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예찬 - 번역가의 삶과 매혹이 담긴 강의노트
이디스 그로스먼 지음, 공진호 옮김 / 현암사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내년부터 책 한 권을 번역해볼까 하는 욕심이(욕심만?) 있어서, 번역에 관련된 책들을 나름 꾸준히 보고 있다. 아무래도 언어가 다른지라 외국 번역자가 쓴 책들은 잘 안 보게 되는데, 이 책은 권유를 받아서 읽게 되었다. 다 읽고 나니 번역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번역은 그렇게 만만한 작업이 아니며, 게다가 원작 작가 못지 않은 자신만의 번역관, 문학관 등이 뚜렷해야 좋은 번역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깊이 깨달았다. 번역에 대한 천대가 얼마나 심한지에 대해서도 반성하게 되었고.

 

번역을 통해 넓어진 시야는 한 언어를 쓰는 사람이나 그 언어로 쓴 글을 읽는 사람, 그 언어로 글을 쓰는 작가에 그치지 않고 그 언어 자체의 본질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중략)... 무지한 정부나 배타적인 사회단체가 언어의 '순수성'이란 신화를 날조한 다음, 다른 언어의 사용을 금함으로써 그 순수성을 조장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기란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그들이 보호하고자 하는 언어는 새롭고 생소한 표현 수단과 소통 수단을 접하지 못하고, 결국 서서히 약해지고 빈곤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33쪽)

 

우리가 번역으로 읽는 책은 번역가의 글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잊어서도 간과해서도 안 됩니다. 물론 영감의 원천은 원작입니다. 또한 사려 깊은 문학 번역가라면 깊은 경의외 존경심으로 원작에 접근합니다. 그렇지만 그 책을 다른 언어로 쓰는 것은 번역가의 노역입니다. 따라서 그 작품은 번역 그 자체로 판단받고 평가받아야 합니다. (42쪽)

 

누구나 "이 책은 번역이 개판이야"라는 말을 쉽게 한다. 그러나 무엇에 비해 개판이라는 것인가? 나는 이런 말을 하면서 원서와 비교라도 해보았나? 물론 비문으로 가득한 번역책들도 많지만, 번역 비평에 있어서 저서 비평만큼의 노력을 기울이냐는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책의 뒷부분은 시 번역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는데, 저자가 토로하는 고민들은 솔직히 생각도 못하던 부분이었다. 번역의 길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번역 비평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가 필요하겠다는 결론은, 번역가로서의 비애를 토로하는 저자의 어투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저자만의 번역관이 뚜렷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번역가는 원문에 마음의 귀를 기울여 원작자의 음성을 듣는 청자의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번역문, 즉 제2의 원문을 들려주는 화자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번역이 본질적으로 청각적 작업이라는 저자의 신선한 주장은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번역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았다. 또 영미권은 한국과는 또 다른 번역에 대한 천시가 존재한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는데, 번역이 무시되는 현상이 문화적 오만과 그 이상의 폭력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도 깊이 생각해볼만한 것이었다. 적극적인 번역관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보르헤스의 말과 함께.

 

보르헤스는 번역가에게 말한 것을 그대로 쓰지 말고, 말하고자 한 것을 쓰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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