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순환선 - 최호철 이야기 그림
최호철 지음 / 거북이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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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컷의 그림에 엄청난 양의 정보가 압축되어 들어가 있다. '여백의 미'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는 태도의 그림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호철이 그리는 그림의 시선이 그 높이가 높지 않고 항상 현장에 있음을 감안한다면, 이 막대한 양의 정보를 어안렌즈를 사용하여 사진 찍듯 그려내는 그의 그림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사진 찍는 일의 어려움을 가볍게 보는 바는 아니지만, 사진처럼 사실 그대로를 담아내려는 하이퍼 리얼리즘과는 완전히 다른 지점에 서있다. 그대로의 풍경을 볼 것이라면 을지로 순환선을 타고 창밖을 내다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있는 그대로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일상적인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의 그림에서는 순간을 담아내기 위한 정성이 빛난다기보다는, 조그마한 한 구석을 바라보는 시선의 따스함이 빛난다. 이것이 바로 최호철 스스로가 말하는 '본 걸 그린다'의 의미일 것이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선다 할지라도, 그의 그림은 이제 하나의 기록이 될 것이다. 평론가 박인하는 만화라기 보다 회화에 가까워지는 그의 그림에 아쉬움을 표하지만, 모든 만화가가 만화처럼 그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박인하가 표하는 아쉬움, 그것이 최호철만이 가질 수 있는 강점이기도 하다. 최근 창작과 비평 블로그에서 전국의 도시나 시골의 풍경을 담고 있는데, 이 또한 감탄을 금할 수 없는 프로젝트다. 경기도 광주시 송정동을 그려낸 그의 그림을 보았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바로 이런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http://blog.changbi.com/lit/?p=3450&cat=12

 

도시의 전경을 그린 것만이 아니라 삶의 현장을 스케치하듯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들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소장가치가 충분한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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