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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강화
이태준 지음, 임형택 해제 / 창비 / 2005년 3월
평점 :
문장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강의. '시에는 지용, 문장에는 태준'이라는 말이 있었다니, 그의 말에 귀를 귀울이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예들을 보면 그의 독서량을 알 수 있고, 그를 통해 간략하게 전달하는 그의 글솜씨를 보면 그 주장 또한 신뢰가 간다. 몇 부분만 옮겨놓는 것으로 대신한다. 비록 오래된 책이지만, 글을 쓰는 이라면 한 번쯤 완독할만한 책이라 하겠다.
명필 완당 김정희는 "난초를 그리는 데 법이 있어도 안 되고 법이 없어도 안 된다"고 했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23쪽)
'말 곧 마음'이라는 말에 입각해 최단거리에서 표현을 계획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문자는 살되 감정은 죽는 수가 많았다. 이제부터의 문장작법은 글을 죽이더라도 먼저 말을 살리는 데, 감정을 살려놓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28쪽)
알랭은 그의 [산문론]에서 산문은 도보요 운문은 무도라 했다. 우리는 볼일이 있어야 걷는다. 도보는 실용적인 행동이다. 춤은 볼일이 있어 하는 행동이 아니다. 흥에 겨워야 저절로 추어지는 것이다. 흥이 먼저 있고서야 나타날 수 있는 행동이다. (101쪽)
저쪽은 당사자로 이쪽보다 그런 정도의 생각은 각오한 지가 벌써 오랜 것으로 아는 것이 예의요 현명한 일이다. (126쪽)
'그 인물, 그 사건, 그 정경, 그 생각을 품은 내 마음'이 여실히 나타났나? 못 나타났나? 문장의 기준은 오직 그 점에 있을 것이다. 문장을 위한 문장은 피 없는 문장이다. 결코 문장 혼자만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이 먼저 아름답게 느낀 것이면, 그 마음만 여실히 나타내어보라. 그 문장이 어찌 아름답지 않고 견딜 것인가? (226쪽)
있어도 괜찮을 말을 두는 너그러움보다, 없어도 좋을 말을 기어이 찾아내어 없애는 신경질이 글쓰기에선 미덕이 된다. (230쪽)
슬픔도 너무 크면 울음이 나오지 않는다. 기쁨도 너무 크면 말이 막힌다. 심각한 것일 수록 첫솜씨엔 부적당하다. (236쪽)
제재가 재미있어야 재미있고, 제재가 슬퍼야 슬플 수 있는 것은 신문기사 뿐이다....(중략)
... 요점은 자기가 관찰하고 느끼기에 달린 것이다. 그러니까 더욱 요점은, 자기가 넉넉히 느낄 수 있는, 요리할 수 있는, 제힘에 만만한 것으로 택하는 것이 상책이다.
한알 씨앗에서 싹이 트고 가지가 뻗고 꽃이 피듯, '귀뚜라미'란 제목에서 시작해 세상의 가을을 향해 번져나가는 글이라야지, 허턱 '가을'이라고 대담하게 제목을 붙였다가 '귀뚜라미'로 쫄아드는 글은 소담스럽지 못한 법이다. (238~239쪽)
문제란 사회적인 언어를 개인적이게 쓰는 것이다. (322쪽)
이런 글을 쓰던 이가 북에서 숙청당했다는 건, 안타깝게도 왠지 이해가 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