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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평전 - 박정희의 정치사상과 행동에 관한 전기적 연구
전인권 지음 / 이학사 / 2006년 8월
평점 :
말 그대로 박정희 평전. 박정희의 정치 사상과 행위를 전기적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다. 박정희 개인의 심리적 연원을 파헤쳐 그의 행위를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에서 사용하는 핵심적인 개념은 '심리적 고아'와 '정신적 제왕'이다. 얼핏보면 모순되는 것 같은 두 개념이 박정희의 행위나 사고방식에 모두, 그것도 동시에 나타난다. 박정희가 모순처럼 보이는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 두 가지 사고방식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서민과 함께 막걸리를 들이키는 그의 모습은, 실은 그가 제왕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자신과의 관계가 수직관계가 아닌 수평관계에 있는 사람과는 거의 모든 곳에서 갈등을 일으키거나 불만을 가졌다.
박정희는 자신의 과거와 '청산적 단절' 또는 '단절적 청산'을 반복하며 인생을 영위해온 정신적 고아였다. (106쪽)
이 모든 것은 그가 어렸을 때부터 겪었고 또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선택했던 '심리적 고아' 상태와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 심리적 고아 상태는 박정희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한국 가족 제도 및 문화의 문제와 직결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여기서 고아 상태를 박정희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선택했다는 점이 중요하며, 그 선택은 박정희가 현재를 항상 위기 상황으로 인지하게끔 만들었다. 유신체제 또한 그가 생존을 위해 선택한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그가 현재를 언제나 위기 또는 긴급 상황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254쪽)
크게 보면, 유신 체제 또한 그가 현재를 항상 긴급 상황으로 이해했던 특유의 시간개념, 역사인식과 관련이 있다. 그가 얼마나 모순적이고 몰역사적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 현재가 위기 상황이라는 점만을 강조하고 부풀릴 뿐, 왜 지금 이 위기의 책임에 대해서는 일절의 언급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단히 도식화하면, 위기가 왔기 때문에 사심이 없는 내가 집권해야 한다. -> 집권 -> 위기다. -> 그러니까 내가 집권해야 한다. 라는 어이없는 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위기가 발생했을 때의 대처법 또한 모순에 가득 차 있다.
(1) 위기가 발생하면 또 다른 위기를 조장한다. (2) 두 위기는 모두 막상막하의 나쁜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규정한다. (3) 박정희 자신은 사심이 없으므로 그런 위기와는 관련이 없다. (4) 무언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등과 같은 주장을 펼 수 있는 근거를 만들도록 사건을 조작한다. (213쪽)
따라서 저자는 박정희의 정치적 사고과 행동은 "모순적 행동론"에 기초한다고 주장한다. 즉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행동 원리를 자신의 행동 체계 안에 수없이 많이 공존시켰다"(353쪽)는 것이다. 결론 부분에 정리된 박정희의 모순점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그는 정치를 행정화하고 행정을 정치화했다"(357쪽)는 지적은 그야말로 촌철살인이다.
이 책은 저자의 박사논문을 출판한 것인데, 그 점을 감안하면 박사논문으로서의 미덕을 잘 지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쟁점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으며, 자신만의 관점을 뚜렷하게 관철시킨다. 그 와중에 자신의 논문이 기존의 연구들 틈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도 명민하게 살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박정희 관련하여 출판된 책 중에 손에 꼽힐 정도로 객관성을 유지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역시나 문제가 되는 건, 이 책이 심리학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의 장점이 또한 단점이 되는 것이다. 심리학적인 접근을 한다는 그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지만, 결론적으로는 모든 것을 개인으로 소급한다는 인상을 준다. 이 책에서도 이미 그 점에 대해 조심하고 있다고 스스로 언급하고 있지만, 내 생각에 그 위험을 완전히 피해가지는 못한 것 같다. '심리적 고아'라는 개념 자체가 애매한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그와 같은 경험을 하거나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모두 박정희처럼 행동했던가라는 다소 유치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유치하다고 표현하긴 했지만,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제다. 만약 그것이 증명되지 않는다면, 굳이 박정희의 정치적 사상이나 행위의 근원을 유아기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또 저자는 기존 박정희 연구에서 프로이트의 방법을 적용한 것과 달리, 자신은 한국의 가족 제도 및 문화를 감안하여 변용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애초에 프로이트의 방법을 도입해야할(그대로 적용하든 변용하든) 이유가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이미 유명한 이론이기 때문에 적용한다는 건 말도 안되는 것일텐데도, 이 이론이 적합하다는 설명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박정희의 정치 행동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유신체제에 대해서 심도 있는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박정희는 민주주의와 아무련 관련이 없다는 의미에서 몰민주주의자 또는 무민주주의자였다. (15쪽)
저자는 박정희에 대해 이런 정의를 내리기도 하는데, 이 정의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다. 박정희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교육을 받지 못했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의 시대에 민주주의를 '제대로' 교육받고 이해한 인물이 몇이나 된다는 말인가? 솔직히 독재에 반대했던 민주화 세력 중에서도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한 인물이 몇이나 되었을까? 박정희를 반민주주의자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몰민주주의자, 무민주주의자로 이해하면 무엇이 달라진다는 말인가? 오히려 이런 표현은 박정희를 더 깊게 이해한다는 차원에서 언급되는 것이 아니라 오해와 왜곡을 위한 표현으로 오용될 가능성이 더 높다. 저자의 의도가 그렇지 않다고 할지라도, 굳이 이런 정의를 함으로써 추구하려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쉽게 이해하기가 힘들다. 심리학적 접근이 매우 흥미롭기는 하지만, 그것이 결국에는 모든 것을 개인으로 소급시키고 또 그를 이해하려는 일방적인 태도로 문제에 접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정치적 행위와 사상을 이해하는 것과 그 개인을 이해하는 것. 여기에서 '이해'의 맥락은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박정희를 "공적 인간"이었다고 인정하지만,
그는 비록 영웅주의적 방식이긴 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공적 세계에 투입한 "공적 인간"이었으며, 자신이 제시한 공적 목표에 전력투구하는 책임감을 보였다. (348쪽)
이런 사고 방식이나 행동이 가능했던 것은 공적 세계를 자신의 세계와 완전히 일치시켰던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인간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다.
한 개인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중요한 일이란 것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더군다나 그 인물이 한 시대를 어떤 방식으로든 휘저은 인물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 개인에 너무 함몰하게 되면, 결국 모든 것을 결과론적으로만 이해하게 되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위험이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짜증이 났던 부분이 그것이다. 정말 고아도 아니었던 그가 그랬다면, 거기다 그것이 적극적인 선택이었다면, 정말 고아였던 사람들에게서는 어떤 행위와 사고 방식이 나오는가? (그리고 그것이 일정한 패턴을 가진다고 할 수 있는가?) 아무리 저자가 그런 저급한 수준의 비판을 미리 차단한다 하더라도 결론이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완전히 막기는 어려울 것 같다. 또 하나 거슬리는 것. 왜 이런 정치학 쪽의 책에는 쓸데 없이 영어를 덧붙이는 걸까? 예를 들어 "이 책은 박정희의 정치사상과 행동political thoughts and actions을 전기적 관점biographical approach에서 분석, 종합한 박정희 평전이다." 정치사상과 행동이라는 용어가 어떤 특이한 이론에서 나온 용어가 아닐진데 이렇게 굳이 영어를 뒤에 붙이는 건 좀 불편하고 꼴사납기까지 하다.
이런 일부 짜증나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면이 있지만, 여전히 이 책은 박정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저적임에는 틀림없다. 아마도 저자가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더 완성도 높은 저작이 나왔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