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다
이화열 지음, 폴 뮤즈 사진 / 현대문학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프랑스에 거주 중인 디자이너의 에세이. 글이 생각보다 정갈하고도 절제력이 있다. 그래서 짤막짤막한 글들이 모두 수준급의 단편 해외 문학을 읽는 느낌이다. 물론 글 곳곳에서 조금씩 거슬리는 약간의 허세와 약간의 과잉이 보이고, 무엇보다 글에 '타인의 이야기'가 넘쳐난다는 점이 많이 불편하다. 이 에세이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프랑스의 주변인물들이 잔뜩 등장하고, 그들의 사생활이 직설적으로, 때로는 냉소적으로 담겨있다. 과연 이 책을 프랑스에서도 발간할 수 있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 책에 담긴 인생들은 그저 소재였을 뿐인가? 약간은 허망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내가 '허세'라고 느끼는 지점도 바로 여기이고.

 

그럼에도 다음과 같은 표현들을 읽으면, 감탄하며 책장을 넘길 수밖에.

 

기대의 빛깔과 냄새로 꿈꾸었던 것들. 땅따먹기 놀이에서처럼 과거는 조금씩 조금씩 미래를 자기의 땅으로 만든다. 이제 그 달착지근 떨림을 다시 느끼기 위해서는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62쪽)

 

누군가는 미문을 쓰는 자를 믿지 못하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미문의 힘이란 게 있다. 미문이 아니라고 해서 글에 진정성이 생기는 건 또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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