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달랄이야! 너는? - 전쟁, 기아, 에이즈 등으로 고통 받는 제3세계 어린이들이 스스로 찾아낸 행복의 조각들!
오소희 지음, 김효은 그림 / 토토북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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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희 씨 특유의 따뜻한 시선에 그림까지 더해지니 감동이 더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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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의 밤 매그레 시리즈 6
조르주 심농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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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농, 열린책들. 무슨 말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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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기담 - 근대 조선을 뒤흔든 살인 사건과 스캔들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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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에서 나름 인기있는 분야가 바로 이런 종류의 책이다. '문화사' 혹은 '사회사', '미시사' 등의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책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사람 냄새나는 인문학'을 이야기한다.

 

  역사에서 말하는 위대한 삶이란 공적인 생활에 해당되는 것이고, 일상에서 말하는 성공한 삶이란 사생활에 해당되는 것이다. 인문학은 더 이상 인간다운 삶이니 인격적 완성이니 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공적인 삶을 끌어들이지 말아야 한다. 독립운동가니, 위대한 과학자니 하는 것은 인격적 완성의 궁극적 모습이 아니라 본받을 만한 공적인 생활의 전범일 뿐이다. 인문학의 현대적 가치가 물질 만능주의에 맞서 훼손된 인간성을 회복하는 데 있다고 떳떳이 주장하려면 인문학은 더 이상 사생활을 감춰둬서는 안된다. (345쪽)

 

하지만 그래서 이 책이 '훼손된 인간성의 회복'에 기여하고 있는가? 내가 보기에 이 책은 그 대단한 목적을 달성조차 하고 있지 못하며, 애초에 '인문학'이라는 말을 끌어들일만큼의 수준도 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가 '인문학'이 하나의 학문임을 완전히 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물론 저자의 말대로 학문에서 사람 냄새가 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게다가 그것이 인간과 인간의 사회를 연구하는 인문학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사람 냄새'라는 것이 학문적 엄격함과 정밀성을 놓아도 된다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결코 그래서는 안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사람 냄새 나는 무언가는 될지 몰라도 절대 '인문학'이 될 수 없다. 굉장히 보수적으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학문으로서 갖춰야할 최소한의 소양이란 게 있는 법이다. 이 책은 그 최소한의 소양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많은 자료를 읽어내는 성실함이나 여러 분야에 두루 관심을 가지는 지적 호기심은 인정하지만, 그것만으로 한 편의 좋은 글이나 좋은 책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인문학적 성취'는 말할 것도 없다. 일제강점기 안동에서 일어난 순사 살인 사건을 생생하게 재현해낸 뒤, 마무리하는 단락을 보라.

 

  국가 간 힘의 우열은 분명히 존재한다. 적어도 자기 나라 안에서는 부유하고 힘 있는 나라 사람이 가난한 나라 사람보다 안전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부유하고 힘 있는 나라의 관리나 백성이 가난한 나라에서 안전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다는 보장은 없다.

  부유하고 힘 있는 나라에서 기죽지 말아야 하듯, 가난하고 힘 없는 나라를 깔보지 말아야 한다. 이 땅에서 더 이상 가와카미 순사 같은 운명을 맞는 외국인이 나타나서는 안되고, 우리나라 사람이 남의 나라에 가서 사와카미 순사 같은 운명을 맞아서도 안된다. 이웃이든 이웃 나라든 서로 존중하며 사이좋게 살아야 한다. (78~79쪽)

 

왜 이 사건을 생생하게 재현한 것인가? 이웃사랑 실천을 설파하기 위해? 빚쟁이 윤택영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단락은 어떤가?

 

  오늘날 신용불량자의 숫자는 4백만에 달한다. 그 사람들 중에는 피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겠지만, 대책 없이 빚을 진 사람도 적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백화점과 술집에는 일단 긋고 보자는 '묻지마 카드족'이 넘쳐 난다. 돈이 필요한데 없으면 빌려야 한다. 하지만 빌리기 전에 먼저 갚을 궁리부터 해야 한다. '빚진 돈'은 분명 '내 돈'이 아니다.

  현재의 쾌락을 위해 미래를 좀벅지 말자. 명품 가방이 눈앞에 어른거리거든 '황제의 장인' 윤택영 후작의 비참한 도주 행각과 쓸쓸한 최후를 생각하자. 지금 당장 빚을 줄이자. (219쪽)

 

이쯤되면 실소가 나올 지경이다. 왜 이렇게 하나마나한 소리를 '역사'와 '인문학'을 들먹거리며 이야기하게 되는 걸까? 여러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왜?'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왜 이 사건, 이 시대, 이 인물이 연구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이다. 마냥 사람냄새 난다고 달려들 일이라면, 굳이 보기도 힘든 옛 신문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 저자의 말대로 살인 사건은 오늘 어디에서나 계속 일어나고, 빚쟁이는 여전히 넘쳐난다. 인터넷 검색을 해서 찾아봐도 될 일이다. 살인사건을 살펴봤다면, 왜 일제강점기의 살인사건인 건지, 그것을 통해서 어떤 특수성과 보편성을 엿볼 수 있는지를 명확히 밝혀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인문학'이 아니라 그냥 뒷담화일 뿐이다.

 

사소해보이는 것들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조명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그것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면, 독자들을 설득해야만 한다. 그것이 왜 사소하지 않고 눈여겨 볼만한 일인가를. 인문'학자'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수준 낮은 '훈계'를 하는 꼰대가 아니다. 우리가 그 훈계와 교훈을 몰라서 굳이 돈을 주고 책을 사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 시대에 대한 '디테일'을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중서'라는 타이틀과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디테일'은 묘하게 어긋나는 느낌이 든다. 대중서라고 해서 꼭 이렇게만 써야할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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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Machine Head - Unto The Locust
머쉰 헤드 (Machine Head) 노래 / Roadrunner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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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머신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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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교양강의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4
리둥팡 지음, 문현선 옮김 / 돌베개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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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교양강의'인데 페이지가 무려 600페이지가 넘어가는 책이라, 자기 전에 조금씩 조금씩 읽어서 이제 완독. 왠만한 사람이라면 삼국지는 한 번쯤 읽어보았을 것이고(특히 남자의 경우), 읽지 않았더라도 그 속에 나오는 주요 장면들은 어디서든 들어서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오랜 세월동안 인기를 누렸던 책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삼국지연의'를 역사서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저자인 리둥팡은 역사학자로서 그런 착각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그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이야기체'로 삼국시대의 역사를 강연했는데, 그것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저자가 역사학자인만큼, 고증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여러 사료를 대조한다던지, 연의에 기록된 자극적인 내용이 왜 사실이 아닌지를 증명한다. 또한 증거 부족으로 심증만 가는 부분은 청중들에게 솔직히 털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이 삼국지연의보다 재미가 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소설과 강의록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될지는 모르나, 역사가의 입장에서 이런 결과는 꽤 아픈 것이다.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자해야만 하는 고증 작업을 거쳐 대중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려고 하지만, 대중들은 '사실'에 관심이 없다. 한 인물의 전형적인 캐릭터,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내러티브에 관심이 있을 뿐,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닥 관심이 없는 것이다. 아니, 흥을 깨는 '사실'이라면 대중들은 이미 거부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책에는 장완, 비위 등에게도 한 챕터를 할애하여 서술을 하는데, 장비, 관우, 조운, 하후돈 등의 인물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미 연의에 익숙해진 독자라면 이런 구성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삼국지의 경우 고대 역사이기 때문에 이런 경향이 더 심하게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다. 장비가 무식했든 아니었든 그건 내 현재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면 이 역사는 정말 말 그대로 '흥미거리'이기 때문이다. 반면 역사가에게는 고대의 역사라할지언정(특히 그것이 자신의 전공이라면) 그것을 흥미거리로 치부할 수 없다. 바로 이 거리만큼이나 역사가와 대중은 멀리 떨어져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해결하기가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 생각에는 이 책이 (대중에게 접근한다는 면에서) 전략적으로 좋은 선택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특히나 '연의'라는 터줏대감이 자리하고 있는 분야라면, 굳이 이 연의를 '적'으로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닐까? 경극이나 소설은 그대로 인정하고 또 활용하되 역사의 길을 따로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TV 드라마 속의 고증이 잘못되었다고 흥분해봐야 그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줄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대중에게 더 가깝고 인기가 많은 매체들을 제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인 리둥팡 선생은 경극을 '적'으로 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경극에 과장과 왜곡이 없다면, 그래서 그 어떤 기승전결도 없다고 하면, 그게 어찌 경극이겠는가? 이 부분에서는 좀 '쿨'한 태도가 필요한 것 같다. 물론 리둥팡 선생이 이미 두 세대 쯤 전의 역사학자라는 것을 감안해야겠지만, 어쨌든 오늘의 역사가 입장에서는 그러하다. 대중을 심판가로 놓고 경극과 진검승부를 하려고 해봐야 내 생각에는 역사가의 패배가 너무나도 자명하다. 역사가에게 어울리는 전장도 아닐뿐더러, 싸워서 얻을 것도 별로 없다. 그렇다면 다른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게다가 '사실'과 '고증'을 중요시한다고 그렇게 강조를 하지만, 결국 저자의 관점도 절대적으로 객관적일 수 없다. 곳곳의 서술을 보면 기존에 존재하던 왕조인 '한'을 지키는 것이 '대의'요, 그것을 뒤엎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관점을 고수하는데, 저자의 이런 관점을 객관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내가 여기서 저자의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객관성의 결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관적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약간 더 넓은 시야로 지난 세월의 사회와 인간들을 바라보는 일을 하는 역사가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이것이다. 한 사건과 인간의 다면성, 이런 것들을 통찰하다보면 마치 자신이 '신'이 된듯한 착각을 하게된다. 착각을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착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는 순간, 위험한 길로 들어서게 된다. 자신의 역사가이므로 객관적이고, 역사가가 아닌 사람들이나 역사가의 관찰 대상이 되는 것들은 객관적일 수 없다는 착각. 이 착각이 때로는 '역사관'으로 포장되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착각은 착각인 셈이다.

그래서 이 책은 분량만큼이나 지루한 면이 있다. 학술적인 책이 절대 아님에도 쉬이 책이 넘어가지 않는다. 특히 삼국지연의조차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책은 완독하기가 절대 쉽지 않다. 아마 시중에 나와있는 10권짜리 삼국지연의를 읽는 것이 더 쉽고 빠를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저자가 이야기체를 사용하여 대중에게 접근하는 방식은 높이살만 하다. 특히 진수가 썼다는 삼국지 정사를 자기 나름대로 비판하고 소화하여 전달하는 부분은 역사가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다. 즉, 정사라고 해서 100% 맞다고 주장하지 않고 텍스트 자체의 한계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한계를 인지하는 것이 단순히 진수가 책을 쓴 시기와 의도 등을 고려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중국 정사를 기록하는 체계였던 기전체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 부분을 보완하려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사건에 조조와 유비가 관련되어 있는데, 조조전에는 조조의 입장이 서술되어 있고 유비전에는 유비의 입장이 서술되어 충돌이 된다면 이는 다른 방식으로 고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충돌 자체가 사건이 단순하지 않음을 명확히 드러낸다. 하지만 기전체의 특성상 그 인물에 대한 것은 그 할당 부분만을 보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다른 부분을 함께 보며 전체적으로 판단을 하는 작업을 역사가가 해야하는 것이다. 리둥팡 선생은 이 작업을 차분히 해내고 있으며, 그것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까지 성공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삼국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추천할만한 책이 아니다. 다만 삼국지에 익숙하고, 연의보다 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사실을 알고 싶은 독자라면 일독할만 하다. 적벽대전이 결코 적벽대전이 아니라는 말에 귀가 솔깃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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