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 - 몸과 의학의 한국사
신동원 지음 / 역사비평사 / 2004년 10월
평점 :
최근에 하는 일도 있고 해서 사놓고 뒤적거리기만 하던 책을 정독. 부제는 '몸과 의학의 한국사'다. 저자는 국내에서 '의학사'를 전공한 몇 안되는 역사전공자이다. 그가 그동안 쓴 글들을 좀 더 쉽고 부드럽게 수정하여 책으로 낸 것이다. 제목은 호열자(콜레라)가 주된 내용인 것처럼 되어 있지만 그렇지는 않다(이런 식으로 책 전체의 내용을 알려주지 못하는 제목은 그리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의학에 대한 글이지만 현재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의학의 발달이 이런 고통을 모두 없애줄 것이라고 믿었는데, 그 믿음 때문에 더 고통스럽다. 건강에 대한 기대가 증폭된 만큼 의학이 그것을 만족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의학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숙명론으로 비극을 접을 수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과학과 의학에 대한 굳건한 믿음 때문에 더욱 건강에 집착하게 된다. 부풀어진 욕망을 따라잡지 못하는 의학의 시대, 그것이 현대의 아픔이다. (56쪽)
건강에 대한 강박. '예상 수명'이 나에게도 당연히 해당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잊고야 마는 '죽음'. 죽음에 대한 태도나 죽음과 관련된 의례들도 '근대성'과 연관지어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일제 식민지기는 좋은 관찰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내용은 식민지 내내 별로 변동이 없었으며, 당시 일본 등 선진 제국에서 관리의 대상으로 삼은 것과 거의 차이가 없다. 이런 측면을 '근대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전 시대에 행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유례없는 효용을 가져다주었다는 점에서, 그 효용이 확실한 과학에 근거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개인과 집단의 생활양식을 혁신시켰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렇듯 식민지 조선의 위생경찰의 업무범위는 문명국가의 보편성을 띠고 있었지만, 그것의 집행방식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대한제국이나 당시 일본과 비교해볼 때, 조선의 위생행정은 훨씬 불완전하고 억압적이었다는 점이다. 이를 '식민지성'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68쪽)
저자의 이런 관점이 매우 독창적이지는 않지만 타당성은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뭉뚱그려 '식민지 근대성'이라고 칭해버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문제가 있다기 보단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나의 관심은 식민지 조선에서 '근대'의 '설득력'이 얼마나 있었는가 하는 문제다. 왜 어떤 분야는 설득이 먹혔지만, 왜 또 다른 분야에서는 설득에서 실패를 하였는가? 이 부분에 주목을 한다면 앞서 언급한 서술보다는 다음과 같은 부분들이 더 흥미롭다.
변강쇠가가 황당무계하고 어수선하며 체계가 잘 짜여져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19세기 세계관과 20세기 세계관 사이에 양립할 수 없는 엄청난 단절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감했는데, 우리는 공감하지 못한다. (144쪽)
(우두법) 반대자에게 서양이란 시시각각 침투해 들어오는 서양세력을 뜻했다. 그 '서양'이란 전통적인 것을 '폭력적으로' 부정하는 원천으로 비쳐졌다. 우두법도 이런 조선 말의 위기의식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었다. 이를 단지 무지와 맹목으로만 비판해서는 안된다. (327쪽)
역병 예방과 건강의 향상이라는 목적 이면에는 피식민자 개개인에 대한 반(半)폭력적 통치행위가 짙게 배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무단적 행위에 대해 조선 민중은 엄청난 반감을 품었으며, 그것은 그들이 도구로 활용한 우두법과 같은 근대 문물 그 자체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
무당은 자신이 마마를 물리친다고 믿었으며, 사람들도 그렇게 받아들였다. 설령 문제가 생겼다고 해도 그것은 정성부족이나 필연적 운명 등으로 얼마든지 설명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무속적인 설명은 성공과 실패를 모두 만족시키는, 오랜 전통을 가진 가장 일반적인 설명방식이었다. 개항 이후 정치, 사회, 문화적 상황이 급격히 바뀌어 나가기는 했지만 그러한 설명양식은 여전히 유효한 측면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그것을 대체할, 신뢰할 수 있는 전반적인 세계관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328~329쪽)
과연 근대가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을까? 설사 승리했다 해도, 근대는 전근대에 그 어떤 두려움도 가지지 않았을까? 근대는 '이성적으로'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 전근대를 어떻게 이해하려 했는가? 반대로 전근대는 근대를 어떻게 받아들였고, 또 어떤 방식으로 저항했는가? 논문에 대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다. 아직도 여전히 불투명하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