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와 구더기 -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 현대의 지성 111
카를로 진즈부르그 지음, 김정하.유제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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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을 모시고 독서모임을 하면서 12년만에 다시 읽게 된 책. 미시사 연구의 대표적인 저작이자, 가장 오래 회자되는 책이기도 하다. 대학원을 들어가기 전에 읽었던 책을 지금와서 다시 읽으니 느낌이 새롭다. 당시 궁금했던 것들(메노키오가 일반적인 농민이라고 할 수 있는가? 농민문화를 너무 일반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등등)은 이제 큰 문제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역사가로서의 태도랄까 하는 것들이 동종 직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더욱 놀라울 뿐이다.

 

과거는 침묵합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증언을 듣기 위해서는 질문을 해야만 합니다. 이 말은 20세기를 사는 한 역사가의 우주관과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이 필연적으로 교차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6쪽)


'민중 계급에 의해 생산된 문화'와 '민중 대중masse popolari에게 부과된 문화'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거나 민중 문화의 특성을 오로지 '청표지본'에 포함된 격언, 교훈, 우화만으로 파악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28~29쪽)


요컨대, 빈약하고 산만하며 명확하지 못한 기록이라도 잘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 (33쪽)

 

사실 미시사하면 재미있는 그리고 자질구레한 역사, 생활사, 개인사쯤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정말 잘못된 것이다. 미시사야말로 대중과 멀리 떨어진, 본격적인 학문의 장에서 진행되는 연구이다. 그만큼이나 연구자에게는 괴롭고 지겨운 작업을 요구하고, 깊은 관심이 없는 독자들은 그 작업 결과물을 읽다가 도중에 나가떨어지기 십상이다. "빈약하고 산만하며 명확하지 못한 기록"을 살려내려면, 억지 주장이나 번지르르한 말재주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확고한 문제의식과 그것을 끝까지 추궁하는 집요함이 필요하다(때문에 나는 미시사를 두고 "재미있다"고 말하는 연구자를 믿지 않는다).

 

메노키오는 책의 단조롭고 논리적인 형태로 정리된 기록 문화의 언어로부터 몸짓으로 말하고 떠벌리며 고함치는 구전 문화의 언어를 분리시키는 중요한 역사적 도약을 경험한 첫번째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197~198쪽) 

 

메노키오를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저자 개인의 이념 혹은 정치적 입장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땅의 많은 역사가들과 차이를 보이는 점은, 저자가 자신의 성향을 감추려 하지 않고 '객관적 심판관'으로서 역사가의 위치를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야 말로 내가 배워야 할 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쉬운 점도 없진 않다. 책을 보면 이단심판관들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사진처럼 생생하게 살아난 메노키오와는 달리 이단심판관들은 안개 속에 남아있다. 선생님의 설명대로, 이것이 메노키오에게 비추는 스포트라이트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쉬운 점은 (이미 많은 연구자가 관심을 가졌던) 이단심판관들을 살리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이단심판관들의 당황하는 모습을 더 생생히 살려 메노키오에게 향해 있는 조명을 더 화려하게 만들 수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마구 떠벌리는 메노키오 앞에서 곤혹스러워 하는 이단심판관이라니! 뭐, 이거야 독자로서 가지는 무리한 요구사항이라는 것도 잘 안다.

 

어쨌거나 진즈부르그에 의해, 메노키오는 침묵 속에서 깨어났다. 그것이 '진실'인지는 그 누구도 알 바 없으나, 이로 인해 현대 인류의 문화가 조금 더 풍성해졌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역사가의 역할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난 요즘 '진리'에 대한 과도한 믿음이 너무나도 피곤하고,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한다. '진리'나 '사실' 속으로 자신을 감추고 도망치는 모습이 역겹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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