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네 사람의 이야기
자작나무 에세이 모임 지음, 이영남 기획.진행 / 푸른역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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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 없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면 '항상' 틀린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예외적인 그 한 명이 바로 나의 가족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살은 사회적 문제에 기인한다는 말은 옳으면서도 동시에 틀린 말이다. 결정적 순간 자살을 결심하는 사람들은 살고 있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의 개인적 경험에 기인하는 것이다. (5쪽)


자살자의 유족이 모여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점차 스스로 체득하면서 남긴 기록. 유독 높은 자살율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자살자의 가족에 대해서는 모두가 침묵하고 모른 척 한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물론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지만, 그들을 위한 세심한 프로그램이 필요한 건 아닐까? 이런 프로그램의 부재는 우리 사회가 아직도 자살에 별 관심이 없다는 걸 말해주는 건 아닐까?


나는 아들을 보낸 후 고통의 시소게임을 하고 있었다. 어느 쪽 고통이 더 큰지 그것만 재고 있었다. 그런데 몰랐던 것이 있었다. 고통의 시소 저쪽에 자리를 잡아야 하는 것이 울음이라는 것, 고통을 울음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 (66쪽)


자살자 유족이 쓴 네편의 글을 읽다보면, 의외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처음엔 이 부분이 좀 의아했는데,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니 당연한 얘기가 아닌가 싶다. 유족들의 글은 고인에 대한 추모이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슬픔과 원망과 반성을 표현하는 수단이니까. 그걸 제대로 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자기를 돌아봐야만 한다. 자살자와의 '관계'에만 집착하다가는 그 어떤 현실 인식도, 치유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 힘든 경험과 감정을 드러낸 유족들도 대단하지만, 각기 다른 상처를 입은 사람들과 함께 해당 프로그램을 진행한 기획자의 뚝심도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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