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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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세상에는 수많은 기념일이 있다. 갓 사랑을 시작한 연인의 기념일부터 35년간의 식민통치가 끝난 그날을 기념하는 광복절처럼 국가적 차원의 기념일에 이르기까지, 기념일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우리가 이렇게 수많은 기념일을 만들고 그날에 무엇인가 특별한 행사를 진행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조금 달리 말하자면, 그날의 '위상'을 지키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념일은 우리의 망각, 혹은 사고의 단절을 적절히 변명해주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일 년 내내 단 한 번도 생각조차 하지 않다가 스승의 날에 선생님께 감사 전화 한 통 드리는 것으로 내 할 도리를 다 했다고 생각하는 나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기념일마저 없었더라면 일 년에 한 번도 연락드리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만, 그렇다고 기념일에만 반짝 감사하는 내 모습이 여전히 찜찜한 건 사실이다.

소설가 한강이 올해 5월에 새로운 소설책을 냈다. [소년이 온다]라는 얼핏 서정적인 제목과는 달리, 1980년 광주의 이야기다. 이 책이 5월에 출간되었다는 게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일 년 중 1980년 광주가 가장 많이 회자되고 기념되는 시기에 책을 출간하는 것이 당연할 테니까. "소년"이라는 단어 앞에 1980년 광주라는 수식이 붙는 순간, 비극은 더욱 처절해진다. 누군가는 '1980년 광주'를 수식이라고 말하는 건 잘못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은 소년과 소녀를 이야기한다. 정치나 체제보다는 개인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5월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이 사건이 한국사의 비극이기도 하지만 무수한 개인들의 비극'들'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5월을 기억하고 기념하고 있는가?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미 오래 전의 일이 아니냐고. 소설 속 등장인물은 "우리들을 희생자라고 부르도록 나둬선 안돼"라고 말했지만, 우리 사회는 그들을 희생자라고 부르기나 하는가? 1980년 광주는 결코 끝나지 않은 진행형의 비극이고 공포다. 비극을 만들어낸 장본인들은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얼마 전 그들은 국가를 상대로 연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 잔인한 행위와 명령과 복종을 몸으로 체험하고, 그 모든 것을 침묵으로 일관한 사람들이 버젓이 뒤섞여 함께 살고 있다. 아니, 그게 바로 우리다.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니냐고. 이 소설은 일부 부분을 제외하고 '나'라는 주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때의 오늘, 그리고 그때를 겪었던 사람들의 오늘은, 차마 "나"라고 칭하지 못할 "당신"들의 이야기다. 그러니 우리가, 아무 상관없는 우리가 아파해야 한다. 아무 상관없을 수가 없는데 아무 상관없었던 우리가, 죽어 죽지 못한 이들과 살아 살지 못한 이들을 위해 기억하고 아파해야 한다. 이 힘든 기억과 쓰라린 고통을 그들만의 몫으로 남겨놔서는 안 된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고 있는 걸 봤는데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떨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요즘 인터넷 상에서의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가 화제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 현대사에서는 아직 "잊히지 않을 권리"가 우선해야 한다. 5월이 아니기에, 이 글을 쓴다. 5월이 아니기에,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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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강화
이태준 지음, 임형택 해제 / 창비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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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강의. '시에는 지용, 문장에는 태준'이라는 말이 있었다니, 그의 말에 귀를 귀울이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예들을 보면 그의 독서량을 알 수 있고, 그를 통해 간략하게 전달하는 그의 글솜씨를 보면 그 주장 또한 신뢰가 간다. 몇 부분만 옮겨놓는 것으로 대신한다. 비록 오래된 책이지만, 글을 쓰는 이라면 한 번쯤 완독할만한 책이라 하겠다.

  명필 완당 김정희는 "난초를 그리는 데 법이 있어도 안 되고 법이 없어도 안 된다"고 했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23쪽)

'말 곧 마음'이라는 말에 입각해 최단거리에서 표현을 계획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문자는 살되 감정은 죽는 수가 많았다. 이제부터의 문장작법은 글을 죽이더라도 먼저 말을 살리는 데, 감정을 살려놓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28쪽)

알랭은 그의 [산문론]에서 산문은 도보요 운문은 무도라 했다. 우리는 볼일이 있어야 걷는다. 도보는 실용적인 행동이다. 춤은 볼일이 있어 하는 행동이 아니다. 흥에 겨워야 저절로 추어지는 것이다. 흥이 먼저 있고서야 나타날 수 있는 행동이다. (101쪽)

저쪽은 당사자로 이쪽보다 그런 정도의 생각은 각오한 지가 벌써 오랜 것으로 아는 것이 예의요 현명한 일이다. (126쪽)

'그 인물, 그 사건, 그 정경, 그 생각을 품은 내 마음'이 여실히 나타났나? 못 나타났나? 문장의 기준은 오직 그 점에 있을 것이다. 문장을 위한 문장은 피 없는 문장이다. 결코 문장 혼자만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이 먼저 아름답게 느낀 것이면, 그 마음만 여실히 나타내어보라. 그 문장이 어찌 아름답지 않고 견딜 것인가? (226쪽)

  있어도 괜찮을 말을 두는 너그러움보다, 없어도 좋을 말을 기어이 찾아내어 없애는 신경질이 글쓰기에선 미덕이 된다. (230쪽)

슬픔도 너무 크면 울음이 나오지 않는다. 기쁨도 너무 크면 말이 막힌다. 심각한 것일 수록 첫솜씨엔 부적당하다. (236쪽)

  제재가 재미있어야 재미있고, 제재가 슬퍼야 슬플 수 있는 것은 신문기사 뿐이다....(중략)
... 요점은 자기가 관찰하고 느끼기에 달린 것이다. 그러니까 더욱 요점은, 자기가 넉넉히 느낄 수 있는, 요리할 수 있는, 제힘에 만만한 것으로 택하는 것이 상책이다.
  한알 씨앗에서 싹이 트고 가지가 뻗고 꽃이 피듯, '귀뚜라미'란 제목에서 시작해 세상의 가을을 향해 번져나가는 글이라야지, 허턱 '가을'이라고 대담하게 제목을 붙였다가 '귀뚜라미'로 쫄아드는 글은 소담스럽지 못한 법이다. (238~239쪽)

문제란 사회적인 언어를 개인적이게 쓰는 것이다. (322쪽)

이런 글을 쓰던 이가 북에서 숙청당했다는 건, 안타깝게도 왠지 이해가 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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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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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하게 소년이 온다. 이제 우리가 더 다가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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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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