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로 간 한국전쟁 - 한국전쟁기 마을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들
박찬승 지음 / 돌베개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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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우연히 구술 프로젝트에 두 건이나 참여했다. 이전까지 구술 작업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던 터라,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구술자가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하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일부터, 적절한 질문지 작성, 구술 녹음 자료의 검수까지 매 작업 단계마다 곤란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어떤 구술자는 미리 약속했던 구술을 거부하거나, 구술한 며칠 뒤 2시간 넘게 구술 받은 것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요구한 적도 있었다. 심지어 구술 주제가 민감한 사안이 아니었음에도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구술’하면 그냥 이야기를 듣는 것쯤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는데, 직접 경험해보니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구술 작업을 토대로 연구 성과물을 만드는 일은 또 다른 차원의 작업이다. 많은 연구자들이 구술 자료를 사용할 때에 주저하는 마음이 생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객관’과 ‘사실’의 족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처한 역사가들은, 구술 자료의 가능성에 주목하기보다는 위태로움을 걱정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구술 자료는 매우 주관적이며-모든 자료가 주관적이라는 보호막을 쳐도 달라지는 건 별로 없다-기억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으로 잘 알고 있듯이, 기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스러지고 떨어져나간다. 그리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왜곡하고 편집한다. 그렇기 때문에 구술 자료는 매력적이지만 위험하다.


『마을로 간 한국전쟁』은 구술을 바탕으로 진행한 연구라는 점에서 다른 연구와 차별성을 지닌다. 당연하게도, 연구 방법이 다르니 연구결과도 달랐다. 한국전쟁의 큰 특징은 민간인 피해자가 다수 발생했고 그 민간인 피해는 민간인끼리의 분쟁이 원인이었다는 점이다. 기존의 거시적 연구는 ‘마을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들’에 주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상이나 계급만이 쟁의 원인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현미경을 들이대고 살펴보니 현실은 달랐다. 사상보다는 신분 갈등, 계급 갈등, 친족 내의 갈등, 마을 간의 갈등, 종교 갈등이 사상을 압도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그 갈등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갈등은 존재했고 한국전쟁이 그 갈등을 극적으로 폭발시킨 것뿐이었다.


이 글에서는 과거의 양반-평민 간의 신분 갈등, 지주-소작인(혹은 머슴) 간의 계급 갈등, 친족 내부의 갈등, 마을 간의 갈등, 기독교도와 사회주의자 간의 종교 혹은 이념 갈등 등이 '복합적 갈등구조'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56쪽) 


이러한 한국전쟁의 이면은 새로운 연구 방법을 사용했기에 드러난 것이다. 구술이라는 어려운 작업을 진행하고, 사료를 구에 적용하는 또 다른 차원의 지난한 작업을 진행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연구사적 의의를 충분히 찾을 수 있다. 한국전쟁이라는 주제의 민감함을 생각하면,이 작업이 얼마나 어려웠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게다가 저자가 사학계의 중견 연구자임을 감안하면, 현장연구를 진행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면서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쉽게 찾기가 힘들었다. 물론 반복되는 문장이 많고, 어떤 부분에서는 중언부언하는 느낌을 준 탓도 있다. 허나 문제의 핵심은 그게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에서의 미시사’가 가지는 문제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현미경을 들이대듯 자세하게 살핌으로써 거시사가 놓칠 수밖에 없는 부분을 되살리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존재들에게 기회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 미시사의 가장 큰 장점이다. 서양에서의 미시사가들이 대부분 좌파인 건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어떠한가? 수많은 ‘일반인’들이 등장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그들은 모두 주체가 아니라 정황을 묘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인명이 등장하지만 사람이 없는 것 같은 괴상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물론 민감한 구술 자료를 온전히 사용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한계라고도 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점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방법론적인 충돌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즉, 미시적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그것을 빚는 손길이 여전히 거시적 기법이라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윤택림의 2003년 저작, 『인류학자의 과거여행: 한 빨갱이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와 대비된다. 윤택림은 애초에 연구 대상을 더 축소하여 한 걸음 더 마을로 들어간다. 또 족보처럼 기초적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무의미한 계보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도식화하고 그 변화를 추적한다. 그래서 윤택림의 저작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 가명임에도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실존 인물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을 연구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되살리는 데에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이다.


이런 차이가 어디서 발생하는 것일까? 나는 역사학 연구자의 강박에서 그 이유를 찾고 싶다. 미시적 기법에 대해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역사학자는 미시적 연구를 사례 연구와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것은 미시사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단턴이나 긴츠부르그, 데이비스의 연구를 보면, 여러 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 하나하나의 연구가 ‘사례연구’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사례‘들’을 합치면 큰 그림이 나올까?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한국인 개인의 역사를 모두 모으면 한국사가 되거나, 반대로 한국사를 분해하면 개인사가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례 하나에 대한 연구자의 믿음이 필요하다. 사례 하나를 깊게 분석하는 고집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 사례를 일반화할 수 있느냐?”라는 뻔한 질문에 대항할 용기도 필요하다. 어쩌면 이 민감한 주제야말로 구술사와 미시사가 꽃필 수 있는 영역이 아닐까?


또 하나의 아쉬운 점은, 저자의 중요한 문제 제기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총론에 언급한 다음의 주장을 살펴보자.


남과 북의 국가 권력은 전쟁 상황을 이용하여 마을 주민들에게 어느 한쪽을 분명히 선택하도록 함으로써 충성도를 높이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남북의 국가권력이 마을 주민들을 동원하여 직접 학살에 나서도록 한 것은 주민들로 하여금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50쪽)


여기서 우리는 국가권력이 마을에 그처럼 깊숙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과연 마을 안팎에서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까 하는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 즉, 국가권력의 개입이 없었다면 그와 같은 대규모 민간인 학살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민간인들끼리 죽고 죽이는 학살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민간인들끼리 죽고 죽이는 학살은 사실상 국가권력의 조장에 의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51쪽)


이런 주장은 개연성이 높은 중요한 문제 제기다. 그러나 본문 속에서 이 문제 제기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보이진 않는다. 국가 권력이 어떻게 침투해서 민간인 사이의 갈등을 조장했는지, 구체적인 사례속에서 입증하지 못했다. 이 부분을 제대로 입증하지 않는다면, 이 연구가 지적했던 기존 연구의 한계를 답습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연구는 한국전쟁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 선구적 연구로 기억될만 하다. 특히 저자가 자신이 속한 대학의 학생들과 함께 진행한 구술 수집 작업은, 학생들에게 중요한 자극제가 될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자료 수집를 수집하여 더 다양한 관점으로 분석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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