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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꽃나무 (한정판) - 우리시대 소금꽃나무들을 응원하는 한정 특별판
김진숙 지음 / 후마니타스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잎사귀도 없이 꽃만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나무를 본 적이 있는가.
황금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를 본 적이 있는가.
아침 조회 시간에 사람들이 '나래비'를 죽 서있으면 그들의 등짝엔 허연 소금꽃이 만개하곤 했다.
내 뒤에 선 누군가는 내 등짝을 또 그렇게 보며
"'화이바' 똑바로 써라. 안전화 끄내끼 단디 매라. 작업복 단추 매매 채아라."
그 지엄하신 훈시를 귓등으로 흘리고 있었을 게다.
이른 봄 피어나기 시작해서 늦가을이 되어서야 서러이 지는 꽃.
이 책을 읽으려고 꺼내들었던 것이 2달 전이었던가. 그리 분량이 많지도 않은 책인데 읽는데 참 오래도 걸렸다.
책이 좋지 않아서, 재미가 없어서, 이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생각없이 새벽 3시에 책을 집어들었다가 30분을 읽고 잠을 이루지 못한 밤도 있었으며,
이 책이 주는 무거움을 감당할 자신이 생기지 않아서 다시 쉽게 책을 손에 쥐지 못한 탓이다.
그러다가 울산으로 가는 심야열차에 몸을 싣고는 책을 다 읽은 후, 들어가 한숨을 몇 번 내쉬고는 책 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인간이 인간으로 사는 것이 왜 이다지도 힘든 일인 건가.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여성 최초의 용접공. 20년이 넘도록 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해고 노동자.
이런 경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녀의 삶, 노동자의 삶이 이 책에 녹아들어가 있다. 혹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그 사람 나가고 다시 그 사람들. 생각 좀 해봤나? 기억이 나제? 우리도 니한테 이라고 싶겠나? 말해야 뭐하노? 조지는 김에 확 조져 삐야 된다니까. 골수 뻘개이들도 첨엔 다 모린다 카지. 조지야 아이구 할배요 카제.
그 눈빛들. 스무개 가까이 되는 눈들은 각자 다른 눈이었지만 같은 빛깔로 번득이고 있었다. 묘한 비웃음을 담고 붉게 번들거리든 그 눈빛들. 그들은 또한 씨발년과 김진숙 씨의 절묘한 차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 지옥과 천당의 차이를.
씨발년이었던 어느 시점에선가 오줌을 쌌다. 이 씨발년, 드럽게 오줌을 싸고 지랄이고. 재수없는 년, 골고리 지랄벵하네. XX를 확 잡아 째버릴라. 어디 뻘개이 년은 XX도 빨간가 함 보자. 내가 오줌을 쌌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들 중엔 껌도 씹었고, 자기 딸 얘기도 했고, 지리한 대원사 계곡에서 좃 내놓고 미역 감은 얘기도 했다. 처음엔 그게 위안 같기도 하고 구원 같기도 하고 그랬다. 그들도 사람이라는 사실이, 같은 인간끼리니까 어쩌면 통할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입에서 나는 김치 냄새조차 절망이 되어 갔다. 저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이, 인간이 인간한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그 몸서리쳐지는 사실이, 무엇보다 내가 여기에 온 걸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는 절망이었다.
중간에는 집회장에서 직접 외쳤던 김진숙의 추모사를 모아놓았다.
그 중 2003년(1983년이 아니고 2003년이다!) 노동자 배달호 씨의 노제 뒤의 짦은 추신은 또 다시 책을 덮게 만들었다.
<추신> 박창수의 무덤이 빤히 바라뵈는 곳에 배달호 열사를 묻고 와서 이빨까지 빠지는 듯한 심한 몸살에 시달렸습니다. 난 언제까지 이런 추모사를 쓰며 살아야 하나......
모르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 이라고 하기엔 우린 너무 비겁하다. 조금만 관심만 가지만 알 수 있을 일들이다.
우린 그저 불편하다는 이유로 시선을 돌린다. 알아서 뭐하냐고 할 수도 있으리라. 내가 아직 어리다라고 비난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지인들이여. 당신이 회사에서 부당한 일을 당할 때, 내가 그렇게 이야기해서야 되겠는가.
강사로 길고 긴 시간을 보낸 뒤,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밖에 없었던 이가 나라면, 당신이 그렇게 이야기하겠는가.
힘든 일인 것, 안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 고통스러운 현실과 고통받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
당장 그들과 함께 비를 맞으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냉소를 보내지 말자. 하다 못해 술자리에서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자.
내 일이 아니라고 백안시하는 순간, 다음 타겟은 내가 될지도 모른다.
저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여전이 이 글은 유효하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잡아 갔을때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사민주의자들을 가두었을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체포했을때
나는 항의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대인을 잡아갔을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나를 잡아 갔을때는
항의할 수 있는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정말 불편한 책이고 힘든 책이다. '그러니' 일독을 권한다.
그것이 유서를 꾹꾹 몸에다 눌러 쓸 수 밖에 없었던 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권미경이라는 노동자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열세 살때부터 홀어머니와 정신이 온전치 못했던 오빠와 어린 동생 둘을 먹여 살리는 가장이 되어야 했습니다. 글재주가 유난했던 영민한 아이였습니다. 똑똑하면 안 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똑똑하다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혹시 아십니까?
미싱만 잘 밟으면 되는 공순이가 그림 잘 그리는 저주를 받아 초등학교 6년 내내 게시판에 걸렸던 그림을 기억해야만 하는 것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혹시 상상해 보셨습니까? 미경이의 글재주는 작업 시간에 빵 먹었다고 조장한테 터지고 온 날, 구비구비 서러운 일기를 써 내려가는 데 밖엔 써먹을 데가 없었습니다. 매일매일이 유서 같았던 일기장을 몇 권이나 남겨 놓고 공장 옥상에서 고단하기만 했던 스물두 살의 몸뚱이를 끝내 날렸던 미경이의 유서는 그러나 막상 짧기만 했습니다. "......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라고 왼쪽 팔뚝에 볼펜으로 비명처럼 새겨넣고 갔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이여
나를 이 차가운 억압의 땅에 묻지 말고
그대들 가슴 깊은 곳에 묻어 주오.
그때만이 우리는 비로소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으리.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더 이상 우리를 억압하지 말라.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 _권미경의 왼손 팔뚝에 쓰인 유서
남의 일.. 이라고? 우리 어머니는 서울 어느 공단에서 저 또래보다 더 어릴 때 미싱을 배웠다.
어머니의 언니는 버스 안내양을 하기도 했다. 내 아버지는 한 회사의 노조 부위원장이었다.
그들은 김진숙 씨가 써내려간 일들을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마도 그랬을 거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나는 차마 묻지 못했다. 세월 속에 묻어두었을 수도 있을 그들의 상처가 다시 드러날까봐.
이미 흑백이 되어버린 그들의 상처가 울긋불긋 컬러가 되어버릴까봐.
그리고 나는, 그들의 상처와 비슷한 상처들이 곳곳에서 나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비록 지금 그 때 그 사람들이 되려 보수적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상처들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불편하다고 고개돌리기엔, 고개 돌릴 곳이 마땅치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