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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란 말도 없이
우에노 켄타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개그만화 작가로 활동 중인 주인공은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어린 딸과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다. 집에 돌아오면 아내와 딸이 "어서와"라고 반겨주고 가족끼리 실없는 농담도 던져가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아내가 비록 우울증을 겪으며 약물치료를 받고 있지만, 불행보다는 행복 쪽에 훨씬 가까운 가정이다. 그러던 중에, 아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린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있는 아내를 발견하는 순간부터, 주인공의 삶은 무너져 내린다. 작가는 자신이 겪은 이 힘들고도 슬픈 일을, 때로는 격하게 때로는 무덤덤하게 그려내고 있다. 자신이 겪은 고통과는 별개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로서 주관과 객관에 대한 고민은 각별했을 것이다. 아, 표현자. 이 빌어먹을 천형이여.
장례식이 끝난 직후, 나는 이 작품에 착수할 뜻을 담당기자에게 표명했고 즉시 콘티에 들어갔다. 그것은 너무도 생생한 나머지 작품으로서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것도 나름 작가성이 진하게 드러나 '괜찮다'라고도 볼 수 있지만 시간이 경과된 현재, 어느 정도 객관성을 갖게 된 지금이 차라리 작품으로서는 더 나은 표현이 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애당초 당사자에게 완벽한 객관시라는 것이 가능하겠냐마는, 그래도 그 심정은 당사자밖에 맛볼 수 없는 거니까. 요는 주관과 객관의 밸런스를 얼마나 잘 잡느냐에 달려있다.
다만, 내용이 내용인 만큼 새로운 가족에게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나 자신도 '어째서 이렇게 괴로운 감정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려야 되는 걸까?'라는 사실을 집필을 개시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럼에도 결국 '그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인데, 그렇다면 그것은 왜일까? '자신의 마음을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랐다'라는 것이 전부 아닐까? 힘든 일을 겪은 사람들은 많든 적든 간에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라던가, '감정을 이해해줬으면'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 같다.
하물며 나는 표현자. 어떻게 이것을 그리지 않고 배길 수 있겠는가? 아니, 구태여 속되게 말하자면 표현자 입장에서 이 '좋은 소재'를 그리지 않고 넘어갈 이유는 없다. 이 작품에 내 진심을 담아 과거는 과거로서 감정을 정리하고, 앞으로 살아갈 미래를 똑바로 응시하고 싶다. (34~35쪽)
처음에는 배우자의 죽음(언젠가 어떤 연구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사람은 배우자의 죽음에 가장 큰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을 접한 주인공의 심경을 그림으로 어떻게 묘사해나가는지가 궁금했다. 몸이 녹아내리고, 주변이 물로 가득차고, 만화의 칸이 흐물거리고, 먹(혹은 피눈물)이 번져 대사를 가리는 등 그런 표현들도 탁월했지만,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주인공의 솔직한 심경들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어 인상 깊었다. 그리고 다시 그 심경이 그림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작가 이외의 사람들은 얼굴도 표현되어 있지 않고, 심지어 딸의 슬픔도 전혀 묘사되지 않는다. 아마도 뛰어난 작품의 요건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리라. 독자가 직접 겪어보지 못한 일이지만, 어떤 일인지, 어떤 감정상태인지 너무나 잘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것. 그래서인지 나도 이 책을 보는 동안, 주인공의 심경이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처참함, 막막함, 미안함, 당황스러움.
오후부터 밤 사이에 몇 명의 문상객이 와주었다. 그 때마다 키호의 마지막 모습과 사인을 설명했지만..., 몇 번이나 설명하는 사이에 매뉴얼화되어가는 게 싫어서..., 조금씩 다른 어구를 골라 썼다. 자신이 하는 반복된 설명이 켜켜이 쌓여... 키호의 죽음이라는 잔혹한 사실이 도욱 확고부동하게 뒷받침되어 가는 것 같았다. (141~142쪽)
작가의 헌사처럼, 이 책은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모든 이에게, 그리고 소중한 이를 가진 모든 이에게 바쳐질만한 만화다. 모두가 죽을 거란 걸 알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기에, 직접 그 슬픔과 마주한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고독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이 세상에선,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