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쿠나 마타타 우리 같이 춤출래? - 마음의 길을 잃었다면 아프리카로
오소희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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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책을 읽고서 항상 하는 말이지만(여행책을 별로 읽지도 않는다만), 나는 여행책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불행히도) 내가 읽거나 뒤적거렸던 여행책들은 속된 말로 '자뻑'의 선을 넘어서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오소희가 말하는 기준으로 치면, 1단계에 철저히 머무르고 마는.

 

여행에도 단계가 있다.

 

1단계, 새로운 곳에 가서도 거울을 보듯 '나'만을 보는 것.

2단계, 나를 떠나 '그곳'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3단계, 그곳에 있는 것들과 '관계'를 맺는 것.

4단계, 내 것을 나누어 그곳을 더 아름답게 하는 것. (546쪽)

 

그래서 그런 책들을 읽고나면, "아니, 이럴 거면 굳이 왜 떠나야 하나? 자의식의 충만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족하다면 그 배경이 굳이 프라하일 필요는 없지 않나?"하는 삐닥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런 책들보다 차라리 아예 '정보'를 표방한 책이 낫다 싶었다. 그건 실제로 유용하기라도 하니까.

 

김화영의 기행문도 그 자의식의 충만이 최고 수준이지만, 그의 글은 보통의 글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고(비록 내 입맛에 딱 떨어지는 글은 아니지만), 사진 한 장 없는 여행기는 말 그대로 '에세이'였다. 차라리 사진 한 장 없는 여행기가 낫다 싶었다. 미니홈피에 수도 없이 올라왔을 것 같은 풍경 사진들 밑에 '그리움. 그것은 어디에나 있다'-_- 식의 단상(?)을 읽는 것은 정말이지 손발이 오그라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너도 마포 어딘가에서 가끔은 이런 생각에 젖어들 때가 있겠지. 하지만 난 빠리에서 그랬다구, 알아?" 그러나 이 책의 사진은 정말 '다르다'. 아프리카에 다녀왔다는 '인증샷'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와 세계 오지를 돌아다니는 작가는 풍경보다 오히려 사람을 찍는다. 그냥 찍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말을 걸고 함께 이야기하고 때론 친구가 되고 때론 상처받는다. 그렇다. 어쩌면 이 책은 아프리카 여행기가 아니라, 아프리카의 사람 여행기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모든 것을 찬찬히 그리고 깊게 들여다 볼 줄 아는 작가의 태도는, 이 책을 여행기 그 이상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 단순히 초원을 뛰노는 얼룩말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적인 그 무엇'을 대신 체험하여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하쿠나마타타.

  문제 없어(No Problem). <라이언킹>에서 처음 접했던 그 말을 나는 좋아한다. 심바가 그 말 속에 자신의 긴장과 고뇌를 녹였듯이, 스와힐리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칸들은 그 말 속에 대립을 녹이곤 했다. 말하자면, 그들의 말싸움에는 기승전결 대신 '기, 승, 하쿠나마타타, 그리고 (느닷없이 평화로운) 결'이 있을 뿐이었다. 그들 앞에서 목청 높여 상황을 논리적으로 펼칠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대 앞에서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저 혼자 끝까지 멍청한 장교가 된 기분이 들곤 했다. (74쪽)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주변상황이 자신을 위해 빈틈없이 봉사할 때 목이 졸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 사람들. 잘 구획된 시스템 안에 들어가기보다, 엉성하더라도 스스로 시스템을 구축해나갈 때 살아 있음을 느끼는 사람들. 안정과 명성보다는 새로움과 호기심에 높은 가치를 두는 사람들. 나는 그들이 좋다. 절대 다수가 세상을 존속시킬 때, 그들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48쪽)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프리카가 직면한 문제들을 피하거나 외면하는 것도 아니다. 혼자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아들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도, 그녀는 '관광'이 아닌 '여행'을 고집한다. 그것이 때로는 그들 스스로를 피곤하고 지치게 만드는 것일지라도 그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더 많은 가능성을 접지 않는 것이다. 그게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일까? 글쎄.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저자는 자신을 위해 여행을 하는 것이고, 아이에게는 어떤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그친다. 그 '그침'이야 말로 아이에게는 크나큰 기회이자 교육일 것이다. 또, 그 '그침'이 있기에 아이가 곁에 있느냐 없느냐와 상관없이, '엄마'는 여행 중에도 끊임없이 '나'로서 스스로와 대면할 수 있게 된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여행을 하면 나중에 기억이 나지 않을 텐데요?"

  그려면 나는 대답한다.

  "중요한 것은 기억이 아니라 태도예요. 자신을 열어야 할 순간에 열어버리는 것, 그래보는 것, 그럼으로써 열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중요하지요. 오늘 머문 이곳의 지명과 이곳에 있던 아름다운 성곽 따위는 잊어도 좋아요. 그러나 오늘 열어본 경험은 '태도'가 되어 퇴적층처럼 정직하게 쌓일 겁니다. 그 태도는 앞으로 아이가 살아가면서 '지금 이것이 삶이다'라고 느끼는 순간, 질질 끌지 않고, 미뤄두지 않고, 자신을 통째로 던져 '확 살아버릴' 줄 알게 하겠죠. 그러한 경험 없이 성인이 되면, 반쯤 죽은 듯 살게 됩니다. 일상의 노예가 되지요. 저는 생명으로 자식을 이 세상에 데려왔으니, 살아 있음을 느끼게 도와주는 게 부모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35~236쪽)

 

  감당할 수 없는 눈물이었다. 주먹으로 두 눈을 꾹꾹 눌렀다. 처음으로 온전히 타인을 위해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내 삶은 그런 것이었다. 이기적이고 평이한 삶이었다. 나의 고통도 참으로 견딜 만한 것이었다. 내가 흘렸던 눈물은 불안의 눈물이었을 뿐 절망의 눈물은 아니었다. 내가 거짓을 말하지 않고 도덕과 인내의 시험에서 항상 승리했던, 그것은 내가 도덕적이거나 인내심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다만 운좋게도 거짓을 말하기 전, 도덕과 인내가 한계에 다다르기 전, 구원받고 또 구원받는 삶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세상에서 태어나 그런 보호를 받으며 살아온 것뿐이었다. (513쪽)

 

엄마가 끝없이 깊게 바라보고 스스로 성찰하는 가운데, 아이는 어디에가도 공 하나로 모든 아이들과 친구가 되면서, 이런 멋진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간다.

 

  "탄자니아를 여행하는 동안은 뭐가 제일 좋았니? 해변? 동물들?"

  "사람들, 사람들이 좋았어요. 특히 아기들이요."

  그가 뜻밖이라는 듯 아이를 그윽히 바라보더니, 환하게 미소지었다.

  "네가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기쁘구나." (315쪽)

 

사람을, 사람의 눈을 볼 줄 아는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어른'으로 보인다. 저널리스트, 변호사의 꿈을 가지고 있는 18세 소년, 파하드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이런 사람들은 '스케일' 자체가 다르다.

 

  "네 시험에 행운을 빌게."

 

  내가 그렇게 손바닥 만한 인사를 건넸을 때, 파하드는 그 손바닥이 찍힌 모래사장처럼 드넓은 인사를 건네, 내 얼굴이 붉어지게 했다.

 

 "당신의 남은 전 인생에 행운을 빕니다." (175쪽)

 

아프리카가 좋았겠지만, 그저 '좋았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정말 기만일 것이다. 아프리카만의 소중한 삶과 가치가 거기에 있겠으나, '아프리카만의' 분쟁과 가난 또한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매년 분쟁지역으로 갔는지 물어도 돼요?"

  "아, 그 대답은 의외로 간단해요. 사람들은 희생 같은 단어를 먼저 떠올릴지도 모르겠는데 실은 그렇지 않거든. 우리는 누구보다도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일해요. 말하자면, 내가 봉사를 하는 가장 정직한 이유는 자기만족 때문인 거죠. 뭐, 소수이긴 하지만 그럴듯한 경력을 만들기 위해 MSF에 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지만 나는 꼭 그들을 부정적으로만 보진 않습니다. 반드시 동기까지 아름다울 필요는 없는 거죠. 시작이야 어떻든 간에, 결과적으로 '나눌' 수 있다면 아름다운 것이니까."

  봉사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봉사에 대해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환상만을 키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현실' 속에 봉사를 심어놓은 훌리오는 매우 유연했다. (192~193쪽)

 

  세상의 이편에서 점점 더워지는 지구에 대항해 점점 더 세게 에어컨을 틀어댄다면, 세상의 가난한 저편에서는 두 배로 늘어난 열기를 오롯이 맨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우물이 말라붙어 더 먼 곳까지 물통을 이고 걸어가면서, 밭이 사막으로 변해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면서.

  사람들이 고유가 시대의 물가에 대해 불평할 때에도 나는 "한정되어 있는 것을 그만큼 퍼썼으면 이젠 대가를 치러야 할 때가 아닌가"라고 말하곤 한다. 곤충이 나무의 즙을 빨아먹듯 우리는 지구를 빨아먹었다. 나무는 고사 직전이다. 너도 나도 더 적극적으로 불편함을 겪어야 한다. 걸어야 하고 자전거를 타야 한다. 더우면 좀 땀을 흘리고 추우면 좀 떨면서, 덜 얻으려 하고 더 천천히 가야 한다. 더우면 좀 땀을 흘리고 추우면 좀 떨면서, 덜 얻으려 하고 더 천천히 가야 한다. 더 큰 '불편'을 우리의 일상 속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가난한 세상의 저편에 대해, 불편을 넘어'생과 사'의 문제로 귀결되는 지구의 고통에 대해 더 자주 공감해야 한다. (255쪽)

 

그래서 그녀는 '4단계'에 돌입한다. 좀 더 많은 아이들을 후원하고, 인세의 절반을 기부한다. 자신의 블로그 또한 기부에 참여할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장으로 활용한다. '사람'을 보지 않았다면 가능할 일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이 주는 울림은 특별하다. 이 책을 덮고 "아, 아프리카로 날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조금의 공유는 하고 싶어진다. 불편의 공유, 그리하여 행복의 공유. 여행을 떠나지 않고서도 '4단계'로 들어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 이쯤되면 훌륭한 선동 서적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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