쪽)



글쓰는 사람만이 마감에 쫓기는 건 아닐 것이다. '삶을 마감하다'라는 표현을 쓰듯이, 세상에는 매조져야할 일이 가득하고 그 종류도 다양하기 짝이 없다. 이 책의 저자들은 모두 작가들이지만, 마감일기를 마감한 방식도 가지각색이다. 특히 첫 세 편의 글이 좋은데, 마감으로 글을 쓰긴 했으나 모두 다른 맥락에서 이야기하기에 흥미롭다. 마감에 쫓기는 와중에 한 편씩 곶감 빼먹듯 읽어나가기 좋은 책. 실제로 나도 마감 중에 조금씩 읽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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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우가 연주하는 슈만 [2CD] - 아베크 변주곡 Op.1, 숲속의 정경 Op.82, 어린이의 정경 Op.15, 유령 변주곡 WoO 24, 다채로운 소품집 Op.99 외
슈만 (Robert Schumann) 작곡, 백건우 (Kun-Woo Paik) 연주 / 유니버설(Universal)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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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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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만독자의 선택★ (특별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세트 전20권+CU2000
휴머니스트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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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선물용으로 재구입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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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사랑 - 몸과 마음을 탐구하는 이슬아 글방
이슬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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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 뚜벅뚜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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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 치즈 맛이 나니까 치즈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 띵 시리즈 5
김민철 지음 / 세미콜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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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한번쯤, 이런 경험이 있지 않을까? 오랜만에 연애를 시작한 뒤, 친구들과 함께 만나는 자리. 적당히 예의를 갖춘 말이 오가고, 깍듯한 예의를 아주 살짝 덜어내기만 해도 웃음이 오가(주)는 아주 어색한 자리. 조금 시간이 지나면, 으레 친구들이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얘의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대요?"

뭐 또 다들 잘 알고 있을 테지만, 간단해 보이는 이 질문을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답을 잘 해야만 한다. 자칫했다간 그 모임의 분위기도 싸해질뿐만 아니라, 잘 진행 중이던 연애가 덜컹거리기도 할 테니까(이런 위험천만한 질문을 왜들 하는 걸까? 복수?). "그냥 좋아요." "뭐, 말이 필요한가요." 같은 답은 손해 볼 것은 없지만 그만큼이나 성의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 질문에 정답이 있을 리도 없다. 그럼에도 이 또한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멋지거나 진솔하고 감동적인 답을 내놓는 사람도 분명 있다. 그래, 물론 사랑을 말로 어찌 다 표현하랴만, 시도조차 않는 성의라면 의심 받을만도 한 사랑인 것이다. 구겨진 편지지 없이 애절한 연애편지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잠깐, 나는 뭐라고 했더라...).

여기, 치즈에 대한 사랑을 찐하게, 하지만 무겁거나 느끼하지 않게 피력한 글이 있다. 치즈에 열광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내가 바로 장본인),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 그저 치즈 예찬의 연속이거나 치즈 백과사전이었다면 단박에 다 읽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치즈에 대한 책이기도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따뜻하고, 웃기고, 때로는 슬쩍 그늘진 이야기.

당신도, 당신에게 맞는, 단순하고도 즉각적이며 쉬운 위로 하나를 꼭 찾았으면 좋겠다. (148쪽)

쉽지만 소중한 위로. 나에게는 무엇인가?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능력이다. 조금은 수다스럽게 좋아하는 것과 그것에 얽힌 기억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또한 능력. 어쩔 수 없이 지쳐가는 요즘, 나에게 필요한 능력이 아닐까, 읽으며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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