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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교양강의 ㅣ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4
리둥팡 지음, 문현선 옮김 / 돌베개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말은 '교양강의'인데 페이지가 무려 600페이지가 넘어가는 책이라, 자기 전에 조금씩 조금씩 읽어서 이제 완독. 왠만한 사람이라면 삼국지는 한 번쯤 읽어보았을 것이고(특히 남자의 경우), 읽지 않았더라도 그 속에 나오는 주요 장면들은 어디서든 들어서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오랜 세월동안 인기를 누렸던 책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삼국지연의'를 역사서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저자인 리둥팡은 역사학자로서 그런 착각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그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이야기체'로 삼국시대의 역사를 강연했는데, 그것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저자가 역사학자인만큼, 고증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여러 사료를 대조한다던지, 연의에 기록된 자극적인 내용이 왜 사실이 아닌지를 증명한다. 또한 증거 부족으로 심증만 가는 부분은 청중들에게 솔직히 털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이 삼국지연의보다 재미가 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소설과 강의록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될지는 모르나, 역사가의 입장에서 이런 결과는 꽤 아픈 것이다.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자해야만 하는 고증 작업을 거쳐 대중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려고 하지만, 대중들은 '사실'에 관심이 없다. 한 인물의 전형적인 캐릭터,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내러티브에 관심이 있을 뿐,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닥 관심이 없는 것이다. 아니, 흥을 깨는 '사실'이라면 대중들은 이미 거부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책에는 장완, 비위 등에게도 한 챕터를 할애하여 서술을 하는데, 장비, 관우, 조운, 하후돈 등의 인물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미 연의에 익숙해진 독자라면 이런 구성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삼국지의 경우 고대 역사이기 때문에 이런 경향이 더 심하게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다. 장비가 무식했든 아니었든 그건 내 현재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면 이 역사는 정말 말 그대로 '흥미거리'이기 때문이다. 반면 역사가에게는 고대의 역사라할지언정(특히 그것이 자신의 전공이라면) 그것을 흥미거리로 치부할 수 없다. 바로 이 거리만큼이나 역사가와 대중은 멀리 떨어져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해결하기가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 생각에는 이 책이 (대중에게 접근한다는 면에서) 전략적으로 좋은 선택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특히나 '연의'라는 터줏대감이 자리하고 있는 분야라면, 굳이 이 연의를 '적'으로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닐까? 경극이나 소설은 그대로 인정하고 또 활용하되 역사의 길을 따로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TV 드라마 속의 고증이 잘못되었다고 흥분해봐야 그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줄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대중에게 더 가깝고 인기가 많은 매체들을 제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인 리둥팡 선생은 경극을 '적'으로 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경극에 과장과 왜곡이 없다면, 그래서 그 어떤 기승전결도 없다고 하면, 그게 어찌 경극이겠는가? 이 부분에서는 좀 '쿨'한 태도가 필요한 것 같다. 물론 리둥팡 선생이 이미 두 세대 쯤 전의 역사학자라는 것을 감안해야겠지만, 어쨌든 오늘의 역사가 입장에서는 그러하다. 대중을 심판가로 놓고 경극과 진검승부를 하려고 해봐야 내 생각에는 역사가의 패배가 너무나도 자명하다. 역사가에게 어울리는 전장도 아닐뿐더러, 싸워서 얻을 것도 별로 없다. 그렇다면 다른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게다가 '사실'과 '고증'을 중요시한다고 그렇게 강조를 하지만, 결국 저자의 관점도 절대적으로 객관적일 수 없다. 곳곳의 서술을 보면 기존에 존재하던 왕조인 '한'을 지키는 것이 '대의'요, 그것을 뒤엎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관점을 고수하는데, 저자의 이런 관점을 객관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내가 여기서 저자의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객관성의 결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관적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약간 더 넓은 시야로 지난 세월의 사회와 인간들을 바라보는 일을 하는 역사가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이것이다. 한 사건과 인간의 다면성, 이런 것들을 통찰하다보면 마치 자신이 '신'이 된듯한 착각을 하게된다. 착각을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착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는 순간, 위험한 길로 들어서게 된다. 자신의 역사가이므로 객관적이고, 역사가가 아닌 사람들이나 역사가의 관찰 대상이 되는 것들은 객관적일 수 없다는 착각. 이 착각이 때로는 '역사관'으로 포장되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착각은 착각인 셈이다.
그래서 이 책은 분량만큼이나 지루한 면이 있다. 학술적인 책이 절대 아님에도 쉬이 책이 넘어가지 않는다. 특히 삼국지연의조차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책은 완독하기가 절대 쉽지 않다. 아마 시중에 나와있는 10권짜리 삼국지연의를 읽는 것이 더 쉽고 빠를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저자가 이야기체를 사용하여 대중에게 접근하는 방식은 높이살만 하다. 특히 진수가 썼다는 삼국지 정사를 자기 나름대로 비판하고 소화하여 전달하는 부분은 역사가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다. 즉, 정사라고 해서 100% 맞다고 주장하지 않고 텍스트 자체의 한계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한계를 인지하는 것이 단순히 진수가 책을 쓴 시기와 의도 등을 고려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중국 정사를 기록하는 체계였던 기전체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 부분을 보완하려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사건에 조조와 유비가 관련되어 있는데, 조조전에는 조조의 입장이 서술되어 있고 유비전에는 유비의 입장이 서술되어 충돌이 된다면 이는 다른 방식으로 고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충돌 자체가 사건이 단순하지 않음을 명확히 드러낸다. 하지만 기전체의 특성상 그 인물에 대한 것은 그 할당 부분만을 보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다른 부분을 함께 보며 전체적으로 판단을 하는 작업을 역사가가 해야하는 것이다. 리둥팡 선생은 이 작업을 차분히 해내고 있으며, 그것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까지 성공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삼국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추천할만한 책이 아니다. 다만 삼국지에 익숙하고, 연의보다 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사실을 알고 싶은 독자라면 일독할만 하다. 적벽대전이 결코 적벽대전이 아니라는 말에 귀가 솔깃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