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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평점 :
82년생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소설의 구조나 서술 면에서 매우 훌륭하다고 말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 우선 소설을 극적으로 만든 초반 설정에 대해 작가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여기서 책임을 진다는 얘기는 그 문제를 해결한다는 게 아니다. 그 장치를 왜 사용했는가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글의 초반 독자를 몰입하게 하는 효과는 얻었을지 모르나, 책의 마무리에서 힘이 쫙 빠져버린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또 책의 곳곳에 달려있는 각주와 화자가 모호한 설명들은 이야기의 흐름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그 조사자료와 수치를 근거로 하되, 그걸 직접 노출하지 않고서도 이야기 속에 충분히 넣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게 바로 소설가로서의 역량인 거고.
그러나, 이 소설이 위에 언급한 특징을 가지는 것, 그 자체가 2017년 한국의 '현상'이 아닐까. 많은 여성들이 이 소설에 공감하고 함께 아파한다는 사실도 또한 '현상'이 아닐까. 82년생 여성 중 가장 흔한 이름이라는 '김지영'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불필요해보이는 각주와 통계를 달고, 그래도 비교적(?) 상식적이고 악의적이지 않은 주변 사람들을 등장시킨 건, 이 소설이 절대 가상이 아님을 웅변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없이 많은 사례들이 어떤 악의적인 개인이 가하는 고통일 뿐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악의적인 구조 속에서 의식 없는 개인의 작은 행동도 무참한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구조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 또한 폭력이라고 이야기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현실' 중에 가장 수위가 낮은 장면만을 보여주었음에도, 대부분의 여성들이 똑같은 증세로 아팠다고 아프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 2017년 대한민국의 '현실'인 것이다. 현실이 이러하기에, 소설을 이런 식으로 구성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성차별, 성폭력의 문제를 두고 여유롭게 문학적 성취 따위를 운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그 자체로 '현상'인 것이다. 반대로 현실을 반영하여 현상을 만들어낸, 바로 그 지점이 이 소설의 문학적 성취라고 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