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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의나 할까? - 아이디어가 진화하는 회의의 기술
김민철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제대로 직장생활을 해보지 못했지만, 내게 군대에서의 경험은 그 경험을 약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첫 자대 배치 때 계셨던 대대장님이 떠나시고 새로운 대대장님이 부임하셨는데, 그 이후 '회의'라는 말에 모든 간부가 한숨을 쉬곤 했다.
본래 상명하달식 문화일 수 밖에 없는 군대에서 '회의'라는 것이 얼마나 기능을 할까에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때의 회의는 모든이들에게 그 이상의 스트레스를 안겨주었다.
민통선 안에 있는 부대라 버스가 하루 5번 밖에 다니질 않아서, 갈수록 길어지는 회의 시간은 퇴근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회의를 통해서 괜찮은 결과나 해결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모든이들이 알고 있겠지만, 회의가 길어질 수록 그 속에서 건질 것은 없는 법이다.
얼마전 친구 녀석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쓸데 없는 보고서와 회의가 많다고 하자 쓸데없는 회의를 없애는 회의를 했다고.
결국 어떤 사안이 있으면 버릇처럼 회의를 하긴 하는데, 구성원들에게는 "또 회의야?" 이상의 반응을 얻기가 힘든 상황이다.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회의'란 뭘까? 사전적 의미로는 "여럿이 모여 의논함. 또는 그 모임"이다.
거기에 글자대로 해석하여 뜻을 하나 더하면, '뜻을 모은다'라는 의미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뜻을 모은다기 보다는 모두의 뜻을 모으고 그것들을 추려내고 발전시켜 하나의 해결책을 도모하는 것이 회의일 것이다.
하지만 모두들 '회의'에 '회의'하고 있는지라, 회의를 주관하는 사람도 참석하는 사람도 능동적인 자세를 취하기가 힘들다.
여기 이 책에서 제시하는 TBWA 제작팀(박웅현 ECD의 팀)의 회의에 대한 7대 원칙을 살펴보자.
1. 회의에 지각은 없다. 10시 3분은 10시가 아니다.
2. 아이디어 없이 들어오는 것은 무죄. 맑은 머리 없이 들어오는 것은 유죄.
3. 마음을 활짝 열 것. 인턴의 아이디어에도 가능성의 씨앗은 숨어 있다.
4. 말을 많이 할 것. 비판과 논쟁과 토론만이 회의를 회의답게 만든다.
5. 회의실의 모두는 평등하다. 누가 말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말했느냐의 문제다.
6. 아무리 긴 회의도 한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7. 회의실에서 나갈 땐 할 일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이것은 다음 회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아마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6번 항목에 쾌재를 부를 것이다. 하지만 그 항목을 달성하기 위해선 나머지 항목들이 필수조건이다.
그 나머지 항목들이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원칙이지만, 원칙이란 본디 그런 거 아니겠나. 문제는 그 원칙이 지켜지느냐의 문제.
그리고 회의가 발전적이 되려면 7번 항목은 필수다. 또 그래야만 회의를 한 시간 넘기지 않을 수 있는 것이고.
이 원칙들이 지켜지는 신기한 회의실이 그려진다. 마치 가상의 세계처럼. 그리고 공간은 한 카피라이터의 꼼꼼한 회의록에서 시작된다.
저자의 말대로 '아이디어'는 불현듯 번개처럼 내려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쥐어짜고 고민하고 토론하고 싸우는 도중에 아이디어는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멋진 아이디어가 나타나는 장이 바로 제대로된 회의실인 것이다.
광고계라는 특수한 분야를 다룬 책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책의 뒷부분 '우리끼리의 디테일 싸움'을 보다보면, 얼마나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히 챙기고 신경쓰는지 알 수 있다.
이들은 '광고쟁이'가 아니라 '광고장이'인 것이다.
굳이 '프로정신' 같은 단어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나는 무슨 '장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인가 한 번 생각해 본다.
광고계에 관심이 있다면, 회의다운 회의를 해보고 싶다면, 아이디어가 어떻게 '진화'하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재밌고 쉽게 씌어진 글이라 금방 읽을 수 있다는 매력도 있다.